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 누리호가 무사히 지구를 떠나고 한국은 명실공히 자력으로 발사체를 우주로 보낸 일곱 번째 나라가 되었다. 공중에서 허망하게 폭발해버린 나로호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누리호의 성공이 가져다주는 의미를 어렴풋하게나마 느꼈을것이다.
누리호의 발사 성공 소식 중에 흥미로웠던 것은 나로호 발사 당시 이를 직접 목격했던 고등학생이 수 년이 지난 뒤 누리호 발사 프로젝트에 참여한 연구진이 되었다는 얘기였다. 모두의 오랜 꿈이 실현되는 순간, 거기에 자신의 힘을 보탤 수 있다면 그보다 보람찬 일이있을까.
그래서 이번엔 꿈을 별처럼 생각하고 좇아가는 존재, 연구자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대학 생활을 다룬 '밈(meme)' 중에는 "학사는 자기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석사는 자기가 아는 것이 없었다고 생각하며, 박사는 자기 이외의 사람들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고, 교수는 자신이 아는 것만 가르친다"는 내용의 밈이 있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학부를 졸업하고 막 대학원에 입학했을 때까지만 해도 스스로 제법 많은 것을 알고 있고, 대학원에서 더 깊이 있는 학문을 배울 준비가 되어있다고 자신했다. 꽤 자만해져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먼저 대학원 과정을 이수한 선배들이 으레 "나 따위가.."라고 자조적으로 말하는 광경을 볼 때마다 이렇게 생각했다.
'배운 것이 저렇게 많은데 왜 스스로를 멍청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 옛날 의술의 아버지로 불리는 히포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인생은 짧고, 예술(Art)은 길다. 기회는 달아나기 쉽고, 시도는 위험하며, 판단은 어렵다."
앞 문장만 들으면 인간의 삶이 가진 유한성과 예술적 가치의 무한함을 예찬하는 말 같아 보이지만 사실 이 말은 유한한 삶을 사는 인간이 배울 것은 무한하다는 뜻이다. 풀어보자면 벼가 익으면 고개를 숙이듯 인간 역시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신중하고 겸손하게 늘 배우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사회심리학 이론 중에는 '더닝-크루거 효과'라는 것이 있다. 앞서서 언급한 대학원 밈에 빗대어 보자면 '우매함의 봉우리'가 대학교 졸업 직후에서 대학원 입학 초기, '자신감의 하락'이 대학원 재학 중, '절망의 계곡'이 석사논문 집필 시기, '깨달음의 오르막'이 박사 과정, '지속가능성의 고원'이 교수직이지 않을까.
더닝-크루거 효과를 설명한 그래프. ⓒ더퍼블릭뉴스
지금으로부터 몇 년 전, 대학원에 입학한 지 1년 정도 되었을 무렵의 일이다.
다른 지역으로 2박 3일 일정의 답사를 가게 되었고, 일정 도중에 교수님들과 대학원생들이 함께 술자리를 갖는 시간이 있었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한 교수님께서 얼큰히 취한 얼굴로 이렇게 말하셨다.
"우리가 연구하는 것들이 드넓은 우주의 입장에서 보면 티끌 같은 것이겠죠. 하지만 우리는 그 작은 티끌 하나를 별처럼 보고 좋아하며 좇는 거예요. 사실, 그거면 돼요."
중년의 교수님은 아주 짧은 순간 자신의 과거를 더듬듯 아득한 눈빛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낭만에 가득 찬 소녀의 눈빛이기도 했다.
한 분야에 수십 년을 몸 담고 있었지만 여전히 모르는 것이 너무도 많고 연구할 것이 많이 남아있다는 사실이 자신에게는 연구를 계속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는 말은 스승이 아니라 앞서 길을 걸어온 선배 연구자로서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수단이 아닌, 그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학문에 대한 열정을 기반한 순수함. 그것이연구자로서 가질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자세일 것이다.
연구자에게 낭만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런 마음가짐이 아닐까. 이렇게 풀어내다 보니 문득 나는 어떤 자세로 내 연구를 대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