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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위 Aug 22. 2024

갇혀버린 여름 공기, 멈춰버린 오른팔, 느껴버린 행복

2024년 여름의 하이라이트

 늘 바람이 잘 든다고, 나의 집은 너무 시원하다고 언제나 자랑을 했었건만 올여름처럼 바람 한점 없이 더운 공기로만 꽉 채워진 날들도 없을 것 같다. 집에만 오면 푹푹 찌는 더위에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땀이 송글 송글 맺혔다. 멈춰버린 집안 공기에 혹시라도 창문이 닫힌 건가 하고 쳐다보면 활짝 열린 창문으로 강렬한 햇빛은 애교요, 훅훅 찌는 바람인지 공기인지 알 수도 없는 열기가 느껴질 뿐이었다. 이런 더위는 낮뿐만 아니라 밤까지도 지치도 않고 지속되었는데 24시간 맹렬히 열일하는 더위 덕분에 잠을 이루지 못한 날들이 쌓여만 갔다.

 “9시 뉴스입니다. 요즘 열대야에 잠을 자지 못하는 분들이 많으신데요, 지속적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면 면역력이 약해진다고 합니다. 각별히 건강에 주의해 주셔야겠습니다.”

더위에 깨버린 새벽에 슈퍼문이 너무 밝아 찍었던 사진. 새벽 3시인데도 불밝은 창들에 다들 잠을 못자나 했었다.

 선풍기 앞에 붙어 뉴스를 보며 다들 힘들어하는구나 하며 안타까워하던 어느 날,

나의 오른쪽 어깨는 극심한 통증과 함께 움직일 수가 없었다. 세상에나! 이런 통증은 처음이었다. 팔을 움직이려 하면 속 안에서 바늘이 마구 찌르는 듯했다. 가만히 있어도 벌 수십 마리한테 쏘인 듯이 욱신욱신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나의 팔과 통증에 더위에 흐르는 땀인지, 식은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들이 흘러내렸다.

 생전 처음으로 정형외과를 가보았고, 다행히 치료를 통해 호전이 되고 있다. 어깨에 주사도 맞고, 마사지도 받고, 약도 먹으면서 일주일 이상은 고생을 했다. 치렁치렁하게 긴 머리조차 묶지를 못해 날도 더운데 산발로 풀어헤치고 다녔고, 옷을 입고 벗기도 고통스러웠으며, 숟가락을 들었다 내렸다도 버거웠다. 샴푸나 세제를 꾹꾹 눌러 짜는 것도 부들부들했으며, 펜을 잡은 손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오른팔이 나에게 중요한 것은 알았으나 이렇게 많은 역할들을 하고 있는지 새삼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갑작스러운 오른팔의 병가에 왼팔은 초과근무에 돌입했고, 나의 뇌는 방학을 맞이했다.


 ”선생님이 주사를 세게 놔주셔서 그런가 많이 좋아졌어요. 이제는 머리도 묶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

오늘은 모처럼 병원에서 웃으며 나왔다. 완치된 것은 아니지만 염증이 가라앉아 오른팔을 어느 정도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단지 평소처럼 내 팔을 움직인 것뿐인데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머리를 바짝 묶은 것도 행복했고, 바닥을 닦는 것도 행복했다. 의욕 있게 몸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 너무 행복했다.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 아니었구나라고 알게 된 것도 행복했다. 오른팔이 멀리 휴가를 갔다 다시 돌아온 것처럼 반가웠다.

 한동안 어지러웠던 방을 정리하던 오늘, 갑자기 창문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 들어온다. 이게 얼마만의 바람다운 바람인지 모르겠다. 며칠 비가 오고 났더니 오늘은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분다. 이마저도 멀리 휴가 갔던 바람이 다시 돌아온 것처럼 반가웠다. 멈춰있던 공기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듯하다.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


 느껴버린 행복에 글을 아니 적을 수 없었다.

오늘만큼은 오른팔도 선선한 바람도 함께 돌아온 2024년 여름의 하이라이트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더위도 한풀 꺾여 조금은 선선한 날에 꿀잠을 이룰 수 있는 날들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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