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맞이를 준비하는 나의 일곱 가지 다짐
첫째 육아를 하면서 나는 육아에선 계획대로 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배웠다. 엑셀표로 매우 섬세하게 만든 첫째의 하루 일과표는 한 번도 제대로 맞아떨어진 적이 없었다. 3개월간 모유수유를 하고 분유로 갈아타겠다는 계획도, 잠은 크립에서 재우겠다는 다짐도 실현된 것은 없었다.
예정대로 진행된다면 둘째 출산이 3주도 남지 않은 지금 내가 둘째를 낳은 이후의 삶을 계획해 보는 것이 과연 의미 있는 걸까 싶으면서도 둘째 때는 첫째 때 저지른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기에, 계획보다는 다짐을 해보기로 했다.
이 글이 출산을 앞둔 여성분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1) 일을 하지 않고 육아에만 집중하는 시간을 갖겠다. 첫째 때는 남편을 제외하고 딱히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3개월만 일을 쉬었다. 그것도 첫째가 언제 나올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출산 전 휴가가 한 달, 나머지 기간이 두 달이어서 아이를 낳고 제대로 쉬지 못한 채 업무에 복귀해야 했다.
이번엔 출산휴가 3개월에 육아휴직 3개월을 써 총 6개월의 시간을 육아에 집중할 계획이다. 엄청 긴 시간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이후에도 단축 업무 제도를 활용해 절반만 일할 계획이라 그다지 무리가 될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적어도 아이가 이유식을 먹을 때까지는 아이에게 집중할 것이다.
2) 나름의 산후조리를 하겠다. 첫째 때는 아이를 낳고 12일 후 미국 서부에서 동부로 이사를 했다. 이사를 한 후에 쉬지도 못했다. 아기가 낮잠을 잘 때 나도 자야 했는데 아이가 자는 동안 새 집에서 필요한 물건도 사고 짐 정리도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출산휴가가 끝났고 업무에 복귀한 나는 아이가 자는 동안에 일을 했다. 돌이켜보면 정말 제대로 쉰 시간이 없었다.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 처음에는 괜찮았지만 나중엔 정말 건강만이 아니라 성격이 나빠졌다.
산후조리원에 들어가거나 조리사를 부르진 않았지만 내 몸과 정신이 첫째 때처럼 늘 긴장상태에 있도록 내버려두진 않으려고 한다. 충분히 쉬고, 아이가 잘 때는 나도 잘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
3) 정기적으로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첫째를 낳고 남편은 나에게 토요일에 혼자 나가서 차를 마시거나 매니큐어라도 받고 오라고 했지만 왠지 마음이 불편해서 그렇게 하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통제광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나를 더 피곤하고 예민하며 신경질적으로 만들었다. 남편과 관계는 악화할 대로 악화했고, 아이에게도 신경질을 부렸다.
남편과 시간을 맞춰 평일에도 아이들을 두고 나가 다만 30~40분이라도 운동을 할 거고 토요일이나 일요일 중 하루 서 너 시간 정도는 운동 또는 글쓰기를 할 것이다. 아무것도 안 하더라도 무조건 아이들과 떨어져 나를 찾고 충전하는 시간을 갖겠다.
4) 나를 가꾸겠다. 기본적으로 샤워하기, 기초화장품 바르기를 게을리하지 않겠다. 첫째를 낳고 운동은 거의 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시간에 쫓겨 제대로 씻지 않았으며 화장품도 거의 못 발랐다. 늘 머리는 떡이 진 상태로 묶여 있었고 피부는 엉망이었다. 모유 수유를 핑계로 늘 제대로 된 홈웨어를 입고 있지 않았다. 정말 점점 동물의 왕국이 됐다. 티셔츠에 팬티 바람으로 온 집안을 활보했다. 나 자신이 정말 추하다고 느끼면서도 그렇게 계속 살았다.
이번에는 일찍 일어나든 남편에게 부탁을 하든, 반드시 매일 샤워를 하고 아침에 얼굴에 기초화장을 하겠다. 연하게 파운데이션도 바르고 입술이라도 칠하겠다. 집에 있더라도 예쁜 홈웨어를 입겠다. 운동도 열심히 해서 탄탄한 몸을 만들겠다.
5) 나부터 밥을 먹겠다. 첫째 때는 정말 먹지를 못했다. 사람이 먹지도 못하고 잠도 못 자니 당연히 예민해지고 성격이 나빠질 수밖에 없다. 하루 한 끼도 제대로 못 먹은 적도 있고 두 끼를 먹는 날이 거의 없었다. 거의 하루 한 끼씩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정말 미칠 것 같았다. 하루 세 끼를 다 챙겨 먹는 남편을 보면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남편이 못 먹게 한 것도 아닌데 그냥 내가 먹을 시간이 없었다. 아이를 먹이고 나면 일을 해야 했고 아이와 놀아줘야 했다. 반대로 일을 하고 나면 아이에게 밥(혹은 젖)을 먹이거나 재우거나 놀아줘야 했다.
이런 일이 반복되게 둘 수는 없다. 당장 이기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일단 내가 밥을 챙겨 먹고 아이를 케어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아이와 나를 위한 길이라고 믿는다. 이미 6개월치 미숫가루를 주문해 냉동실에 얼려뒀다. 바쁘면 우유에 미숫가루라도 타서 마신 후 아이를 돌보겠다.
6) 모든 '연관'을 최대한 줄이겠다. 첫째 육아가 힘들었던 것은 첫째의 모든 행동을 본의 아니게 '연관'시켜놨기 때문이다. 잘 때는 젖을 물거나 안아줘야 했다. 먹일 때도 안고 먹여야 했다. 특히 젖을 먹이며 재우는 것은 결국 아이를 나 밖에 재울 수 없는 상황을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아이의 이가 너무 일찍 상해버리는 결과로 이어졌다.
엄마 품에 안겨서만 자는 첫째는 아직도 나 없이 잘 수 없다. 밤에 내 품에서 벗어나면 깨서 안아달라고 한다. 나는 아직도 팔에 피가 안 통하는 것 같은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둘째 출산이 코앞으로 다가온 지금도 나는 대책이 없다. 둘째라도 따로 재우는 게 최선이라는 생각 밖에는...
둘째 때는 모유를 먹이든 분유를 먹이든 혼합하든 반드시 젖병 활용을 많이 하겠다. 첫째에겐 엄마의 젖만이 유일한 식기였다. 내가 아니고선 아이에게 젖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고 젖이 많아 유축기를 사용했음에도 유축한 모유를 먹일 방법이 없었다. 둘째는 왠지 모유 양이 첫째 때만큼 많을 것으로 보이진 않는데 완전 모유로 간다고 해도 반드시 젖병을 이용하도록 하겠다.
7) (위의 모든 것을 지켜서) 반드시 남편과 섹스를 하겠다. 결혼은 현실이다. 실제로 육아를 하면서 섹스리스가 되는 부부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나는 첫째 육아를 통해 부부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배웠고 이중 섹스도 정말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물론 출산 후 상처가 치료되는 동안, 혹은 내가 정말 성욕이 느껴지지 않을 때 억지로 쥐어짜서 섹스를 하겠다는 다짐은 아니다.
나는 첫째를 낳고 오랫동안 남편과 관계를 갖지 않았다. 일단 위에 써놓은 모든 서툶으로 인해 몸이 극도로 피곤했고 남편에 대한 감정이 안 좋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이와 스킨십을 지속적으로 하면서 내 몸이 받아들일 수 있는 타인과의 스킨십 한도가 다 차 버린 탓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내 몸에 자신이 없어졌다. 20개월이 넘는 모유 수유 기간 동안 모유가 흐르는 내 가슴은 극심한 역할 갈등을 겪었다. 33년을 가슴은 섹시한 부위라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그냥 젖통이 돼 버렸고 전혀 섹시하다고 느껴지지 않는 내 몸 전체는 섹스와 멀어져 버렸다.(섹스를 하지 않아도 부부 사이에 만족하는 커플이라면 그럴 필요가 없지만 둘 중 하나라도 섹스를 원한다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내 관리를 못하니까 남편 앞에서 옷을 벗기 싫었다. 옷을 입고 해도 섹시한 상태가 아니었고 그냥 방금 아이에게 젖을 준 아줌마의 모습일 게 분명해 전혀 내키지 않았다. 그렇다고 남편이 내 몸을 싫어해서 섹스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닌데 그냥 내가 더 싫었다. 다른 여자분들은 어떨지 모르겠는데 나는 나 스스로가 섹시하다고 느껴야 섹스를 할 마음이 생긴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하는 섹스가 더 섹시하고 만족스럽다.
모유수유를 마치고 쪼그라 붙은 젖은 더더욱 내 자신감을 빼앗아 갔다. 너무나 괴로웠다. 내 젖이 정말 흉측해 보였다. 물론 둘째를 낳고 모유수유를 중단하면 또다시 나의 가슴은 그 슬픈 상태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지만 운동을 통해 보완하고 수유를 하는 과정에서도 최대한 보존할 수 있도록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겠다.
* 첫째 육아는 내 인생 최대의 축복이었지만 가장 큰 도전이기도 했다. 큰 축복을 누리면서 나는 분명 대가를 치렀다. 둘째가 나를 새로운 축복으로 인도할 것이라는 사실을 믿는다. 동시에 둘째 육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더 포기해야 할 것들이 추가될 것이다. 첫째 육아를 통해 행복한 엄마가 행복한 아이를 만드는 데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몸소 배웠다. 더 행복해지기 위해 똑똑한 희생과 제한적인 포기를 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