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긴히 Jun 25. 2021

나는 대행사에 다닌다

갑이면 다냐? 그래, 나는 을이다

“저희가 돈 주고 쓰는 건데 이렇게 하시면 안 되죠”


맞다. 대행사니까, 우리는 을이니까 그들이 돈 주고 우리를 쓰는 게 맞다. 하지만 꼭 그렇게 말해야 했을까.


사실 광고주만이 갑은 아니다. 같은 회사 안에도 갑은 있고, 그만큼 나는 어디에서나 을일 뿐이다.


을은 참 슬프다. 의견을 내는 것이 의무지만 그 의견에 대한 비난도 무조건 감수해야 한다. 말도 안 되는 의견에도 손뼉 쳐야 할 때가 있고, 별로여도 “오~ 좋은데요?” 해야 할 때가 있다. 또 억울해도 참아야 할 때가 있고, 기분이 나빠도 그냥 혼자 집에 가는 길에 우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을 때가 있다. 아니, 많다.


을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뒷담화 밖에 없다. 말도 안 되는 의견을 밀어붙이는 갑을 욕하고, 아무것도 아닌 실수로 불같이 화를 내는 갑을 욕하고, 가끔 그냥 갑을 욕한다. 앞에서 하지 못할 말은 뒤에서도 하지 말랬는데. 살아보니 그건 불가능이더라. “아니, 내가 뭘 잘못했다고 진짜 나한테만 xx이야. 지는 뭐 얼마나 잘한다고. 이만큼 시킬 거면 돈을 많이 주던가.” 이 말을 그 어떤 누가 광고 ‘주님’ 앞에서 할 수 있을까. 못할 거면 참으라고? 아니, 뒷담화도 안 하면 내가 진짜 터져버릴지도 모른다


을들에게는 숙제가 있는데, 바로 뒷담화를 절대 들키지 않는 것이다. 아, 하나 더. 우리 광고 ‘주님’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 또한 들켜서는 안 된다. 갑과 을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관계니까. 뒤에서 내 욕 했어? 너랑 안 놀아. 이렇게 끝날 수 있는 상황이면 얼마나 좋을까. 아 너랑 안 놀아. 진짜 너무 안 놀고 싶은데. 우리 계약이 얼마나 남았더라.


카톡방에는 점점 가식적인 물결과 느낌표가 쌓여간다. 진짜 좋은 의견 인척, 너무 기발한 아이디어 인척, 늦은 피드백에도 일정에는 문제없는 척, 항상 너무 고마운 척, 그대들이 이 세상 최고의 광고주인 척. 인간이 하루에 평균 수백 번 거짓말을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당연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 내가 참 경솔했구나 싶다. 이렇게 하루에 수백 번 거짓말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전혀.


내가 꿈을 고려할 때, ‘주님’의 존재는 없었다. 그저 하고 싶은 일을 찾았고 그 일을 더 잘, 더 편하게 할 수 있는 곳을 찾으려고 했다. 그때 ‘주님’의 존재를 알았다면, 애초에 꿈은 ‘갑이 되는 것’이었을 텐데. 나는 왜 하필 꿈을 을 중에서 골랐을까. 수많은 을 중에서 그나마 나은 을이라는 것에 감사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아니, 어차피 다 거기서 거기인 을끼리 누가 더 나은지 비교해서 뭐할까. 그럼 갑을병정까지 내려가 내가 정이 아님에 감사해볼까. 가끔 정인 것 같을 때도 있으니 이것도 안 되겠다. 도저히 뭐 감사할 게 없네.


세상에는 수많은 갑이 있다. 그만큼 더 많은 을이 있다. 어느 갑은 때로 을이기도 하고, 어느 을은 또 갑일 때도 있다. 그러니까 서로 좀 더 이해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결국 포기가 답인 건가. 을의 마음가짐이란 참 어렵다.


나는 여태껏 갑이 되어본 적은 거의 없다. 을의 기분만 매일같이 뼈저리게 느끼는 나로서는, 이제 더 이상 갑에게는 기대가 없다. 인간적이고 친절한 갑이 있을까? 분명 있다고 생각한 때도 있었다. 지금도 어딘가에는 있겠지 생각하지만 하나 분명한 건 지금 나의 갑 중에는 없다는 것이다. 왜 나만 맨날 을일까.


갑의 터무니없는 요구나 행동을 볼 때면 ‘나는 갑이 되면 그러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한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나도 그러는 거 아닐까, 저들도 처음엔 안 그랬겠지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아 그전에, 내가 갑이 될 수는 있을까? 이번 생에 갑이 된다면 나는 절대 을에게 “제가 돈 주고 쓰잖아요”라는 말 따위는 하지 말아야지. 2021 가장 상처 받은 말 베스트 5안에 들지 않을까 싶다.


‘그 돈을 다 제 월급으로 주는 것도 아니잖아요.’


광고주에게 혼나면서 이 생각이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혼났다는 표현이 좀 그렇지만 혼났다는 단어 말고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사실 조금 화풀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도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나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소리 지르는 그를 이해하기는 어려웠고, 모진 말들에 상처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가장 힘들었던 업무를 진행하며 가장 큰 상처를 받았고, 가장 큰 부담을 받았다. 상처를 많이 받으면 무뎌진다는데, 아직은 더 여려지고 예민해질 뿐이다. 얼마나 더 모진 말을 견뎌야 무뎌질 수 있을까. 어느 상황에서도 배울 점을 찾아내는 게 내 삶의 방식이었는데, 그 방식을 잃고 나는 점점 비관적인 사람이 되고 있다. 나에게 모진 말을 하는 그 사람보다, 그 사람들이 주는 상처보다, 나의 부정적이고 어두운 모습이 점점 강해지는 것이 어쩌면 가장 슬픈 일일지도 모른다.




2021.06.23

작가의 이전글 무거운 나의 흑역사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