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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쥴리 Feb 22. 2022

회사에서 '너무 착하다'는 말을 들은 주니어

부드럽지만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나도 드디어...! 단독 프로젝트를...! 


입사한지 6개월이 막 넘어가던 시점에 나에게 첫 단독 프로젝트를 진행할 기회가 주어졌다. 단독 프로젝트라고 해서 프로젝트의 A to Z 모든 일에 대한 결정 권한과 책임이 주어진 건 아니지만, 

1) 외부 업체와의 커뮤니케이션

2) 콘텐츠 발행 작업 관리

3) 텍스트 개선안 제작 등 

외부로 나가는 모든 콘텐츠를 완성도 있게 만들기 위한 오너십을 갖춰야 하는 업무가 주어진 셈이었다. 내가 해야 할 업무 리스트를 정리하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 중에서도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욕심은 (정말 부끄럽지만) 무조건 이번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해서 내가 가진 역량을 증명해내고야 말겠다는 거였다. 다시 한 번 정말 부끄럽지만, 입사 6개월차 햇병아리의 귀여운 욕심 정도로 봐준다면 감사하겠다. 


그렇게 시작된 프로젝트 첫 회의. 타 팀 직원분들과의 협업을 위한 TF가 꾸려졌다. 각 사람의 명확한 R&R이 세워지기 시작했고, 나 또한 내가 진행해야 하는 업무의 리스트와 데드라인을 TF팀원들에게 전하며 논의해야 할 지점들을 꺼내놓았다. 그런데 외부 업체와 TF 팀원들이 속해있는 팀, 그리고 우리 팀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본 프로젝트의 특성 때문인지, 생각보다 내가 처리해야 하는 업무의 범위가 많았다. 지금의 나보다 경험이 훨씬 더 부족했던 그때의 나는, 아주 순진하고 단순하게 '내가 해내야 할 일이 많으면 많을 수록 내 역량을 증명할 기회가 많아지는 것 아닌가? 좋은 기회일 것 같은데!'라고만 생각했다. 나의 이런 생각이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을 판단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OO씨가 너무 착해서 그래요" 


빠르게 성장하는 스타트업에서는 한 개인이 멀티롤을 맡게 되는 경우가 많다. 나 또한, 주니어 직원이었지만 다양한 프로젝트를 동시다발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매 순간 업무의 우선순위를 스스로 챙겨야했다. 단순히 회사 내에서 나의 역량을 인정받고 싶다는 욕심 하나로 모든 업무를 내가 떠안아버리면, 이는 내가 속해있는 팀의 팀원들에게도 피해를 줄 있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었다. 이러한 나의 고민을 사수에게 조심스레 이야기를 하자, 그때 돌아온 사수의 말이 아직도 뇌리에 남아있다. "OO씨가 너무 착해서 그래요."


네이버에 검색해 본 '착하다'의 정의 (출처: 네이버) 


'착하다'는 말의 정의를 확인하기 위해 네이버에 검색을 해봤더니 '언행이나 마음씨가 곱고 바르며 상냥하다'로 나온다. 물론 긍정적인 말이다. 일상에서 우리는 보통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심이 깊은 사람을 두고 '착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사수는 왜 나에게 '착하다'라는 말을 했을까? 내가 다시 한 번 조심스럽게 사수에게 되물으니, 다음과 같은 답이 돌아왔다.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잘 수행해내고자 하는 열망이 있는 건 정말 좋은 일이에요. 역량을 인정받고자 하는 욕심 또한 누구에게나 있는 당연한 마음이라고 생각하고요. 그런데 OO씨는 '진짜' 그 마음으로 그 모든 업무 수행 가능 여부에 대해 OK를 하신 건가요? 단지 다른 TF팀에게 좋은 사람으로 비춰지고 싶어서는 아니고요?"



착하지만 '단단'한 사람이 되는 과정 


선임의 솔직한 피드백은 (당시에는 마음이 조금 아팠지만...!) 아래와 같은 끈 깨달음을 주었다.


1) 내 역량을 뽐내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내 마음 저 언저리에는 '거절'을 하지 않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자리잡고 있었음

2) 일상에서 마주하는 '착한 사람'은 많은 사람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람일 수 있지만, 회사에서 마냥 '착하기만 한 사람'은 나를 포함한 다른 사람에게 어쩌면 피해를 줄 가능성이 있음

3) 그저 '착한 사람', '좋은 사람'을 넘어 '단단한 중심을 가진 착한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목표를 가지게 됨


그렇다면 한 조직 내에서 '단단하면서 착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을 말하는 걸까? 이에 대한 정답은 없지만 내 나름대로 내려본 정의는 이렇다. '최고의 성과를 내기 위해 다른 사람과 원활하게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동시에, 나의 주관을 명확하게 전달하는 사람'


문장으로 적는 건 너무 쉽지만, 사실 저 텍스트에 쓰인 그대로 행동하기에 나는 아직 많이 미숙하다. 여전히 나에겐 미움받을 용기가 부족하고, 남에게 싫은 소리를 하기까지 엄청난 마음의 다짐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나는 한 조직에서 내 몫을 잘 해내고, 제곱의 성과를 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 만큼,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가설에 대해서 설득력있는 의견을 전달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마냥 착한 사람이 아닌, 일이 되게끔 하는 사람이 되고자 매일 한 걸음씩 내딛고 있다. 


데이터 분석을 공부하기 시작한 이유도 조직에서 '단단하게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한 과정의 일환이다. 아무리 부드럽고 원활하게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역량을 갖췄다고 하더라도, 결국 내 생각이 얼마나 타당성있는 생각인지에 대한 설득을 하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저 빈 껍데기에 불과한 의견으로 남을 수도 있다. 이에 데이터를 기반으로 명확하게 내 의견에 대한 근거를 세울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일이 잘 되기 위해, 제곱의 성과를 내기 위해 근본적인 'Why'에 대한 물음을 갖고, 데이터 기반으로 그 물음에 답을 찾아나갈 수 있는 사람, 그것이 내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조직 내에서 '좋은 사람'의 정의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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