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면 뭐하니?’의 유플래쉬 편에서 본 가능성.
지금까지 대중들에게 익숙한 음악 예능은 대체로 치열했다. 노래를 부른다 하면, 얼굴을 가리고 누가 더 잘 부르는지 뽑고, 선배들의 옛날 노래를 누가 더 잘 부르는지 뽑고, 또는 누가 더 원곡 가수와 비슷하게 부르는지 뽑았다. 조금 더 넓혀보면, 누가 1위를 해서 소속사에 캐스팅될지, 누가 11위 안으로 들어서 데뷔를 할지 등의 오디션 프로그램도 수없이 많았다.
예능에서 음악을 다루기에 ‘경쟁, 대결’만큼 편하고 인기 있는 소재가 없다. 그래서 근 10년 간 가창 대결, 오디션 프로그램이 쏟아져 나왔고, 이젠 그에 대한 피로도가 쌓였다.
경쟁보다 음악 작업 과정에 집중한 프로그램도 있었다. 그런 프로그램은 대부분 음악보다 음악을 만드는 사람을 중심으로 스토리를 이어나간다. KBS의 ‘건반 위의 하이에나’는 매주 다른 아티스트의 음악 작업 과정을 담은 관찰 예능이었다. 아티스트가 어떻게 음악적 영감을 받는지, 그들이 만나고 경험하는 것들을 보여주었다.
음악 작업을 보여주는 것 자체가 신선한 포맷이고 흥미로웠지만, 음악보다는 출연자와 예능에 조금 더 무게를 둔 프로그램은 흔한 관찰 예능과 별다른 점을 찾기 어렵다. 심지어 아티스트의 예능감에 따라 프로그램의 분위기가 휙휙 바뀐다. 예능에 익숙하지 않은 아티스트도 부담스럽겠지만, 어떻게든 짜내려는 편집과 설정들이 시청자가 보기에도 불편한 요소가 되어버린다.
유플래쉬 편이 2주 진행된 현재, 내가 본 이 방송은 ‘경쟁’보다는 ‘화합’이 주된 분위기를 이끌고 있다. 또한, 짤막하게 나눈 아티스트들의 모습 속에서도 음악 자체에 대해 충분히 집중한다.
유플래쉬는 유재석이 친 드럼 트랙 위에 다른 아티스트들이 릴레이로 한 트랙씩 쌓아 올려 노래를 완성하는 프로젝트이다. 드럼 트랙을 시작으로 두 명의 뮤지션에게 각각 전달해, 서로 다른 두 음원을 완성시킬 예정이다.
기존 ‘놀면 뭐하니?’ 프로그램의 주된 포맷이 다른 사람에게 카메라를 넘겨 촬영하는 것이었는데, 그 포맷을 통해 다른 아티스트에게 카메라를 넘겨 한 트랙씩 더해간다. 그리고 아티스트들이 작업하며 찍은 영상을 유재석과 이적, 유희열 등이 함께 이야기하면서 보는데, 이 부분에서 음악 이야기가 더해지고, 내용이 정리된다.
유플래쉬가 나중에 경쟁요소가 생길 수는 있지만, 지금까지의 흐름으로 봤을 땐, 아티스트 간의 화합이 중심적이다. 이렇게 다양한 아티스트가 함께 작업하는 것에 대해 감동한 듯이 말한 유희열에게서 이 방송의 중심 감성을 더 뚜렷이 느낄 수 있었다. 어떤 사람의 음악이 여기에 더해지면 좋을지 고민하고, 부탁하는 과정에서 아티스트 간의 신뢰와 끈끈함이 느껴졌다.
친하고 편한 사람에게 카메라를 넘겼던 초반 ‘놀면 뭐하니?’와 달리 유플래쉬는 친분이 없던 사람에게도 다음 트랙을 넘길 수 있다. 멜로망스의 정동환이 베이스의 거장이라 불리는 이태윤에게 다음 트랙을 부탁한 것이 대표적이다. 28살 차이가 나지만 정동환은 이태윤을 존경하는 아티스트로 소개하며 트랙을 부탁했다. 이미 이적, 유희열, 윤상 세대의 아티스트와 정동환, 적재, 폴킴 세대의 아티스트가 함께한다는 것부터 세대 간의 어울림이 특징적이었는데, 정동환이 바로 이태윤에게 카메라를 넘기면서 이 화합이 더 두드러졌다.
또한, 한쪽은 그레이에게 전달되면서 힙합으로, 하나는 폴킴과 헤이즈에게 전달되면서 대중적인 듀엣곡으로 완성되어가면서 전혀 다른 장르를 한 번에 볼 수 있는 다양성까지 갖추었다.
앞서 말했듯 유플래쉬는 짤막하게 나눈 아티스트들의 모습 속에서도 음악 자체에 대해 충분히 집중한다. 트랙을 쌓아가는 과정을 짤막하게 보여주면서 아티스트의 이야기도 충분히 보여주지만, 음악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했다. 밴드 노래를 좋아해 본 사람이라면 느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악기 하나의 소리가 얼마나 매력 있는지 말이다. 유플래쉬에서는 각 트랙에 해당하는 한 가지 소리에 집중해서 보여주니까 음악적으로 더 심도 깊은 이야기가 가능했다. 베이스는 정말 많이 쓰이는 악기임에도, 이적이 말한 것처럼 ‘베이스 소리만’ 방송에서 들어본 적이 거의 없었다.
음악에 정말 많은 트랙이 사용되고,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데, 음악을 들을 때 가수가 아닌 참여자들을 보며 듣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가수 중심의 음악 스토리에서 탈피하여 한 음악을 만들 때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을 한 번씩 주목해본다는 점이 의미가 있었다.
기본 드럼 트랙에서 하나씩 트랙이 더해가면서 노래의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지는 지점들은 시청자들에게 놀라움과 신선한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특히 ‘코러스’는 대중에게 딱히 중요하지 않은 소리로 분류되었었다. 그러나 스캣의 대가, 선우정아는 코러스 트랙을 쌓아서, 기타 라인만 있던 음악을 숲속의 요정.st로 바꾸어버린다. 작은 목소리 하나하나의 힘이 얼마나 강력할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그럼에도 유플래쉬 편이 내가 원하는 완벽한 청정 음악 예능이라는 것은 아니다. 기존의 예능과 같은 과한 캐릭터 설정이 거북하기 때문이다. 유재석 예능에서 많이 봐왔던, 유치하고 투닥거리는 캐릭터 설정이 유재석, 이적, 유희열 등에게 뚜렷이 보이는데 그게 너무 익숙해서 지루한 감이 있었다. 유플래쉬가 많은 반응을 얻을 수 있었던 건, 인지도 높은 예능인 중심의 예능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음악에 집중하고, 화합을 중심으로 이끌어나간 것이 이 방송의 장점이기 때문에 앞으로의 음악 예능은 어떤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길지가 관건이지 않을까.
청정 예능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예능은 원래 어떠했기에 앞에 청정이라는 이름을 붙이면서 다시 주목을 받는 것일까. 어떤 불순물이 있었기에 청정 예능을 원하게 된 것일까. 방송사들의 고민이 필요해 보이는 용어의 탄생이었다.
청정 예능의 특징을 뽑자면 ‘불편하지 않은 웃음’이라고 생각한다.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웃을 수 있는 그런 방송 말이다. 방송사들은 20대가 방송을 안 보는 현상에 대해 고민한다. 내 주변 지인들을 보면 콘텐츠에 대한 욕망은 커졌지만, 방송사에서 내보내는 콘텐츠의 내용이 불편해서 등지는 경우가 많았다. (논란 있는 출연자 섭외도 크게 작용했다.) 예능은 다른 미디어 종사자들과는 또 다르게 ‘예능’이라는 분야로 인해 요구되는 윤리적 기준을 다소 낮게 느끼는 것 같다. 예능에서 느껴지는 불편함은 개선되지 않고, 시청자가 ‘견뎌야 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방송을 등지게 되는 것이다.
음악이라는 분야는 많은 사람들이 소통하기에, 관심도 높고 편안한 주제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방송에서 접했던 음악은 그다지 편하지 않았다. 이기기 위해선 질렀고, 웃겼고, 철저했다. 각자가 소비하는 방식이 다르겠지만, 방송은 나에게 여가이고 휴식이자 현실에서의 도피처이다. 그런 곳에서까지 힘들고 싸우고 과한 것을 보고 싶지 않다. 유플래쉬를 통해 가능성을 본 청정 음악 예능은 사람들을 편하고, 더 즐겁게 소통할 수 있게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