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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 Oct 16. 2021

20대는 왜 힘들까?

dear my 20's

누구나 저마다의 힘듦은 있었겠지만, 내가 느낄 때 나의 이십 대는 정말 힘들었다고 자부할 수 있을 만큼 힘들었다. 이제야 나도 내가 왜 그토록 힘들었는지가 조금은 객관적으로 보이지만, 폭풍의 한가운데에 서 있을 때엔 정말 혼란스럽고 감정은 요동치곤 했다. 좀처럼 안정감을 찾기 힘든 20대였다. 그래서 오늘은 내 20대를 정리하며 20대는 왜 힘들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이유들과 그리고 내 20대가 왜 그렇게 힘들었는지에 대한 스토리들을 좀 적어놓을까 한다.



[자아 찾기 / 성격 찾기]

먼저 첫 번째 숙제는 자아 찾기가 있다. 청소년기에 본인의 성격을 다 찾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결코 그러지 못했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되고 싶은 나', '사회에서 요구하는 나', '진짜 나'사이에서 엄청나게 갈팡질팡했기 때문이다. 나는 지극히 찐 내향형 인간이다. 그런데 학교생활까지는 이런 성격으로도 괜찮았지만, 사회에 나오자 엄청난 '사회성'이 요구되었다. 그리고 사회에서는 마치 '외향형 인간'이 인맥도 넓히고 하여 더 성공적인 삶을 사는 것처럼 많이 포장되기도 하기에, 나는 내 성격을 개조해야 한다는 어떤 강박관념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나는 '사회성 버튼'을 누른 채, '억지 외향'을 연기하는 날이 많아졌다. 회사에서 애써 밝은 척을 하는 날도 많았다. 그러다 보니 점점 나는 나의 사회성 가면과 진짜 내가 헷갈리는 날도 많았다. 밖에서는 애써 밝게 행동하고, 집에 와서는 방전- 탈진- 되곤 했지만, 회사에서 나를 보는 사람들은 나를 '밝은 사람'으로 인식했기에, 나는 회사에서는 또 그 모습을 연기하곤 했다. 그러다 보니 자주 고장 났다. 아마 어릴 적, 너무 목소리가 작은 것 아니냐며 큰 목소리 좀 내보라며 지적을 받는 일도 있었기에, 이런 나의 내향형 성격은 밖에서 환영받지 못할 것이라는 그런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나는 내가 되고 싶은 나를 나로 생각하고 싶어 하기도 했고, 불편하면서도 괜찮은 척하고. 내가 인정하지 않았던 나의 모습들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20대의 그런 폭풍 같은 시간들을 지나며, 지금은 어느 정도 나의 내향성을 받아들이고, 나의 차분한 성향을 강점으로 살리려고 하고 있으며, 나의 찐 성격이 어떤 것인지 대략적으로 깨달았다. 적절한 사회성과 성격의 조화를 찾았다. 



[진로 찾기 / 직업 및 적성 찾기]

하고 싶은 일과 해보고 싶은 일이 정말 많았다. 대학교 때는 해외봉사를 다녀온 후 ODA 분야에 관심이 생겨서 KOICA 같은 국제개발기구에 취업을 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그리고 어렸을 적부터 라디오 작가가 꿈이었기에 언론 쪽에도 종사해 보고 싶었다. 한창 여행에 빠져있을 땐 한국관광공사에 취직하고 싶었고, 또 여행 스타트업에 재직 이후엔 마케팅 쪽에 관심이 생겨서 마케팅 & 브랜딩 직무를 하기도 했었다. 그 외에도 난 가수도 하고 싶었고, 책도 쓰고 싶었고, 한창 우리나라 공교육에 문제점을 느낄 때엔 교육업에 종사하고 싶기도 했고, 애니메이션 원피스에 한창 빠져있을 땐 바다의 깊은 곳. 심해 연구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몰두해 바다 다큐멘터리를 찾아보며 심해어와 바다에 큰 흥미를 느끼기도 했었다. 이런 나를 보며 한 선배는 넌 너무 이상주의자 같다는 말을 하기도 했었다.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았다 보니, 진로를 어떻게 정해야 할지가 먼저 큰 화두였다. 잠깐이지만 공기업 준비를 해보기도 했고, 교육 쪽 대외활동, 마케팅 직무 근무 등 조금씩 맛보기를 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이상주의자적 면모가 많았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때 당시에 나는 꼭 사회에 가치를 부여할 수 일을 직업으로 삼고 싶었다. 그래서 사노비보다는 공노비가 되고 싶었지만, 공기업 취업 문틈은 좁디좁았다. 그래서 결국 사기업에 취업하여 회사의 매출을 위해 영업적인 부분이 큰 마케팅 업무를 할 때에는 정말 현타도 크게 왔었다. 사회에 도움 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사람들에게 내 기준에서 좋아 보이지도 않는 물건을 판매하는 일. 사람들을 현혹시켜 내 밥벌이를 해야만 하는 업무가 있을 땐 정말 하기 싫었다. 


그래서인지 조직에서 나는 일뿐만 아니라, 나 스스로의 이런 신념과도 크게 싸웠다. 그 일 자체가 힘든 게 아니라, 그 일을 해야만 한다는 사실이 너무 힘들었고, 내가 과연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이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고 따라다녔다. (마케팅 업무 중에서도 난 콘텐츠 마케팅은 좋아하지만, 바이럴 마케팅은 별로 선호하지 않고, 퍼포먼스는 적성과 안 맞는 듯하다.) 마케팅 업무도 영역이 다양하기에 처음엔 단순히 '마케터가 되고 싶다'였지만, 마케팅은 특히나 업무 영역이 정말 광범위하고 그 안에서도 세부적으로 나뉘는 부분이 정말 많기에 나와 잘 맞는 마케팅 업무를 찾아가는 데에도 정말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마케팅은 또한 재직하는 회사의 업계 군에 따라서도 정말 다르다. ex) IT, 식품, 여행, 금융/핀테크 등 


더군다나 나의 적성을 100% 실현시켜 다닐 수 있는 회사를 찾는다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또한, 내가 생각했던 것과 입사 후 그 일을 마주했을 때의 현실은 매우 다를 수 있는 점도 있다. 나 같은 경우 사회에 도움이 되는 '공적' 업무를 하고 싶었기에, 정부지원사업을 하는 조직에 입사해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내가 쫓던 이상과 그 이상을 실현시키는 작업과는 괴리가 매우 컸다. 그 이상을 실현하다가 그 이상마저 넌더리가 났다. 


그러다 보니 나는 25살부터 31살까지 1년에 꼬박 1번씩은 회사를 옮겼다. 입사 후 확인해보니 급여체계가 너무 스펙타클해서 퇴사한 회사도 있었고, 매출 압박이 너무 심하여 퇴사한 회사도 있었고, 이상과 현실과의 괴리감이 너무 커서 퇴사한 회사도 있었다. 


만 6년. 햇수로는 7년 동안 총 7개의 회사를 다녔다. 7개의 회사는 다음과 같다. 3개의 스타트업(여행/IT), 2개의 광고대행사, 1개의 문화기획사, 1개의 창업(IT - app 개발). 그러다 보니 친구들 사이에서도 나는 유난한 편에 속하기도 했고, 끈기가 없는 사람 취급을 받기도 했으며,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사는 낭만파 청춘쯤에 속했다. 나는 매우 방황 중이었고, 머리 속도 복잡했지만 내 모든 고민과 상황들을 구구절절 설명할 수는 없었고, 나는 그저 "또 퇴사해"정도의 워딩만을 뱉은 적도 많았기 때문이다. 친구들 눈에는 힘들다고 정말 퇴사하는 사람. 퇴사하고 하고 싶은 거 하는 친구로 보일만도 했으리라. 실로 퇴사 후 하고 싶은 일들을 많이 하기도 했다. (퇴사 후 자작곡 만들어서 버스킹도 하고 그랬으니, 나는 낭만파 청춘의 삶을 살기도 살긴 살았던 것 같다...)


정해진 게 아무것도 없어 뭐든 될 수 있고 가능성의 포텐이 터지는 나이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막막함과 막연함이 MAX인 시기이기도 하다. 



[삶의 형태에 대한 고민] 

낭만파 청춘의 삶에서도 조금 느껴졌을 수는 있겠지만, 나는 자유롭게 살고 싶었다. 디지털노마드를 꿈꿨다. 여행에 한창 빠져있었어서 그랬을 수도 있고, 여행 스타트업에 재직 시에 여행 작가들을 많이 보다 보니 그게 가능하구나 라는 걸 직접 눈으로 봐서였을 수도 있겠다. 분명 거기까지 되는 것은 힘들지만, 최소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몸소 느끼자 나도 그들처럼 나만의 콘텐츠를 만들어 나라 경계 없이 자유롭게 이동하며 일하고 싶었다. 인도에서 요가하며 글 쓰며 돈까지 벌며 하루를 보내고 싶었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지역적 경계의 자유. 그리고 능력을 키워 나아가 경제적 자유를 하루 빨리 얻고 싶었다. 


그저 취업을 꿈꾼 것이 아닌 나는 '디지털노마드'가 되고 싶었기에 더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노마드로 살기 위한 '나의 무기는 무엇일까?'와 같은 고민부터, 소규모 창업을 해볼까? 싶어 창업/프리랜서 등의 정보를 그때부터 많이 찾아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때의 현실에서는 경험도 부족했고, 나는 바로 수익을 만들어내지 못했으며 막막했다. 그러니 몸은 회사에 묶여있는데, 마음은 저 멀리 태국쯤에 날아가 있었고, 즉 나의 20대는 현실과 이상과의 괴리. 그 속에서 치열한 밥벌이 걱정과 온갖 고민의 짬뽕이었던 것이다. 이런 나에게 애매하게 부여된 다재다능함도 그 고민을 더 부추기는 데 한몫했다. 또 뭔가를 한 번 정하면 그걸 계속해야 하나? 와 같은 고민도 있었기에 정말 생각이 많았다. 그런 나를 보며 한 지인 분이 해주신 말이 정말 공감된다.


"생각도 많고 길도 많다"


또한 이런 삶의 형태뿐 아니라, 연애/결혼/비혼 등의 삶의 방식에 대한 생각, 앞으로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을까? 와 같은 생각. 더군다나 나는 시골에서 올라와 서울생활을 했었기에, 계속 서울에서 살까? 다시 시골로 내려갈까? 앞으로는 어느 도시에 살아야 하나? 와 같은 고민도 있었기에 참 선택해야 할 것이 많았던 삶이었다. 



[처음이라는 것]

첫사랑, 첫 연애, 첫 취업, 첫 출근과 같은 '처음'에서 오는 애틋함. 20대는 참 처음을 많이 하는 시기이다. 그러다 보니 정서적으로도 참 많은 감정을 느끼는 때인 것 같다. 그리고 그 감정의 폭이 참 크기도 하다. 왜냐하면 첫 설렘 같은 건 너무 떨리고, 첫 시련 같은 건 너무 좌절스럽기 때문이다. 또 사회생활을 처음 할 때는 어떤가. 경험 부족에서 오는 실수와 시행착오. 나에 대한 한계를 맛보고 좌절하기도 하고, 현실의 벽을 절절히 느끼기도 하고, 참 10대까지 학교라는 울타리. 온실 속 화초 속에 있다가 사회에 급격하게 던져지는 20대라는 나이는 참 절절히 찌질하게 되는 시기인 것 같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나는 울기도 진짜 많이 울었다. 


- 사회가 내 이상과 달랐던 것이 서러워서

- 연애가 내 마음처럼 안 되는 것이 서러워서

- 현실의 벽이 높은 것에 대해 너무 좌절스러워서

- 나도 나를 모르겠는 것이. 나도 내가 왜 이러는 건지 답답해서

- 내 뜻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어서 

- 미래가 너무 막막해서 

- 뒤쳐질까 하는 불안함과 조바심 때문에 



그래서 친구와 그런 대화를 한 적이 있다. 20대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갈 거냐고. 나는 안 가고 싶을 것 같다고 말했고, 친구도 그렇게 대답했다. 지금의 이 경험치를 가지고 20대로 돌아갈 수 있다면 너무나 환영이지만, 다시 그때의 나로 돌아가 20대를 시작하라고 하면 나는 너무 아프고 막막하고 슬프고 좌절스러웠던 그 순간들을 다시 경험하여, 지금의 내가 되기까지 넘어오는 것이 너무 힘들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30대가 된 내가 좋았다. 그래도 조금은 내성과 내공이 생긴 내가. 내진설계가 조금은 된 내가. 



이 글은 아직 만 나이로 20대인 내가 나에게 주는 편지와도 같은 글이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또 그런 막막하고 좌절스러운 순간이 있으면. 20대에 한 번 해봤던 거니까. 이 경험들로 조금은 더 빨리 털고 일어나서 걸어가라는 이정표 같은 글이다. 친애했던 나의 20대에게 주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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