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내가 이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이유
"미술사? 이건 뭐하는 학과예요?"
몇 년 전 어느 박물관 연구원 채용시험 면접장에서 내 이력서를 본 면접관이 한 질문이다.
우리나라에 미술사를 전공한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미술사'라는 단어를 달고 있는 학과가 개설된 대학은 대략 20곳. 그중 대부분이 대학원에만 개설되어 있고 학부과정부터 석사, 박사 과정까지 개설된 대학은 훨씬 적긴 하지만 대한민국에 분명히 존재하는 학과이다.
억울한 심정으로 한마디 보태자면 국내 최초의 미술사학과는 심지어 지금으로부터 반세기 전인 1970년대에 만들어졌다. (물론 이것 또한 학부과정은 아니었지만..) 잘 모르는 이들로부터 "그림 그리는 학과예요?"라던가 "오..."라는 뭔지는 모르겠지만 신기하다는 미적지근한 반응들을 종종 마주해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관련 전공자들이 숱하게 몰려오는 면접시험 현장에서, 그것도 면접관의 입을 통해 들으니 황당하고도 자존심 상하는 경험이 아닐 수 없었다. 그 면접을 거하게 말아먹은 뒤 대학원 동기들과 만난 자리에서 토로하니 "요즘 면접엔 외부 심사위원이 많으니 잘 몰라서 한 소리일 거다."라는 위로 아닌 위로를 들었다.
"고학력 저임금에 취업도 안 되는 데를 뭐하러 왔어, 지금이라도 전과해!"
미술사학과에 들어와 처음으로 전공수업을 듣던 날, 학과 교수님으로부터 들었던 말이다. 양 옆으로, 앞뒤로 앉아있던 새내기들은 어떤 심정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전혀 다른 공부를 하다가 편입한 중고 신입이었던 나에겐 꽤나 충격적이었다.
첫 번째로 든 생각이 '어떻게 새 학기 첫날 신입생들에게 저런 말을 하지?'였고,
두 번째로 든 생각은 '아, 내가 선택을 잘못한 걸까?'였다.
당시에는 나무라기보다는 가벼운 분위기에서 농담조로 던진 말이었기에 다들 와하하 웃으며 지나갔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그것이 충격요법을 사용해서라도 허송세월 하지 않기를, 고된 커리어를 쌓지 않기를 바라는 교수님의 깊은 뜻이었음을. 그때는 정말 몰랐다.
위의 일화들이 이 글을 쓰게 된 계기가 되었던 오래된 기억들이다. 이제부터 내가 쓰고자 하는 것은 저성장과 불확실성의 시대에, '고학력, 저임금, 낮은 TO'라는 기막힌 환경에서 고군분투하게 된, 어느 날들에 대한 기록이며, 앞으로 이 길을 걷고자 하는 이들과 지금도 몇 번이고 흔들리면서 이 길을 걷고 있는 나와 같은 이들을 위한 작은 서사(敍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