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여름 Dec 10. 2019

집에 있는 워킹맘, 재택맘의 속사정

매일 회사에 따라오는 아이

재택근무를 하기 전 나는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무척이나 부러웠다. 콩나물시루 같은 출퇴근길 버스, 지하철을 타지 않아도 되고 아침부터 화장을 하지 않아도 되며 비교적 늦게 일어나고 남들보다 일찍 ‘저녁 있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5년 전 재택근무를 하게 됐을 때 나는 드디어 출근의 고통에서 벗어나 여유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됐다며 기뻐했다. 실제로 재택근무는 내 삶에 적잖은 여유를 가져다줬다. 업무시간이 되면 파자마를 입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여유롭게 커피도 타 마셨다. 나는 정말 재택근무가 좋았다. 아이가 생기기 전까지는…


재택근무를 시작한 지 약 1년 후 나는 첫째 아이를 낳았다. 아이를 낳기 전 나는 아이를 키우며 집에서 일하는 것의 효율성과 경제성에 대한 기대가 컸다. 아이가 잘 때 일을 하다가 아이가 배고픈 시간이 되면 젖이나 이유식을 주고 일을 하고 다시 아이가 잠들면 무선 유축기로 유축을 하면서 일을 하는 상상이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나는 아기가 어떤 존재인지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아이가 3~4개월까지는 괜찮았다. 하루 24시간 중 잠자는 시간이 많았고 크게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러나 백일이 지난 아이는 엄마가 하루 종일 필요했다. 아마 이때쯤 양육자의 관심이 크게 필요해지기 시작하고 심심하다는 느낌을 배우는 것 같다. 결국 나는 하루 종일 아이를 안고서 일을 했다. 사람이 급하면 뭐든 하게 되는지 나는 어느 순간 아주 노련하게 아이를 안고 타이핑을 하는 기술을 습득하게 됐다.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 작업을 하는 것도 힘이 든데 그것을 아이를 안고 한다고 생각해보시라. 내 상체 근육은 점점 굳어 갔다. 거의 두 달 동안 두통에 시달렸는데 당시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정말 큰 병이라도 걸린 것 같았다. 친정 엄마가 오셔서 뻣뻣하게 굳은 내 어깨와 목을 지압해주셨는데 어느 순간 귀에서 “펑”하는 소리가 들리며 주변 소리가 깨끗하게 들렸고 두통이 나아졌다. 그때나는 내 청력이 약해졌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아이가 좀 더 크면 나아지리라고 생각했지만 절망감은 시간이 갈수록 더 커졌다. 아이가 태어난 지 6개월이 되자 이유식을 시작했지만 먹일 시간이 없었다. 스푼에 담긴 미음을 먹는 게 엄청난 도전인 아이를 나는 기다려줄 시간이 없었다. 다양한 음식을 시도하기도 힘들었다. 그렇게 이유식을 하는 둥 마는 둥 지나간 아이는 나의 바람과 관계없이 21개월까지 엄마 젖을 먹었다. 


아이가 사회생활을 시작할 시기에는 새로운 위기가 찾아왔다. ‘플레이 데이트’를 해주거나 '문센'과 같은 곳에 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무리 지어 다니지 않는 내 특성도 있었지만 플레이 데이트를 하기엔 다른 엄마들과 시간이 맞지 않았다. 보통 다른 엄마들은 오전 10시나 11시경에 만나 3~4시쯤 헤어지는데 나는 오전엔 일을 하고 있었고 4시가 넘어야 일이 끝났다. 일을 끝내고 아이를 데리고 키즈카페에 가면 남아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아이는 고요한 키즈카페에서 혼자 장난감을 독차지하고 놀 수 있었지만 친구를 사귈 수 없었다. 




이렇듯 재택근무를 하면서 아이를 키우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지만 그 노동의 강도나 스트레스는 일반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는 듯하다. 아이를 돌보는 시간과 일하는 시간은 전혀 분리가 되지 않는다. 아이를 돌보면서 일을 해야 한다. 장소만 집일 뿐이지 회사에 아이가 따라와 옆에 하루 종일 있는데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보면 된다. 


원치 않는 회식이나 야근을 하거나 상사 눈치를 직접 볼 필요는 없지만 다른 고충이 있다. 사람 성격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나에게 재택근무가 주는 압박은 옆에 상사가 있는 것 이상으로 강했다. 남들이 하루 5개의 일을 한다면 나는 10개를 해야 했다. 그래야 집에서 편하게 일한다는 소리를 듣지 않을 테니까. 가끔은 그렇게 일을 많이 하면 알아주는 사람이 있겠지 하면서도 아직 출근하는 사람들로부터 고생한다는 말을 들어본 일은 많지 않다. 


재택근무를 하다 보니 아픈 날도 티를 낼 수가 없다. 회사에 나가면 아프다는 티가 분명히 날 텐데 구차하게 어차피 집에 있는데 뜬금없이 "저 아파요"하고 카톡 메시지를 보내기도 그렇고.. 아픈 날도 일은 똑같이 하면서 아이를 돌봐야 했다. 회식이나 야근은 없지만 잠시 리프레시 할 시간도 없이 아이 돌보기는 끝이 없다.  


일을 하고 아이를 돌보고 나니 나를 포기하게 됐다. 어느새 내 몸무게는 아이를 낳기 전보다 훨씬 덜 나가게 됐다. 운동을 해서 건강하게 살이 빠지고 근육이 붙은 게 아니라 그냥 앙상한 할머니 같은 몸이 됐다. 특히 당시엔 첫째를 낳았을 때라 지금보다 노련함이 부족했기 때문에 더 했다. 주변 사람들은 아이를 무릎에 앉혀 놓고 밥을 물에 말아서 김치랑 퍽퍽 떠먹으라고 조언했다. 일하고 아이 보느라 시간과 손발이 모자란 것이 문제가 아니라 아줌마 근성 같은 게 없는 나를 비난하는 것 같아서 그런 말이 참 듣기 싫었다. 못 먹는데 집안일이 제대로 돼 있을 리는 만무했다. 집안일이 되지 않은 것에 대해 다행히 남편의 원망은 없었지만 그런 환경에서 하루 종일 지내는 것 자체가 나에게 스트레스였다. 




1월 초 나는 6개월의 출산휴가 및 육아휴직을 마치고 다시 재택근무맘이 된다. 재택근무를 하면서 첫째를 키우면서 나는 아이를 온전히 봐줄 사람이 한 사람은 꼭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아이와 떨어져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그래서 둘째도 재택근무를 하면서 돌봐야 하는 나는 시작부터 베이비시터를 구할 예정이며 아이들과 종종 떨어지는 시간도 가질 생각이다. 특히 첫째 때와 달리 둘째는 반드시 수면교육을 해서 아이들을 재운 후 내 시간을 꼭 마련하기로 했다. 


개인적으로 많이 힘든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둘째도 재택근무를 이어가기로 한 것은 여전히 재택근무맘만 누릴 수 있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첫째를 키우고 둘째 아이를 낳으면서까지 나는 커리어를 잃지 않았고 아이가 자라는 모습도 쭉 지켜볼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첫째 아이는 나와 애착이 매우 강하다. 나는 첫째 아이에게서 태어나서 느껴보지 못한 사랑을 받고 있음을 안다. 일을 잘하려고 노력한 덕에 스스로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기도 했다. 


다만 두 번째 재택근무맘의 육아는 첫 번째보다 조금 덜 힘들길 간절히 바란다. 아이가 두 살이 될 때쯤 재택근무맘들에게 도움이 되는 팁을 알려주는 글을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힘들어하고 있는 재택근무맘이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정말 힘내시라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당신께서 얼마나 힘들게 아이를 키우며 일을 하고 있는지도 알아요. 우리 같이 힘내요!)


작가의 이전글 무리 지어 다니지 않아도 될까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