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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긴히 Jan 22. 2021

자기소개 시작하겠습니다

아이엠그라운드 아니고 면접 이야기

자기소개 시작하겠습니다.


이 말은 면접마다 꼭 한 번은 말하는 나의 이야기다. 1분 자기소개 해보실래요? '아니요'라고 말하고 싶지만 어느새 나는 활짝 웃으며 '자기소개 시작하겠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러고는 벌써 몇 번을 써먹었는지 모르는 뻔한 자기소개 레퍼토리를 풀어낸다. 나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키워드를 가지고 말한다고 하지만 사실 그냥 가장 그럴듯한 키워드를 찾아냈을 뿐이다. 어떤 키워드인지는 나를 아는 사람들은 다 알지만 일단 비밀이다. 다음 면접에도, 그다음 면접에도 써먹어야 하니까.

 정말 많은 면접을 봤고 거의 매번 같은 자기소개를 쏟아냈다. 자기소개는 어느새 안 시키면 서운한 단계에 이르렀다. 한 번도 안 틀리고 말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대답이라서 그렇다.  


오늘도 면접을 봤다. 아침 10시 반부터 시작된 면접은 이제 겨우 12시가 조금 넘은 시간임에도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한 시간 가까이 진행되는 화상면접을 통해 오늘도 한 가지 깨달았다. 내가 잘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남들은 두배, 세배 더 잘한다는 것. 그리고 내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남들도 두배, 세배 못한다는 것. 결국 다 비슷한 능력치를 가지고 30분간 말빨로 싸우는 전투 같다고 생각했다. 서류를 통과했다면 그 뒤는 그냥 말싸움, 눈치싸움이다. 운 좋게 그 면접관이 좋아하는 대로 말하는 사람이 이기는 싸움. 면접관의 고개 끄덕임에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한다. 면접관이 이해하지 못한 듯 눈썹이라도 찡그리는 날엔 하루 종일 그 면접관의 표정이 잊히질 않는다. 그나마 마스크를 써서 다행이다. 삐죽 대는 입은 보지 못하니까.


 작년에 본 면접에서 무인도에 촬영하러 가면 무엇을 가져가겠냐(카메라 제외)는 질문을 받았다. 정말 당황스러운 질문이었다. 질문 자체가 특이하기도 했지만 우연히 내가 그 전날 무인도 연구소 소장님을 인터뷰한 촬영에 다녀왔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늘이 나를 돕나? 대단한 우연이라고 생각했고 너무 기뻤다. 신나서 대답을 이어갔고 면접관분들도 신기해했다. 예상 못한 질문을 우연으로 받아쳤을 때의 쾌감은 말로 설명할 수가 없다.


면접에서 내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의 구독자가 왜 그렇게 적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나는 나름 천천히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사람들 눈에는 그냥 적을 뿐이구나 싶어서 조금 씁쓸했다. 나는 왜 구독자가 적은 지 내 채널의 문제점을 설명했다. 내가 좋아서 하는 유튜브의 단점을 말하려니 기분이 이상했다. 주기적으로 영상을 업로드하지 않는 것, 사람들이 관심 있는 소재보다 나의 일상을 소재로 한 것. 모두 나의 선택이고 그냥 나의 마음이었는데 한순간에 단점이 되었다. 그 뒤로도 다른 면접에서 운영하고 있는 유튜브 채널에 대한 이야기만 나와도 괜히 속상했다. 이번에는 어떤 단점을 말하지, 뭐라고 말해야 구독자가 적은 걸 납득시키지. 나는 그렇게 조금씩 작아지고 있었다. 이번 주 수요일. 어느 회사에서 이루어진 면접에서도 역시나 운영 중인 유튜브에 대해 물어볼 것이 있다고 했다. 또 왜 구독자가 적냐고 물어보겠지. 2년이 다되어가는데 왜 500명이 안 넘는지. 하지만 그 회사에서는 다른 질문을 건네주었다.


“구독자가 참 많네요. 이 영상은 왜 이렇게 조회수가 높아요? 유튜브 하시니까 유튜브의 영상들을 잘 파악하고 계시죠?”


어떻게 보면 예상 가능한 질문이었다. 내가 예상을 못했을 뿐. 한번 들었던 이야기에 사로잡혀 바보 같은 생각을 했던 거였다. 그 질문에 너무 고마웠고 열심히 대답했다.


면접을 반복하며 깨달은 것이 참 많다. 한 번의 경험에 매달려 선입견을 가지지 말 것. 모자란 대답 한 번에  일찍이 포기하지 말 것. 다른 지원자를, 면접관을 내 마음대로 판단하지 말 것. 사실 너무 떨려서 면접에서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어제도, 오늘 아침에도 그랬다. 아마 다음 면접에서도 그럴 것이다. “자기소개 해보실래요?” 이 말 한마디 듣는 순간 아무 생각도 안 들겠지.



2021.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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