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례지만 외향적이신가요?
: 전시기획에 어울리는 인재상이란
"본인 성격이 어떤 것 같나요?"
몇 개월 전, 전시기획과 학예연구원을 뽑는 면접장에서 이 질문을 받았다. 영화 '타짜'의 한 장면처럼 순간 '싸늘한 기운이 비수처럼 날아와 꽂히는' 기분이었다. 면접관은 뒤이어 덧붙였다. "전시기획을 하려면 사람들도 많이 만나야 해서 활달하고 외향적인 성격이 유리한데, 본인 성격이 그런 성향에 부합하는 것 같아요?"라고.
나는 그 순간 답변에 대한 생각보다도 어떤 강한 의문이 들었다.
'그럼 활달하지 않고 외향적이지 않은 사람은 전시기획을 할 수 없다는 건가?'
이런 생각에 미치자마자 '이 면접은 망했다'라고 생각했다. 면접에서는 없었던 일도 있었던 것처럼, 할 수 없는 것도 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하라 하지만 나는 그 질문에 차마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 애초에 면접관의 질문에 동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나는 활달이나 외향과는 거리가 먼 성격이다. MBTI 검사를 하면 자다 일어나서 해도 9:1 비율의 I가 나오는, 그야말로 극단적인 수준의 내향인이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그랬고, 이런 성향으로 살면서 크게 불편함을 느낀 적은 없었다. 그런데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이런 성격이 굉장히 곤란할 것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시쳇말로 억텐(억지 텐션)을 끌어내다 실수하느니 차라리 가만히 있자는 주의인 나에게 "외향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말은 마치 생전 처음 들어보는 외국어처럼 낯설었다.
그럼 나와 같은 성향의 사람은 전시 기획 업무를 잘 수행할 수 없는 걸까?
'성격 질문 사건' 이후로 이 질문은 나에게 무거운 고민처럼 느껴졌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주변의 선배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 그 질문이 결국 '나'라는 사람을 다시 한번 찬찬히 들여다보는 계기가 된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 내가 오랫동안 이 문제를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사건이 있었다.
일하고 있던 박물관에 단기 아르바이트생들이 배속되었을 때의 일이었다. 아르바이트생들 중에는 나와는 열 살 아래인 분이 있었는데 어느 날 그분이 나를 보고는 "MBTI가 어떻게 되세요?"하고 물었다. MZ세대는 역시 MBTI가 대세구나 생각하면서 알려주었더니 놀란 표정으로 "처음 봤을 때도 먼저 말 걸어주시고 대화가 잘 돼서 당연히 E이신 줄 알았어요!" 하는 것이었다. "저도 필요한 순간에는 충분히 사교적이랍니다"라고 말하려는 순간, '사교적인 것과 외향적인 것은 다른 의미일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성격이 어떻냐는 질문의 본질은 '외향적인가?'가 아니라 '내향적인가?'를 묻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애초에 외향성과 내향성은 인간이 타고난 성질의 차이이지, 필요 역량으로 구분될 수 없다는 것도 그때에서야 깨달았다.
내향적인 사람의 강점은 자기 자신과의 시간을 소중히 여긴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에너지를 소비하고, 혼자 있을 때 그 에너지를 채우는 것일 뿐, 그것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싫어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내향인들은 이런 오해들을 많이 받아 왔기 때문에 여럿이 있는 자리에서 분위기 메이커는 되지 못할지언정 분위기를 잘 읽고, 처해진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잘 알아챈다. 대체로 자신의 능력과 상황에 대한 인지가 높기 때문에 한계를 인식하고 대응하는 현실주의자들이 많다. 그리고 이러한 내향인의 대처능력은 업무의 성격을 불문하고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빛을 발한다.
내향인들은 때때로 "너 사회생활할 때 그렇게 행동하면 안 돼"라는 말로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하는 경험을 한다. 그런 편견과 맞서며 내공을 키운 내향인도 사교적인 성격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역설 아닌 역설이 '의외'라는 반응없이 받아들여질 수는 없는 걸까. 나는 누구보다 '나'를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향적인 사람'을 필요로 한다면 그건 그저 그 기관의 인재상과 내가 맞지 않았을 뿐이다.
(헤더이미지 출처: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