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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주 May 09. 2020

전주국제영화제, 영화표현의 해방구

제19회 전주국제영화제가 5월 3일부터 12일까지 10일 간 개최되었다. 이번 영화제에서는 장편 197편, 단편 44편의 총 241편의 영화가 상영됐다. 전주국제영화제는 작년에 이어 ‘영화 표현의 해방구(Outlet for Cinematic Expression)’을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이를 통해 전주국제영화제는 시각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분화된 취향을 수용하려는 태도와 표현의 자유를 지지해온 영화제의 정신을 이어 나갈 것임을 전한다. 이번 기획에서는 제19회 전주국제영화제에 대한 소개와 함께 이학준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굿 비즈니스’를 취재하여 이에 대한 간략한 감상을 다룬다.


제19회 전주국제영화제는
제19회 전주국제영화제가 5월 3일부터 12일까지 10일 간 개최되었다. 이번 영화제에서는 장편 197편, 단편 44편의 총 241편의 영화가 상영됐다. 전주국제영화제는 작년에 이어 ‘영화 표현의 해방구(Outlet for Cinematic Expression)’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이를 통해 전주국제영화제는 시각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분화된 취향을 수용하려는 태도와 표현의 자유를 지지해온 영화제의 정신을 이어 나갈 것임을 전한다.
이번 전주국제영화제는 작년에 비해 규모와 시장을 일군 축소시킨 느낌이었다. 영화의 거리를 한가득 메웠던 부스들이나 레드카펫 행사의 활기는 찾기 힘들었고, 지원 계약이 약속된 영화나 프랜차이즈만을 대상으로 제한적인 홍보가 이루어졌다. 전주국제영화제가 지역 언론이나 전주시의 지원을 받는 지역 축제로서의 특성을 어느 정도 띠고 열리는 것은 사실이다. 영화를 다루기 위한 축제 이전에 지역 경제를 비롯한 특성 활성화 목적 역시 포함되어 있음은 미디어와 지원, 홍보를 통해서도 드러나는 사실이다. 19번째 전주국제영화제는 영화제 스스로 어느 정도 기회를 드러내지 않는 폐쇄적인 노선을 선택한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영화의 거리 부스 사업이 작년보다 눈에 띄게 수축한 점이나 전주 돔에서의 레드카펫이나 공연행사가 보다 적은 홍보 하에 이뤄진 것이 느껴졌다. 더불어 한 섹션에서 준비되었던 감독의 특별전이 예매 직전 통째로 들어내진 일은 역대 영화제에서 이례적일 정도로 특이한 사건이다.
여느 때나 다름없이 전주국제영화제는 작년보다 더 많은 수의 상영작을 준비한 채 ‘역대 최다’라는 타이틀을 걸고 마케팅을 시작했다. 개막작은 <피와 뼈>등의 각본을 쓴 정의신 감독의 데뷔작 <야키니쿠 드래곤>이 선정되었으며, 폐막작은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 : 감독상’을 수상 받은 웨스 앤더슨 감독의 <개들의 섬>이 선정되었다. 개막작은 개막식 이후에도 몇 차례의 상영 기회를 준비했지만 폐막작은 폐막식 한 번에 상영을 앞둔 상태로 많은 영화 팬들이 폐막식 당일 한 차례의 상영을 위해 전주에 가는 경우도 발생하는 상황이다.
 

영화 감상 - 전주국제영화제영화제작 프로젝트

전주시네마프로젝트(JCP) 다큐멘터리 영화

근 10년간 더더욱 북한에 대한 이야기는 단절되고 외면받기 일쑤였다. 우리는 점점 더 잊어갔고 그러한 순간에도 북한 사람들 중에 체제를 벗어나 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중국, 라오스로 넘어가는 사람들이 있어왔다. 이 영화는 탈북민이 북한을 빠져나오는 방법보다는 그 과정에서의 주위 사람들의 행동에 대해서 주목한다.
결코 선한 사람들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유명해지고자 행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탈북민을 이용해서 돈을 벌려는 사람들도, 심하게는 범죄로 악용하는 사람들 등 다양한 이해관계 속에서 이루어진 이야기이다. 그들의 욕망을 차치하고 보면 그들은 탈북민을 살리고자 한다. 그래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은 누군가를 살릴 수 있다는, 사람의 생명의 존엄성을 귀히 여기는 사람들에 의해서 비즈니스는 계속된다. 이들과 함께 감독과 스태프들은 죽을 고비를 넘기고 혀 밑에 SD카드를 숨겨서라도 그 과정을 필름에 담아온 치열한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이 영화는 조금은 극의 형식을 취하고자 한국 드라마 연출 방법을 차용했다. 페이크 다큐처럼 보일 정도로 목사의 선한 부분만이 아닌 이면 또한 그대로 보여주며 얽히고설킨 복잡한 관계들과 그들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고자 했다. 단순한 선한 인권운동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관객들로 하여금 생각할 틈을 주는 영화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행동은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고민케 하는 영화이다. 탈북민을 돕는 행동이 천성부터 선한 성직자들만이 하는 행동은 아니라는 의미도 담겨있는 듯하다. 개인의 욕구를 중시하더라도 누군가를 위하는 마음과 관심은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눈감아버렸던 삼팔선 너머의 세상을 조금씩 바뀌는 평화의 분위기에 더하여 점점 더 마음을 열어가기를. 그런 사회를 만들고자 감독은 북한에 대한 이야기들을 몇 년간 걸쳐서 켜켜이 쌓아왔고 전주 국제영화제를 통해 세상에 선보였다.

감독과의 대화

Q. 어떻게 이 소재를 가지고 영화를 만들게 되었는지? 그 과정에 대해 설명 부탁드리겠다.
이학준 감독 : 북한 관련 탐사 보도를 오래 했다. 좋은 작품을 한번만 딱 찍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대신 이번이 마지막 다큐멘터리라는 생각이었다.
탈북 문제를 다루면서 제 스스로가 가진 생각이 있었는데 감독들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영화가 되었으면 좋겠다. 촬영을 할 때나 편집을 할 때 내일은 없다는 생각으로 했고 결국에 개막하기 전 날 편집을 마쳤다. 이렇게라도 끝낼 수 있어서 참 감사하다.

Q. 영화에서 한 역할은 무엇인지?
탁영환 감독 : 이학준 감독님과 작품에 대한 세계 이야기를 하다가 탈북 관련한 여러 가지 일들을 하셨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우연찮은 기회에 방배동에 있는 탈북 청소년들은 교육 수준이 달라서 일반학교를 다니기 힘들다. 그 친구들에게 자원봉사를 3, 4년 정도 해왔다. 1, 2분 동안에도 수업을 제대로 집중하기 힘들다. 그림 그리는 활동을 하는 데 연필잡기가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이친구들이 어떤 세월을 겪어왔나 생각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탈북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고 마침 작업을 같이하자고 이야기를 했을 때 한다고 했다. 17년이 될 줄은 몰랐고 이 영화를 6년 동안 같이 했었고 세어보면 중고등학교 시절을 그냥 보낸 것과 마찬가지 일만큼 오랫동안 한 작품을 찍어왔다. 그냥 어떤 프레임에 갇힌 시각으로 이 영화를 보지 않았으면. 사람에 대한 얘기이고 사람은 바뀔 수 있다. 그게 어떠한 목적이든 누군가를 좀 더 나은 환경으로 끌고 나가는 건 결국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다. 우리가 꼬리를 쳐야 그 파장이 나비효과가 나온다고 생각을 한다. 그 생각 때문에 작업에 참여를 하게 되었다.

이세영 감독 : 탁영환 감독님이 직접 탈북현장 찾아가서 죽다 살아난 경험을 하셨다. 저는 삼년 전부터 참여를 해서 비교적 후반부 참여했다. 이학준 감독님이 동종업계 선배라서 알고 지냈는데 12년 전 ‘천국의 국경을 넘다’라는 탈북과 관련된 TV 다큐멘터리 시리즈를 만드셨다. 탈북자들과 함께 국경에서부터 12,000km를 같이 넘어가고 8살짜리 아이가 청소년이 될 때 까지 그 아이들을 보살피는 것을 보면서 무슨 세계인가 그런 생각을 하던 차에 너도 좀 합류를 해라는 제안으로 참가했다. 그래서 이 년 전쯤 탈출기를 스핀오프 버전 느낌으로 만들게 해주셨다. 작품에 참가해주신 것과 커리어를 만들게 해주시고 이 두 분이 큰일을 하신 거라고 생각 한다. 이 자리에 서게되서 개인적으로 감흥을 담아 말씀드리는 것보다도 작품 자체가 가진 아우라라든가 이학준 감독과 탁영환 감독이 어떤 계기로 탈북 다큐멘터리에 깊게 참가하게 되었는가를 헤아려 주시면서 보셨으면 하는 그런 마음이다.

Q. 대사관에 들어갈 때 눈물이 났고 목사님께서 세 자매를 키우는 게 감동적이었다. 저희들의 몫이 이곳에 와있는 새터민 탈북자들이 적응을 돕는 것일 텐데 적응을 잘 하신 분도 계시겠지만 적응을 못해서 탈북 하는 것들이 힘든 분들도 있을 것 같다. 저희들이 해야 하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이학준 감독 : 이 영화는 이전에 했던 내용과는 다르게 이전에는 탈북자의 인권이나 슬픈 이야기가 중심이었는데 서로의 비즈니스 욕망을 다루려고 노력했다. 그렇지만 헤어지게 되는 순간은 많이 울게 된다. 저도 2007년도에 처음 따라갔을 때 많이 울었다. 촬영 감독님이 처음이어서 제가 미리 아이들이 들어갈 때 절대 울면 안 된다고 경고를 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펑펑 우셨다. 사람이 어떤 목적으로 따라가던 간에 영화 속 사람들이 자기의 욕망을 추구하든 간에 이 일을 오래할 수 있었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그래도 이 과정에서 사람이 살아난다는 것이었다. 밀입국을 열여섯 번 했는데 그 과정이 익숙해지지 않고 항상 무섭다. 그래도 13년째 탈북자 문제 관련된 일들을 했는데 가장 중요한건 관심을 가지다보면 도와줄 일들이 있다.

탁영환 감독 : 지원봉사를 나갔던 탈북청소년 지금은 대학생이 되었다. 그 친구가 저한테 한 이야기 중에 기억이 남는 게 뭐냐면 체제가 싫고 힘들어서 넘어온 북한인데 북한 싫은 건 아니다. 그들한테는 고향이고 목사님이 되서 통일이 되면 목회를 고향에서 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 북한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겠다고 했는데 그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북한을 돌아가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놀랐는데 사실 그한테는 북한은 고향이고 주위에 있는 같이 넘어오지 못한 친구들 가서 좋은 일을 해보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 좋은 화해모드로 가게 되어서 그러한 부분에 감사하게 생각을 하고 있다.


원문 : 한국교원대신문 416호 2018.05.14

http://news.knue.ac.kr/news/articleView.html?idxno=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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