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멸의 칼날 태교 어떤데
남편과 나의 볼 게 딱 정해져 있지 않을 때의 태도는 조금 다르다. 나는 특정 프로그램을 정하지 않아도 되는 일반 TV를 켜놓는 편이다. 반면 남편은 딱히 정해진 볼 게 없더라도 기본 TV보다는 유튜브나 넷플릭스에서 볼거리를 탐색하거나 정 그래도 마땅한 게 없다면 봤던 거라도 다시 재생시켜 놓는 편이다.
그날도 어김없이 남편은 넷플릭스에서 볼거리를 탐색 중이었다. 남편은 평소에도 종종 볼거리 탐색에 시간이 들곤 하는데, 최근엔 나의 임신 이후 ‘태교’를 고려하여 프로그램을 택해야 한다며 더 신중에 신중을 기하다 보니 그 탐색 시간은 배로 늘어나기 마련이었다. 요즘엔 둘 다 흥미를 가져본 적도 없고 봐보고 싶던 적도 없던 어느 천재 소년의 이야기를 태교에 좋겠다며 틀어놓는 식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엔 귀멸의 칼날을 틀었다. 나는 이전에 귀멸의 칼날은 이야기만 들어보았지 만화책도 애니메이션도 한 번도 봐본 적이 없었다. 더군다나 태교를 위한 것을 튼다더니 첫 화부터 사람의 피가 난무하고 사람을 잡아먹는 혈귀의 이야기를 틀어놓다니 다소 실망이었다. 그리하여 첫 화를 넘기지 못하고 나는 내 할 일을 하러 자리를 떴었다.
그렇게 10분 남짓 탄지로와 네즈코 남매의 존재 정도만 확인한 뒤 몇 주의 시간이 흘렀다. 남편은 현재 귀멸의 칼날 극장판이 상영 중이라고 했다. 내가 보고 싶으면 함께 보러 가도 된다고 하였지만, 남편은 이미 만화책으로 전체 내용을 다 알고 있던 터라 전반적인 내용도 모르는 나를 굳이 끌고 가고 싶지는 않은 듯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서로 카카오톡을 주고받다가 내용상 오해가 생겼다. 주고받은 내용을 서로 각기 이해한 것이다. 평소 내가 남편의 카톡에서 불편하게 느끼던 점은 남편은 한 번 카톡에 2가지 이야기를 동시에 하곤 했다. 더군다나 주어와 목적어도 불분명하게 말이다. 예를 들어 총 7개의 메시지가 와있다면 6개는 현재 구경한 회사 행사의 이야기, 1개의 메시지는 어제 함께 다녀온 곳에 사람이 많았던 이유에 대한 것과 같은 식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종종 두 번째 메시지도 지금과 관련된 이야기겠더니 추론했다가 서로 “무슨 소리야?”를 외치게 될 때가 있었다.
그렇다 보니 나는 주어 목적어 서술어를 명확하게 해 줬으면 좋겠다 요청했지만 어디 사람이 한순간 변하겠는가. 남편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빨리 전달해주고 싶은 마음 때문에 그게 잘 안된다고 했다. 결국 내가 맥락을 잘 파악하는 수밖에 없겠군 하며 남편의 메시지를 탐정이 되어 파악할 때가 종종 있었다.
반면 남편의 불만은 이러했다. 나는 종종 메시지를 빠르게 읽어 남편이 말한 전체 내용 중 일부를 인식하지 못하거나 기억해야 할 것을 잊을 때가 있었다. 그렇다 보니 본인이 한 말을 주의 깊게 안 들어준다는 것이 남편의 애로사항이었다.
그날도 소소한 소통의 오류가 생겼었다. 하필 임신 중인 아기에 대한 내용이라, 남편은 그 사실에 대해 무척 감동받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전혀 다르게 이해하여 그 내용을 아예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야 알았다. 그동안 나도 종종 소통의 불편함이 있었기에 또 반복된 문제에 불만을 토로했다가 서로 감정이 상하게 되었다.
서로 오해를 풀고 화해하긴 했지만, 남편의 감정 상함 여파는 며칠 더 이어졌다. 결국 난 미안한 감정이 생겼고, 기분을 좀 풀어주고 싶었다. 그리하여 생각난 방법은 남편이 좋아하는 귀멸의 칼날을 보는 것이었다.
남편이 귀멸의 칼날을 튼 이유는 나도 귀멸의 칼날을 보았으면 하는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이미 남편의 소장품엔 귀멸의 칼날 만화책과 만화책을 구입하고 받은 피규어 등 귀멸의 칼날 관련 굿즈가 있었다. 임신 이전에는 진격의 거인을 영업해서 진격의 거인도 시즌4 중간까지 정주행을 했더랬다. 진격의 거인 시즌2까지는 무척 재미있게 보았지만, 시즌3부터 나오는 가문의 이야기에서 살짝 스토리에 대한 흥미가 떨어지며 시즌4 중간까지만 시청했다. 남편은 내가 진격거의 색다른 스토리를 놀라워하며 보는 모습을 흥미 있어했다. 내가 스토리를 궁금해하며 다음을 예측하거나 하면 가소롭다는 웃음을 지으며 반전에 반전을 거듭할 거라며 아는 자의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 남편은 그런 나의 모습을 즐기고 있던 것이었다.
그렇게 이번엔 귀멸의 칼날이 시작된 것이었다. 그날 퇴근해서 돌아온 남편은 때마침 퇴근길 버스에서 귀멸의 칼날 극장 편 리뷰를 보고 오던 참이었는데 집에 오니 내가 귀멸의 칼날을 보고 있어 신기했다고 말했다. 귀멸의 칼날은 초반 10분을 보고 껐던 과거가 무색할 만큼 3-4회만 시청하니 금방 빠져들게 되는 스토리라인이었다. 그저 피 낭낭한 잔인한 이야기인 줄만 알았는데, 혈귀를 죽이는 귀살대 이야기가 시작되며 이야기 흐름이 희망차게 바뀌는 것이 꽤나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남편도 나도 성장형 주인공, 즉 성장캐가 나오는 이야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즈음 때마침 남편의 출장이 있었다. 남편의 출장은 물론 허전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내게 자유를 주기도 했다. 그 이유인즉슨 남편은 다음 날 이른 출근을 위해 일찍 잠이 들어야 한다. 나도 그에 맞춰 억지로라도 불을 끄고 누워있는다. 그러나 남편의 출장은 나의 새벽 자유로움을 뜻한다. 나는 귀멸의 칼날을 본격적으로 정주행 하기 시작했다.
남편은 나보다 훨씬 부지런하다. 그리하여 종종 나에게도 성장형 미션을 부여하곤 한다. 나의 글 성장을 위해 매주 약속한 글 할당량이 있다. 출장 때에도 글을 써놓겠노라고 약속했지만 귀멸에 칼날에 빠져들며 깡그리 잊어버렸다. 남편이 돌아올 즈음 시즌5까지의 정주행을 마쳐버린 것이다. 남편은 약속한 글쓰기도 모두 내팽개치고(?) 정주행 하는 나를 보며, 애니를 한 번 틀어주면 안 되겠구나 하며 내게 해서는 안 될 일 목록을 하나 깨달은 듯했다.
하지만 지금의 때는 이미 늦었다. 오히려 내가 남편에게 물었다. 극장판 보러 안 갈 거냐고 말이다. 남편이 안 가면 나는 혼자라도 보러 갈 생각이 있다 말했다. 그랬더니 남편은 금요일 퇴근 이후 20시로 예매를 했다.
용산으로 향했다. 태교 상 4D 관람은 자제하기로 했다. 태아에게 너무 큰 소음은 좋지 않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영화는 우부야시키가 자신을 미끼로 하여 무잔을 끌어들인 후 죽고, 혈귀의 본거지인 성으로 떨어지는 장면부터 시작했다. 시작부터 가슴이 웅장해졌다.
구입한 버터구이 오징어와 에그 브런치, 닭강정을 저녁으로 먹으며 본격적인 관람을 시작했다. 젠이츠의 과거 이야기가 나오며 번개의 호흡 검객에서 혈귀를 배출하여 할복한 스승인 할아버지가 젠이츠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는 이야기부터 조금씩 눈물샘이 열리기 시작했다.
무한 열차 시즌을 볼 때만 하더라도 렌코쿠를 죽인 혈귀 상현 3이 곱게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남편은 상현 3이 인기 있는 캐릭터라고 하여서 그 당시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극장에서 마주한 상현 3은 이야기가 좀 달랐다. 그의 인간 시절 스토리를 보다 보니 또다시 눈물샘이 작동되기 시작했다. 물론 나의 최애가 혈귀로 바뀌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다만 상현 3이 인기 있을 만하구나 하는 이해심을 가지고 그를 바라볼 수 있었다.
마지막 혈귀의 성을 장엄하게 보여주는 그래픽까지 극장판은 정말 군더더기 없었다. 하아 명작이었다. 보러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한편 귀칼을 보러 오기 전 남편의 지인이 태교에 괜찮냐며 물었다고 했다. 남편은 엄마가 행복하면 태아도 행복한 것이라고 답했다 한다. 그렇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다만 남편은 상현 3의 스토리 중 여자 혈귀는 먹지 않는 스토리가 생략되어 있어 꽤나 중요한 파트인데 빠져있어 아쉽다고 이야기하긴 했다. 나도 듣고 보니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전반적으로 만족했다.
이제 상현 3이 죽었으니 시즌 두세 개는 더 나올 듯했다. 나는 늦게 입문했기에 현 극장판까지 쭉 정주행 했지만 이제 앞으로가 문제다. 어떻게 기다리지. 만화책으로 결말까지 다 본 남편에게 결말은 예측하며 물어보았으나 답하지 않는다. 나도 만화책으로 읽어야 하나 고민까지 되는 밤이었다.
남편의 영업은 실로 매우 성공적인 것이었다. 덕후를 생성했으니 말이다. 추가적으로 이전엔 들리지 않던 학원 반 꼬맹이들의 대화를 이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히노카미 카구라 외치던 두 꼬맹이의 대화. 본인이 상현 2 도우마와 성격이 아주 똑같다며 귀칼 및 스스로에게 아주 취해있는 것 같던 어느 꼬맹이의 말. 학원으로 가던 버스 여중생들의 이야기에서 무잔 잘생겨서 좋다던 그 대화. 이렇게나 귀칼 이야기가 학생들 사이에서도 많이 오고 가는 줄 몰랐다.
부부가 된 이후 또 하나의 공통 취향이 생긴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