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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들과 바람 May 22. 2019

창조의 원리

   "그렇게 보면 구체적으로 손에 잡히는 것 말고도 뭔가 좀 더 미묘한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겠어요.
    전혀 눈에 띄지 않는 듯하지만 작은 황금의 왕관이 당신의 머리 위에 얹혀져서 의미심장하게 반짝이고
있었다고나 할까요..."

-토마스 만, <트리스탄> 中


  어제 나는 개인적으로 '시간이 예술을 어떻게 검증하는가'에 관해 짧은 글을 쓰고 있었습니다. 조금 추상적인 내용과 개념들이 꽤 등장했기에 글이 자칫 상식적이고 공허한 말놀음이 되지 않도록 주의했습니다만, 머리 안의 것들을 꼭 맞는 단어와 문장으로 구체화시키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 가벼운 마음으로 하루키의 <잡문집>을 읽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활력'이라는 단어를 보았습니다. 그러자 이 단어가 내가 어제 찾고자 했던 단어들 중 하나였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고 글을 다시 찾아 거기에 보태었습니다.


   우연히 있었던 오늘의 이 과정이 노래를 만들 때 겪는 일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마치 어떤 리프(riff)나 연주를 변용해 나의 노래에 활용하듯이. Noel Gallagher가 그의 첫 번째 솔로 앨범을 작업하고 있을 무렵 어디인지 모르는 곳에서(라디오가 아닐까 그는 추측했습니다) 피아노 연주가 흘러나왔는데, 그 소리가 당시 그가 작업하고 있던 곡 중 하나인 <AKA... What a life>에 맞는 것 같아 거의 그대로 활용했다고 합니다. 조금은 비슷한 경우이려나요.


   문학, 음악, 미술 등의 영역들은 분명히 구분되고 각자의 독자적 우주가 있는 영역들입니다. 조금 과학적으로 이 문제를 살펴본다면 심리학에서의 다중지능 이론은 각 영역들이 뇌 안에서 서로 다른 능력을 요구한다고 연구해온 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논리를 담당하는 지능, 음악 능력을 담당하는 지능, 몸의 움직임을 담당하는 지능들을 서로 구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서로 다른 영역들임에도, 적어도 새로움을 창조하는 일과 관련해서는 모든 영역들을 아우르며 관통하는 보편 원리가 분명 존재하는 것만 같습니다. 예컨대 우리는 시인이 "시가 내게로 왔다"고 고백하는 것을 보거나, 음악가가 자신은 그저 이미 완성된 형태로 허공을 떠다니는 노래를 붙잡아 만들어낼 뿐이라고 술회하는 것을 듣습니다.


   이는 그 창작자들이 창조를 함에 있어 흩뿌려진 말 혹은 소리 따위를 모아 이들을 서로 대체될 수 없는 필연성의 고리로 이어 하나로 구조화하는 과정의 실감을 표현한 게 아닐까 합니다. 그것이 아니고서는 도무지 안 되는 것이기에 단어가 다음 단어를, 음이 다음 음을, 색이 다음 색을 스스로 요청하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그들이 경험칙처럼 공유하는, 영역을 초월한 창조의 보편 원리에 대한 진실의 한 단면이 있는 게 아닐까요?(물론 대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고백임을 첨언합니다.)


   한 비평가는 시인을 자신의 언어와 사랑놀이를 지속하는 사람으로, 개개 낱말에 대한 낭만적 사랑을 평생 앓는 충직한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생각해보면 미술가는 색 또는 형태에, 음악가는 소리에 동일한 짝사랑을 하는 이들일 것입니다. 그 사랑이 멎는 날 창조의 날도 마지막이 되는 것이겠지요. 마치 - 매우 극단적인 경우이겠지만 - 헤밍웨이가 끝내 언어에서 구원을 찾지 못하고 절망하여 생을 스스로 마쳤듯이 말입니다.


   조금 비약하는 것이 아닐까 스스로 의문스럽기도 하지만, 어쩌면 수학자도 같은 사랑놀음을 하는 것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덧붙여 봅니다. 수학의 세계를 한껏 넓히는 데 공헌한 인도의 라마누잔은 무수하게 많은 숫자들에 대해 각각 그것들이 고유하게 가진 특징과 성질들을 - 마치 한 명 한 명 사람의 성격을 이야기하듯 - 기억하였습니다. 그를 세상에 소개한 인물이자 벗이었던 하디가 1729 번호판이 쓰인 택시를 평범하다 말하자, 라마누잔은 매우 흥미로운 숫자를 가진 택시라고, 1729는 "서로 다른 세제곱수 2개의 합으로 나타내는 방법이 두 가지인 가장 작은 수"라고 말했다 전해집니다. 각각의 숫자들에 대한 경탄과 사랑이 그것들 이면에 놓여있던 질서를, 필연의 고리를 찾게 한 게 아닐까요.


[ 이미지 출처 : Tristan Audio C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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