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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찬미 Aug 18. 2023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를 읽으며


  반려견을 11년 간 키워본 적이 있다. 가족 모두가 바빴던 시기였기에 늘 강아지는 혼자 집을 지키고 있었다. 텅 빈 집에서 기다릴 강아지를 생각하면 귀가하는 걸음이 빨라졌었다. 주말이면 이 아이를 데리고 늘 산책을 다녀왔다. 산책로를 입력했는지, 먼저 아이의 걸음이 빨라져 내가 쫓아가기 바빴다. 생각할 틈도 없이 말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 바깥 공기를 쐬었다 싶으면 내가 가자는 대로 순순히 따라와 주었다. ‘생각과 경험의 관계’ 란 용어를 산책하는 개와 주인의 관계라고 표현하다니. 산책하다 보면 생각이란 걸 하게 되고, 그 개와 함께 한 경험이 떠오를 것이다. 반려견과 함께 한 생각과 경험 들. 생각을 따라 경험하게 된다. 경험이 생각을 끌어내기도 한다. 현재의 경험이 미래의 생각으로 정리되고, 그 생각의 결과로 다시 움직이게 된다. 무슨 이유에서든지, 어딘가로 떠나는 사람은 현재 안에 머물게 된다. 


일상을 벗어난 사람은 현재 안에 머물게 된다. 나는 여행 중, 무엇보다 ‘현재를 즐겨라!’는 주문을 나에게 입력한다. 바다 수영을 하면서 펼쳐지는 푸른 바다와 갖가지 모양의 흰 구름 들! 햇빛을 받아 색색으로 변하는 바다 색! 맛있는 음식을 찾아 수영 후에 먹는 기분 좋은 포만감, 평소에 잘 먹지 못하는 갖가지 과일과 그윽한 커피 냄새, 달콤한 팥과 인절미가 올라간 우유 빙수 등을 만끽하면 마냥 현재가 즐겁기만 하다. 그러나 밤에 꾸는 꿈은 그렇지 못했다. 교직 생활 중 힘들었던 일이 악몽으로 떠올라 밤새 가위눌리다가 잠꼬대를 하면서 잠에서 깨었다. 여행 중에도 그런 즐거움을 겪는 시간에 대한민국 한쪽에선 수해 복구가 한참이었다. 함덕 해수욕장 뒤에는 서우봉이란 야트막한 산등성이가 있다. 그곳을 넘으면 북촌이란 마음에 4.3 기념관이 있고 슬픈 역사가 있다. 막냇동생이 엄마와 하룻밤을 자고 오더니, 내게 전화해서 눈물을 쏟는다. 


“ 엄마가 너무나 늙었어. 다리가 불편하니 꼼짝없이 집에서 벗어나질 못해. 차라리 그 모습을 보지 않았으면 좋았을걸. 언니 너무나 마음이 아프다. ”


 불안한 미래는 피하는 게 상책이나 여행 중이니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미적거리게 된다. 공허함과 회의감, 외로움, 황량함, 그리움, 기다림, 쓸쓸했던 추억, 세상의 흉흉한 바람 소리에서 벗어난다. 여행이 끝나면, 의미를 나만의 생각으로 바꾸어 저장한다. 그 경험은 수채화도 되고, 수묵화도 되고 생각의 덧칠로 유화로도 표현되기도 할 것이다. 다녀와서 그 경험을 생각하는 것도 여행 이상으로 행복하지만, 그래도 또다시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 현재를 사랑하고 즐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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