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미디어의 글로벌 한류 메신저
1인 미디어 전성시대, 숱한 채널들 사이에서 보석 같은 채널을 찾아 참 구독을 추천드리는 유튜브 '서평' 시리즈 《희대의 NOW 구독중》.
이번 칼럼에서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한 한국인 크리에이터를 소개드린다. 디지털타임스 구독자 여러분들께서는 세계 인구대국하면 순위를 어떻게 떠올리시는지? 아마 중국, 인도, 미국 정도까지 꼽아보다 이후론 남미? 아프리카? 이렇게 갸우뚱하실 듯하다. 전 세계 4위 인구대국. 정답은 인도네시아다. 약 2억 8천 명에 달한다. 여기에 세계 14위의 국토 면적과 다양한 천연자원, GDP도 세계 16위의 성장세를 기록 중으로 여러 면에서 발전 가능성이 무한한 나라다. 이 나라에서 한국 사람들은 모르는 이가 있어도 인도네시아인들 사이에선 모르는 이가 없는 SNS 한국인 스타가 있다. 5,000만 우리나라 인구의 5배를 훌쩍 넘는 이들에게 인정받는 인물이라면 그야말로 글로벌 인플루언서다. 그녀의 이름은 한유라. 한글 이름보다 영문 Han Yoo Ra로 구글 검색창을 살펴보면 그녀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한유라 크리에이터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한 곳도 그녀와 딱 어울리는 장소였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전파진흥협회(RAPA)의 지원으로 얼마 전 서울 중구에 개소한 1인 미디어 창작자 양성 지원센터의 ‘1인 미디어 콤플렉스’ 내 특설 오픈 스튜디오 부스다. 심지어 그녀와의 이날 인터뷰는 이 스튜디오에서의 최초 촬영이었으니 여러모로 의미 있는 만남이자 감사한 기회였다. 스튜디오 전면이 투명 유리라 맑고 파란 가을 하늘과 햇빛을 자연광으로, 무대 뒤 대형 LED 모니터에는 그녀의 유튜브 메인 채널을 배경으로 삼아 특별한 자리에서 특별한 인물과의 유쾌한 인터뷰를 시작했다.
인도네시아에서 ‘한유라’라는 세 글자의 인지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구독자분들께서 쉽게 공감하실만한 얘기로 코로나 이전에 현지로 출장을 갔던 후배 프로듀서의 경험담을 먼저 들려드릴까 한다. 여성 PD인 후배가 한국에서 왔음을 밝히면 거의 가는 곳마다 다음의 세 가지 질문이 공통적으로 이어졌다고. 첫째는 혹시 성형했는지, 두 번째는 불닭볶음면을 즐겨 먹느냐, 그리고 세 번째 당신은 한유라와 아는 사이냐 라는 것. 한유라 크리에이터의 인도네시아에서 유명세가 어떤 수준인지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녀가 인도네시아 국민들 전반에게 얼굴을 알리고 사랑받게 된 것은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지상파 채널 Net TV에서 방영되었던 인기 시트콤 프로그램 끌라스 인터나시오날(Kelas Internasional, 국제학교)에 연기자로 출연하면서부터다. 다소 엉뚱하지만 에너지 넘치고 사랑스러운 한국인 학생 역할의 시트콤 속 캐릭터는 그녀를 말 그대로 셀럽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여기서 놀라운 사실은 그녀는 이 출연 이전에 연기 경험은 물론 방송국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는 일반인이었다는 것.
IMF 당시 생활고로 고심하던 끝에 당시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 이후로 동남아 인기 관광지로 알려지며 관광업으로 먼저 자리를 잡고 있던 친지에 의탁해 제2의 삶을 떠나온 부모님과 함께 인도네시아 발리섬으로 그녀가 도착했던 때는 이제 막 초등학교를 졸업한 나이. 현지에서 중학교, 고등학교를 재학하던 시절 외국인 전용 학교에 가면 영어도, 인도네시아어도, 한국어도 모두 실력이 애매해질 수 있다는 친지의 조언과 부모님의 선택에 발리 현지의 일반 학교로 진학했다. 결론적으로 그 조언은 맞았고 지금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지만 그 중간 과정은 눈물범벅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피부색도 다르고 언어도 문화도 다른, 게다가 외국인은 매해 거의 전교에 본인 한 명뿐이었다고 하니 상대적으로 주눅 들고 친구도 많지 않아 조용히 지내던 청소년기였다고 회상한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그녀에게 하나둘 친구들이 늘어가는 계기는 당시 바람이 일던 한류의 힘이었다고 한다. 당시 해외 판권이 풀려 다소 늦게 방영이 시작된 드라마 ‘풀하우스’가 인도네시아에서 공전의 히트를 쳤고, 슈퍼주니어와 소녀시대의 노래를 듣는 학생들이 늘면서 그녀에 다가와 가사 등을 질문 해오며 친해지기 시작했다는 것. 이후 대학생이 되면서 그녀에게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경제적인 독립까지는 아직 어려웠던 가정 형편에 대학 진학을 앞두고 고민 중이었던 그녀에게 글로벌 대학으로 기치를 내걸고 신입생을 모집 중이던 그녀의 모교에서 신입생 중 콘테스트를 통해 홍보대사 격인 ‘퀸’에 선발되면 장학금 혜택을 준다는 공고를 냈다. 경제적 이유도 있었고 이제 인도네시아어도 실력이 붙은 그녀는 용기를 냈다. 그리고 당시 학교의 분위기와 맞아서였을까 당당히 1등 ‘퀸’에 선발된다. 이후 학교 홍보를 겸하여 SNS 세계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이른바 데뷔를 하게 된다. 인도네시아어를 자국어처럼 구사하며 학교를 홍보하는 ‘퀸’ 경력에 그리고 마침 불어온 한류의 바람을 타고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로 한류 콘텐츠들을 친절히 풀어 설명해주는 그녀는 금세 인기를 넓혀간다. 자신도 모르던 자신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녀의 첫 유튜브는 현재와 같이 다양한 콘텐츠가 아니었다고 한다. 인기 K-POP 곡들은 인도네시아어로 해석해달라는 친구들의 요청이 하도 반복되다 보니 아예 이 설명을 영상으로 만들어서 말 그대로 공유용으로 만들었던 것이 대박을 낳은 것이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에서 점차 인기를 끌며 대학 졸업 후 마케팅 회사에 취업한 그녀는 마침 당시 현지로 진출하던 국내 대기업의 쇼핑몰과의 공동 프로젝트에 자신의 SNS 활용한 마케팅을 접목한다. 결과는 대 성공이었다. 덕분에 여기저기 광고 요청도 쇄도했고 인스타그램, 유튜브도 동시에 성장한다. 이때 그녀를 눈여겨보던 Net TV의 제작자가 시트콤 출연이라는 모험(?)을 시도한 것이다. 프로의 그 판단은 옳았다. 상어 인형 꼬송(Kosong)과 함께 독특한 캐릭터로 분한 그녀의 현지에서의 인기가 당시 어느 정도였을지는 아직도 아마존에서 판매가 되고 있는 그녀의 자서전 ‘Yoora's Diary‘가 증명한다. 스물여섯 나이에 자서전이 나온 것이다. 이후로 드라마, 광고, 영화 종횡무진했다.
그러나 무리에 따른 영향도 있었다. 충분한 휴식을 요하는 갑상선 관련 질환을 앓게 되면서 그녀는 활동을 당분간 접기로 한다. 비자 문제 등의 이슈도 있었고, 스스로를 돌아볼 여유 없이 달려온 그녀는 회사도 관두게 된다. 사실 그녀가 없는 SNS 계정들은 의미가 없었기에 회사와 공동으로 운영해온 그녀의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도 모두 없앴다. 어려운 결정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휴식기 이후 다시 자신만의 단독 계정을 갖고 2018년 다시 크리에이터로 새로운 시작을 알렸다. 물론 구독자도 팔로워도 아무도 없는 제로에서부터다. 2021년 지금 구독자 여러분들이 보고 계신 구독자 108만 명의 그녀의 유튜브 채널은 이렇게 다시 하나하나 팬들과 호흡하며 쌓아 올린 결과다. 보면서도 믿기 어려운 꿈같은 사실이다. 그녀에게 물었다. 겸손하게 답했다.
“제가 한 게 아니고, 주변의 환경과 많은 분들, 특히 인도네시아 친구들, 팬들의 도움 덕분이죠. 저 혼자만의 힘으로는 어려웠을 거예요”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한류라는 특별한 문화의 전파 기류와 인도네시아의 국가적 성장이 맞물린 시기에 그녀가 가운데 있었음은 물론 맞다. 반면, 눈물을 꾹 참아내며 아직 국어도 서툴렀을 나이에 낯선 나라, 문화에 적응하며 그곳의 언어를, 친구와 팬을 그리고 자신감을 만들어낸 것은 그녀에게 기회가 주어진 또 다른 이유다.
그녀는 최근 한국에 둥지를 틀었다. 한국에 진출하고자 하는 인도네시아의 젊은이들이 점차 많아지면서 그들이 한국에 대한 정보를 직접 전하는 콘텐츠를 원한다는 것. 한국 곳곳의 문화와 정보를 그녀의 채널에 담아 인도네시아에 전하는 형태로 콘텐츠를 다양화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전문 소속사에도 몸을 담았다. 얼마 전에는 포털 인물 검색에도 등록했다며 기쁜 마음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영상으로 소개했다. 인도네시아 2억 8천만 명이 알아보는 인물이지만 한국에서는 몰라주던 상황이 못내 아쉬웠던 모양이다. 그녀의 꿈은 자신처럼 크리에이터를 꿈꾸는 이들을 위해 노하우를 공유하고, 또 좀 더 경제적으로도 성장한다면 장학재단을 만들고 싶다고 한다. 대학 때 인도네시아의 장학금 제도를 통해 받았던 기회가 본인에 인생에 큰 도움이 되었듯 자신도 꼭 후에 이를 베풀고 싶다고 한다.
벌써 스물두 번째 칼럼을 진행하지만 이번 한유라 크리에이터는 정말 에너제틱했다. 시종일관 밝고 긍정적인 그녀의 느낌은 함께 있는 모든 이들에게 좋은 기운을 전해주는 듯했다. 아니나 다를까 인터뷰를 끝내고 함께 한 그녀의 인스타그램 릴스 촬영에서도 특별한 부탁을 해왔다. “안녕, 헬로! Masa Depan Dunia (마사 드빤 두니아)”라고 함께 외쳐달라고. 이 뜻은 인도네시아어로 ‘안녕, 우리의 멋진 미래!’다. ‘마사 드빤 두니아’는 한편 그녀의 팬들을 부르는 애칭이기도 하다. 이 역시 그녀답고, 또 미래가 더 아름다울 그녀의 팬들답다.
아쉽게도 지면은 한계가 있어 그녀의 이야기를 글로 전하는 것은 이만 줄인다. 곧 ‘Yoora's Diary‘ 2편을 한국에서도 충분히 써 내려갈 거라 기대되는 유쾌하고 사랑스러운 글로벌 크리에이터 ‘한유라’의 스토리는 《희대의 NOW 구독중》 유튜브로 확인하시기 바라며, 한 줄 서평으로 이날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1인 미디어 전성시대, 숱한 채널 들 사이에서 보석 같은 채널을 찾아 참 구독을 추천드리는 《희대의 NOW 구독중》 한 줄 서평.
1인 미디어 생태계 곳곳을 누비는 《희대의 NOW 구독중》. 다음엔 또 어떤 화제의 주인공들과 만나게 될지 기다려주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