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에 들어오기 전까지 나는 대학원이라는 곳이 당연히 최소 3~4년은 다녀야 졸업할 수 있는 곳인 줄 알았다. 배우는 과목은 더 어려워지고 논문도 써야하니 시간과 공력이 대학교 다닐 때의 몇 곱절로는 더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대학원을 3년도 채 다니지 않았다.
이수학기인 4학기동안은 24학점의 수업을 들었고, 한 학기동안 온전히 논문만을 썼다.
아니, 논문은 사실 5학기 내내 쓴 것이었다. 이렇듯 입학과 동시에 논문을 준비하게 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금전적인 어려움이 컸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전공에 대한 것보다는 대학원과 돈에 대한 현실적인 경험을 털어놓고자 한다.
나의 대학원 생활이 짧았던 이유 중 하나는 재학기간이 길면 길수록 늘어나는 빚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장학금의 수혜규정이었다.
나는 대학원을 다니는 내내 가족들로부터 그 어떤 금전적인 지원도 받지 않았던 터라, 장학재단으로부터 등록금을 대출받거나, 장학금으로 충당하는 수 밖에 없었다.
대학원생에게 지급하는 장학금 종류에는 일반적으로 'RA'로 불리는 연구조교 장학금과 'TA'로 불리는 수업조교 장학금이 있다. 내가 다녔던 학교 역시 이 두 종류의 장학금이 있었는데, 장학금의 수혜범위가 등록금 100퍼센트가 아니라 50퍼센트였기 때문에 전액 장학금을 받으려면 두 가지 이상의 조교직을 수행해야 했다.
수업조교는 학부생 때부터 익히 보아온 것이 있어 어렴풋하게나마 알고 있었지만, 문제는 연구조교였다.
연구조교 장학금은 별도로 어떤 직무를 수행하는 것은 아니지만 "입학 후 5학기 이내에 연구논문 1편을 등재후보지 이상의 학회지에 투고하는 것"이 그 조건이었다.
나보다 앞서 장학금을 받았던 선배들이나 교수님들 사이에서는 "학계 특성 상 석사과정생이 5학기 안에 등재후보지 이상의 학회지에 투고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각 학과의 특성을 반영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적용한 사례"라는 말이 나오곤 했다.
입학할 때는 잘 몰랐지만 졸업할 즈음에는 이게 얼마나 터무니 없는 요구였는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우리 학계에서는 석사과정생이 학회지에 투고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적어도 석사졸업생 신분으로 5학기 안에 학회지를 투고하려면 5학기 안에 석사학위논문을 내서 석사학위를 취득한 뒤, 학회용 연구논문을 투고해야 한다는 소리였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교수는 교수대로, 학생은 학생대로 힘들어지는 상황이 지속되었다. 내가 수업조교를 하던 시절, 졸업한 후에도 학회논문에 대한 조언을 얻으러 연구실을 찾아왔던 선배들의 초췌한 모습과 대학교 수업과 대학원 수업 준비를 해가며 여러 명의 논문 지도를 동시에 하다보니 건강이 급속도로 안 좋아지셨던 교수님들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도 후배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으리라.
다른 계열의 대학원은 연구실마다 연구사업을 따오거나 국가발전에 기여할 만한 수준의 논문을 발표해서 비용을 충당하거나 커리어에 기반이 될 연구실적을 쌓는다는데, 인문계열 대학원에서는 꿈 같은 소리다. 애초에 대학 연구실에서 진행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거의 전무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세상이 인문학 연구자들에게 박한 이유는 뭘까? 역시 인문학은 돈이 되지 않아서일까?
그렇게 등록금이라는 커다란 산을 해결하고 나니 눈 앞에는 생활비와 연구비라는 또 다른 능선이 보였다.이들은 장학금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별도의 비용이었으므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학교를 가지 않는 주말에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사실 나는 대학원에 입학할 당시 지도교수님으로부터 "공부에 전념하려면 아르바이트를 그만두는 것이 좋다"는 말과 함께 "집에서 금전적인 지원을 받지 않으면 다니기 어려울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어찌되었건 우리집은 그렇게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으므로 아르바이트는 그만둘 수 없다고 분명하게 말씀드렸고, 결국 두 종류의 장학금과 아르바이트 급여인 매달50여 만원을 가지고 2년 반을 버텼다.
연구를 하러 해외에 나갔을 때, 체류비가 부족해서 어쩔 수 없이 형제에게 돈을 빌린 적도 있고, 형편없는 끼니를 먹거나 교통비를 아끼려고 버스 정류장 몇 정거장을 걸어다니는 일은 다반사였다. 또래 친구들이 직장에 입사해 사회초년생에서 어엿한 직장인으로 성장하는 동안 나의 시간은 대학에 계속 머물러 있는 것 같아 초라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심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고통스러운 시간들이었지만 그래도 이 공부가 좋았느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좋았다고 답할 것이다. 직장인이 되고난 요즘에서야 좋아하는 일을 적절한 시기에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이었는가를 깨닫는다.
지금도 어딘가에 장학금을 받아 등록금은 해결했지만 생활비나 여타 연구비용을 마련하지 못해 곤란했던 과거의 나와 같은 경험을 하고 있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둘러보면 인문학을 교양으로 향유하려는 움직임은 많지만 아직 세상은 인문학도들에게 녹록치 않은 것 같다.
이처럼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매일을 흔들리며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 우리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고, 헤쳐나갈 수 있는 길이 있다면 포기하지 말고 찾아보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