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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여름 Aug 06. 2019

모유 수유, 행복하기만 할까요?

모유 수유는 천국이기도 했지만 지옥이기도 했다. 

둘째 출산 예정일을 단 5일 앞둔 오늘, 내가 가장 두려운 것은 다름 아닌 모유 수유다. 한국에서는 출산을 경험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이곳에서는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엄마 가슴에 놓이고 엄마는 첫 모유 수유를 시작한다.


첫째에게는 비자발적으로 모유 수유를 21개월이나 했다. 아이에게 우유 알러지가 있어서 우유를 먹일 수도 없었고 알러지가 있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눈치챈 탓에 특수 분유를 먹이기에도 너무 늦어 버렸다.(내가 냄새를 맡아도 너무 거북한 특수 분유를 아이는 강하게 거부했다.)


원래 나는 내 몸이 허락한다면 3개월 정도만 모유 수유를 할 계획이었다. 내 몸은 허락 이상으로 엄청난 양의 모유를 생산했다. 첫 모유 수유 때부터 아이의 얼굴은 모유로 범벅이 됐다.


한동안 내 젖을 먹고 있는 아이를 바라보는 것은 나에게 엄청난 행복감을 줬다. 주변의 몇몇 지인들도 넉넉한 모유로 오랫동안 수유를 하는 나를 부러워했다. 나도 왠지 '더 나은' 엄마가 된 것처럼 쓸데없는 우월감을 느꼈다. 


"Mother" by Elin Danielson-Gambogi, 1893 [출처=구글 이미지]




그러나 모유 수유 기간이 길어질수록 나는 종종 절망감을 느꼈다. 그리고 시간이 가면서 그 절망감은 더 잦아졌다. 아이가 모유를 먹더라도 직수만을 고집하지 않았다면 좀 나았을 것 같은데 첫째는 내 젖을 물려주지 않으면 절대로 모유를 먹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밖에서도 옷을 올리고 모유 수유를 해야 했다. 아이의 덩치가 커졌을 뿐만 아니라 모유를 먹으면서도 발차기를 해대는 바람에 아무리 가리개를 해도 내 가슴은 종종 의도치 않게 '전체 공개' 되고 말았다.


시도 때도 없이 흘러내리는 모유 때문에 옷을 자주 갈아입어야 하는 것은 오히려 아주 작은 불편함에 불과했다. 아이가 먹는 양이 늘면서 계속 모유 양도 늘었는데 자다가 일어나 유축을 하지 않으면 모유가 그대로 흘러나오거나 가슴이 너무 단단해져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정말 피곤할 때는 옷이 젖든 말든 손으로 젖을 쥐어짜곤 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모유 수유를 하면서 예민해진 가슴, 특히 유두가 가장 신경질이 났다. 늘 그곳이 예민했다. 남편이 내 가슴을 건드릴 때면 쌍욕이 나올 정도였다. 점점 아이의 입이 닿는 느낌조차 불쾌해졌다. 나는 그 불쾌한 느낌을 참기 위해 눈을 질끈 감고 모유 수유를 하기 일쑤였다. 내 유두는 그냥 짧은 빨대 정도가 돼 버린 것 같았다.


젖 때문에 아이가 나에게 커다란 집착을 보이는 것은 순간순간 나를 우쭐하게 했지만 나는 아이에 묶여 21개월 동안 거의 개인 생활을 할 수가 없었다. 이 기간 중 나는 단 세 차례 혼자 외출을 했다. 두 번은 한국에서 온 친구와 지인을 만나기 위해, 한 번은 동네 친구들과 술 한 잔을 하기 위해서였다. 남편은 육아로 지친 나의 외출을 적극적으로 지지했지만 내 젖이 필요한 아이는 그렇지 않았다. 아이는 내가 들어올 때까지 나를 찾느라 울어 댔다. 아무리 남편이 지지해주더라도 그런 아이를 두고 혼자 외출을 할 수는 없었다. 


                                                      

매일 유축을 한 엄마는 있지만 유축한 모유를 먹은 아이는 없었다고 한다.

                  

가슴이 늘 민감한 상태가 되면서 남편의 손길을 거부하는 내 모습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 젖이 그저 '식기'로만 변한 것 같았다. 한때 쾌감을 주던 내 가슴은 그냥 밥그릇이었다. 젖을 원하는 내 아이와 엄마가 되기 전과 같고 싶은 가슴이 달린 나, 내가 왜 그렇게 가슴에 민감해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남편,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게다가 모유 수유 기간이 길어질수록 주변의 부러움도 점점 사라져 갔다. 오히려 "이제 엄마 젖에 영양가도 없어"라는 말을 더 자주 들었다. 소아과 의사도 이제 분유로 전향하라고 했다. 그때쯤 나는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아이에게 분유를 먹이고 싶은 엄마였을 것이다. 알러지 때문에, 아이의 분유 거부와 젖 집착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일을 하면서 육아를 하다 보니 순간순간 급히 넘어가고 내 일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인내심을 갖고 분유로 갈아타지 못한 것 같기도 하다. 아이가 12개월이 넘어서는 분유도 아닌 우유를 시도해볼 수 있었지만 알러지 때문에 포기했다.


모유 수유를 마친 후에도 후유증은 있었다. 일단 가슴이 사라졌다. 원래도 가슴이 큰 건 아니었지만 모유 수유를 마친 후에는 정말 볼품이 없어졌다. 어떤 브라도 맞지 않았다. 유두까지 사라진 건 아니니까 브라를 하긴 해야 하는데 브라의 윗부분은 항상 비어있었다. 옷을 갈아입는데 남편이 방에 들어오면 나는 급히 옷으로 가슴을 가렸다. 한때 우리 부부 성생활에서 어떤 역할을 했던 내 가슴은 오히려 성생활을 방해하는 역할을 했다. 나는 내 가슴이 부끄러워서 남편과 성관계를 더 피했다.


때로는 내가 엄마가 되느라 가슴을 포기한 거니까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나 자신을 설득시키려 노력도 했지만 쉽게 설득이 되지 않았다. 아무리 이렇게 변한 가슴도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하려고 해도 그렇게 되지 않았다. 탱탱한 가슴에 대한 갈망은 남성 중심의 사고라며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싶었지만 그렇게 생각할 수 없었다. 내 가슴 사이즈가 C컵일 필요는 없지만 이건 아니었다.


잘 때도 젖을 찾는 아이에게 그냥 젖을 내줘버린 탓에 아이도 모유를 뗀 이후 고통을 겪었다. 만 3살이 되기도 전에 앞니가 다 썩어버린 것이다. 미국 치과에서는 아이의 앞니를 몽땅 빼야 한다고 했고 한국 치과에서는 좀 더 지켜보자고 했는데 나는 후자의 말을 들었다. 얼마 전엔 아이가 유치원에서 장난을 치다 바닥으로 넘어져 이미 상해 약해진 앞니가 다 부러져 버렸다.




이처럼 21개월간 모유 수유를 하면서 나는 때때로 천국 구경을 했지만 내가 지옥에 머문 시간도 결코 짧지 않았다. 모유 수유는 그림에서 보듯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가끔은, 더 솔직히는 자주 '엄마 젖 냄새' 때문에 아이가 나를 아빠보다 더 찾는다는 남편의 말이 그렇게 서운하게 들렸다.


다시 돌아가도 모유 수유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누군가 강제하지 않아도 그렇게 하겠지만 다시 첫째에게 모유 수유를 한다면 좀 더 현명하게 하고 싶다. 아이에게 모유 수유를 하면서도 나 자신을 조금 너무 희생시키고 싶지는 않다. 내가 행복한 만큼 아이도 행복하다는 것을 이제 아니까.


그리고 아무리 쉽게 젖이 나오는 엄마라고 해도 모유 수유가 정말 정말 힘든 일이라는 것을 남편 등 주변에서 인식하고 좀 더 응원해줬으면 좋겠다. 모유 수유를 하는 하루 몇 번 몇 분의 시간뿐만이 아니라 하루 종일, 그리고 모유 수유가 끝났다고 그것으로부터 해방된 것이 아니라 한동안 속상할 수도 있다는 사실도 주변에서 좀 더 알아줬으면 좋겠다. 


****


아직도 엄마 젖을 보고 환호하는 첫째에게


글을 마무리하고 나니 내 모유를 열심히 먹은 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구나. 엄마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모유 수유 자체가 주는 어려움이지 너에게 받은 스트레스가 아니란다. 처음 육아라는 현실을 맞은 초보 엄마가 욕심만 내고 노련하지 못한 탓이었지. 그래도 내 젖을 먹고 달콤하게 잠든 너의 모습을 보면 엄마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정말로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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