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
한국에서는 쉽게 지나쳤던 서양의 축제인 할로윈데이.
할로윈데이를 딱히 즐겨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냥 보낼 생각이었어.
하지만 친구인 제나와 마리아의 생각은 달랐어.
제나와 마리아는 내게 재미있게 분장을 하고 할로윈을 즐기자고 했어.
하긴 나도 포르투갈의 할로윈은 어떨지 궁금하긴 했어.
할로윈데이 하루 전, 제나와 마리아를 만났어.
할로윈을 위한 코스튬 의상과 아이템을 구하기 위해서였어.
웃긴 것을 할까, 진지한 것을 할까.
고민하며 차이니즈 마켓에 갔어.
차이니즈 마켓은 만물상처럼 없는 게 없었어.
그리고 저렴한 가격에 아이템을 구할 수 있는 곳이었어.
어린아이부터 어른들까지 사이즈부터,
여러 가지 테마의 아이템들과 코스튬이 있었어.
나는 악마의 삼지창도 들어보고 요정 날개도 만지작 거렸지만 마음에 드는 게 없었어.
흠.. 하고 둘러보는데 마침 눈에 쏙 들어오는 게 있었어.
바로 치파오였어.
동양인인 내가, 그것도 중국인스럽게 생겼다는 말을 많이 듣는 내가 입기에 딱이었지.
제나도 마음에 들었는지 함께 치파오를 입기로 했어.
나는 새빨간 치파오를, 제나는 검은색의 치파오를 골랐지.
피팅룸에서 입고 나오자 모두들 빵 터졌어.
생각보다 너무 잘 어울렸기 때문이야.
한바탕 웃고 나니 갑자기 할로윈데이가 기대되기 시작했어.
마리아는 차이니즈 마켓에는 마음에 드는 게 없었나 봐.
제이도 마찬가지로 마음에 드는 아이템을 고르지 못했어.
우리는 쇼핑거리로 알려진 산타 카라티나 거리로 갔어.
그 길의 끝엔 간판도 없는 샵이 있었어.
그 샵은 매년 축제날을 위해서만 오픈하는 곳이었어.
여러 할로윈 코스튬과 아이템, 분장 도구까지.
정말 할로윈을 위한 샵이었지.
이 무렵 제이와 나는 왕좌의 게임에 빠져있었어.
그래서 제이가 존 스노우나, 임프를 하는 건 어떨까 하고 생각했어.
괴상한 가면도 써보고, 웃긴 모자도 써보고.
한 시간이 넘도록 샵에서 이것저것 몸에 걸쳐봤어.
하지만 결국 이 샵에서도 원하는 걸 찾지 못했지.
할로윈데이 당일, 이른 저녁에 귀여운 슈렉 코스튬을 한 마리아가 집으로 왔어.
함께 저녁을 먹기 위해서였어.
떡볶이와 참치 주먹밥을 만들어서 저녁을 먹었어.
밥을 먹는 내내 우리는 들떠있었어.
이 밤을 어떻게 즐길지 잔뜩 기대하고 있었어.
나는 빨간 치파오를 입고, 새빨간 립스틱을 발랐어.
머리는 포니테일로 높게 묶어 올렸지.
심심한 내 얼굴에 빨간 립스틱으로 핏자국을 만들었어.
아무렴 할로윈인데 상처쯤이야 기본 아니겠어?
나는 준비를 마쳤고, 이제 남은 건 제이 차례인데..
괜찮은 아이템도 준비하지 못한 데다 생각해둔 것도 없는 제이.
아이라이너로 그의 입을 양옆으로 찢어진 듯이 그렸어.
꿰맨듯한 실밥도 그려줬지.
머리는 돈 많은 중국인처럼 뒤로 깔끔하게 넘겼어.
하고 보니 제이는 조커가 되어 있었어.
나와 제이와 마리아는 클레리구스 탑 바로 앞에 있는 야외 펍 ‘BASE’로 향했어.
일하는 점원들도 저마다 얼굴에 분장을 하고,
펍의 분위기도 유령이 나올 것처럼 몽환적으로 꾸며져 있었어.
제법 쌀쌀한 날씨에 바들바들 떨면서 생맥주를 들이켰어.
요정 분장을 한 귀여운 여자아이와,
얼굴을 해골처럼 분장한 여자,
몬스터스러운 마스크를 쓰고 지나가는 남자.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은 좋은 맥주 안주거리가 되었어.
포르투갈은 잘 못 놀기로 유명해.
클럽을 가도 핫하지 않을 정도야.
그런 포르투갈은 할로윈이라고 예외는 아니었어.
기대한 것이 무색하게 지루했어.
이른 시간이라 그런가 거리에 활기도 없었거든.
제나와 약속시간은 늦은 밤이었어.
제나는 뿌까 머리를 하고 까만 치파오를 입고 있었어.
이미 맥주 한 병을 손에 쥔 채로 신나게 노는 중이었지.
우리는 포르투 대학교 근처에 있는 펍으로 향했어.
역시 대학교 바로 앞은 다른 건가.
펍들이 즐비한 골목으로 들어서니 분위기가 확 달라졌어.
왁자지껄했고, 엄청 시끄럽고, 다들 코스튬을 뽐내기 바빴어.
이거지.
그래, 이래야 할로윈이지.
우리는 함께 맥주를 부딪히며 사람들 속에 자연스레 섞여 들었어.
생에 첫 할로윈을 즐기게 된 날.
밤을 길었고, 잔뜩 마신 술에 추운 줄도 몰랐지.
(사탕 안 주면 장난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