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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면씨 Jun 11. 2019

그에게 사랑을 느낄 때

포르투

좋아하는 마음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뀐 건 언제일까.

딱 집어 말할 수 없고,

딱 집어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에게 사랑을 배우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

연애를 시작하고 어쩌다 보니 매일같이 붙어있게 된 우리.

이건 포르투에서 그에게 사랑을 느꼈을 때의 이야기야.




포르투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내가 급체를 한 적이 있어.

늦은 밤인 데다 어디로 어떻게 연락해야 할지 몰랐지.

그래서 끙끙 앓으면서도 참으려고 했어.

그때 그는 내 손을 잡아끌면서 말했어.

“이렇게 아파하는데 참는 건 말이 안 돼.

병원 가자. 응급실 가자. 응?”


집을 나서기 전에 그는 여권을 챙기고 외투를 집어 들었어.

외투를 내 어깨에 얹어 주며 우버를 불렀지.

우버를 타고 병원에 가는 동안 그는 계속 내 상태를 확인했어.

“매스꺼워? 토할 것 같아?

기사한테 살살 운전하라고 할까?”


우리는 병원의 응급실에 도착했어.

수속을 밟고 기다리는데 다급하게 앰뷸런스가 들어왔어.

‘에고.. 엄청 급한 환자인가 보네…’

앰뷸런스에서 내린 할머니는 호호 할머니처럼 방긋 웃으며 들어왔어.

경제는 안 좋지만 국민에게 의료복지만큼은 무료로 제공하는 포르투갈.

덕분에 외국인인 내 순번은 밀리고 밀려 1시간을 기다려야 했어.


처음부터 그는 믿음직스러운 남자였다.


한 시간쯤 지나 나를 호명하는 소리에 진찰실로 향하는 듯했어.

하지만 내가 간 곳은 진찰실이 아니었어.

간단히 나의 증상을 물어보는 간호사는 영어는커녕 스페인어도 통하지 않았어.

제이가 구글 번역기를 켜서 나의 증상을 설명할 때 나는 옆에서 토하는 시늉과 배를 잡고 아픈 시늉을 해 보였어.

뭘 끄적이는 듯하던 간호사는 나를 진찰실 앞에서 대기하라고 했어.

증상 하나 말하기 위해서 한 시간을 기다렸는데 또 기다리라니.


진찰실 앞에 앉아서 순번을 기다리고 있었어.

제이는 내 옆에 앉아서 한숨을 쉬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었지.

그런 제이를 보고 주위를 둘러봤어.

여러 사람이 제 각각 아픈 모습으로 대기하고 있었어.

그중에는 정말 심각하게 아파 보이는 사람도 보였어.

하.. 정말 한숨이 절로 나오는 시스템이었어.


그는  나뿐만 아니라 나의 부모님에게조차 믿음직스러운 남자다.


“아.. 진짜 미친 거 아니냐..

사람이 다 죽어가는데 이게 진짜…

하… 어떡해. 조금만 더 참아.”


초조한 그의 모습을 보며 더 기다려서 될게 아니라고 생각했어.

화장실로 가서 억지로 게워내서 자가 치료를 하려고 했어.

물을 내리려고 줄을 내렸는데 응급벨이었던 거야.

화장실 입구에 삐이-삐이- 소리가 나고 빨간 불이 반짝였어.

‘어라, 도망쳐야겠다.’ 싶었지.

화장실을 나오는데 의사와 간호사와 눈이 마주쳤어.

그들은 응급상활을 알리는 화장실을 보고도 유유자적 걸어갔어.

뭐지, 이 황당한 의료시스템은.


화장실을 다녀온 나에게 잔뜩 걱정하는 표정으로 그가 말했어.

“괜찮아?”

나는 그의 손을 잡아끌며 말했어.

“나 이제 괜찮아. 집에 가자:)”


나도 그에게 믿음직스러운 여자이고 싶다.


집에 돌아와서도 그는 나를 케어하기 바빴어.

자다가도 일어나 내 상태를 확인했지.

다음 날 아침에 괜찮아진 나의 모습을 보고서야 안심했어.

집을 나와 타지에서 아프면 서럽다고들 하잖아.

나는 그걸 느낄 겨를이 없었어.

아픈 순간에 그와 함께 있었기 때문이야.


한번 아프고 나니 그에 대한 내 마음을 한 번 더 확신하는 계기가 되었어.

그에게 지켜지고 있었고,

소중하게 여겨지고 있구나를 절실히 깨달았지.

마음을 간질이는 것만이 사랑이 아닌 걸 배운 순간이기도 했어.


나는 지금 그로 인해 사랑을 배우고, 어른이 되어 가는 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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