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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돌씨 May 26. 2022

자네, 대학원에 오지 않겠나?

: 대학원vs취업, 선택의 기로에 서다


미술사는 먹고 살기 힘든 학문인데 왜 배우러 왔냐며 호통 아닌 호통을 치시던 교수님은 도망치지 않고 남아있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미술사는 인문학의 꽃이다."


흔히들 말하는 인문학 3대장인 문학, 역사학, 철학을 자양분 삼아 비로소 탄생한 것이 미술사라는 말이다.  말을 듣고 보면 굉장히 낭만적으로 느껴지지만 미술사는 무턱대고 공부하기에 만만치 않은 학문이라는 것이 나의 의견이다.


미술사는 단순하게 나누자면 회화사, 도자사, 불교미술사, 서양미술사 등이지만 여기에 시간과 공간적인 조건이 붙으면서 한국회화사, 중국회화사, 한국도자사, 중국도자사, 중앙아시아불교미술사, 서양근대미술사, 동시대미술사 등으로 세분화된다.


내가 배웠던 미술사학과 커리큘럼을 토대로 말해보자면 학부에서는 1학년 때 한국미술사와 서양미술사를 각각 개론으로 수강하고, 그 이후에 각자의 취향과 여건에 따라 위에 언급한 세분화된 과목을 수강하는 식이다. 이 커다란 갈래의 곁가지로 고고학개론, 보존과학개론, 한국건축사, 미술사학사 등의 과목도 더해진다.


이렇게 미술사에 대한 4년치의 방대한 지식을 꽉 채워넣고 졸업할 때가 되면 고민이 되기 시작한다.


"이제부터 뭐하지?"


대학교에서 미술사학과를 졸업하면 전공을 살리기 위해 대학원으로 진학하는 경우가 흔하다. 나는 사실 졸업할 즈음에 취업을 하고 싶었다. 휴학을 하고 1년 늦게 들어왔으니 조급한 마음도 있었고, 학과에서 제공해주는 취업특강을 통해 미술사라는 학문이 미술관과 박물관 외에도 경매회사, 미술전문잡지 등등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켠으로는 2년동안 배웠던 미술사에 대한 물음이 아직 너무도 많이 남아있는 것 같았고, 솔직히 여건이 된다면 공부를 더 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러던 찰나에 고학년(3,4학년)을 대상으로 한 진로상담이 진행되었고, 나는 공교롭게도 무턱대고 문을 찾아가 두드렸던 전 학과장이신 L교수님의 상담조로 배정되었다. 교수님은 나의 성적, 그동안의 수업태도 등을 좋게 보셨던 모양이었다. 그리고는 선뜻 이렇게 말씀하셨다.


"대학원에 와서 공부를 계속해보는 게 어때요?"


교수님의 제안은 매우 감사했지만 나는 거절하고 싶은 마음 반, 승낙하고 싶은 마음 반이었다.


거절하고 싶은 이유는 현실적인 여건 때문이었다.

우리집은 대학원의 학비를 지원해 줄 정도의 여유가 없었고, 대학도 아르바이트를 하며 번 돈으로 생활했던 터였다. 나는 이런 상황을 솔직하게 말씀드리자 교수님께선 자대출신이 대학원에 진학하면 장학금 제도가 있으니 학비가 일부 충당될 것이라는 말과 함께 모자라면 가능한 장학금을 더 알아봐주겠다고 해주셨다. 결국 그 날은 결론을 내지 못하고 다음 상담 때까지 고민해보기로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가 가족들에게 이야기하니 답은 간단했다.


"네가 하고 싶으면 해."


나는 가족들의 쿨한 답변에 스스로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지금 졸업하고 취업준비를 하면 어디에 지원할 수 있지?'

'부전공도, 복수전공도 없고, 학부는 편입학인데...'


이런저런 현실적인 문제들 앞에서 강렬하게 끓어오르는 지점이 있었다.


'아무튼 공부는 더 하고 싶다..!'


그리고 교수님과 다시 마주 앉은 다음 상담일에서 나는 "고민을 해봤는데요.." 하고 운을 뗐다.


"저, 대학원 가겠습니다!"


나의 대답에 교수님은 흡족한 미소로 화답해주셨고, 대학원에서 무얼 공부하고 싶은지 찬찬히 고민해보라고 하셨다.




언젠가 교수님의 연구실에 들렀다가 책을 한 권 얻은 적이 있다. 그 책은 교수님께서 번역한 책이었고, 흥미로운 주제를 담은 컬러도판으로 꽉꽉 채워져 있었다.


속표지에는 내 이름과 함께 '훌륭한 미술사학도가 되길 바라며' 라는 글귀가 쓰여있었다.



나는 교수님의 바람처럼 훌륭한 미술사학도가 되어 가고 있는 중일까?


훌륭한 것까지는 아니어도 부끄럽지는 않은 미술사학도가 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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