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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니작가 Nov 22. 2023

비자발적 미니멀리스트가 되다

여행 가방 하나, 백팩 하나 덜렁 메고 시드니행

 내 물건 하나 없지만 편안한 집 : 시드니에서 비자발적 미니멀리스트가 되다     


 나만의 공간을 갖고 싶었다. 삼 형제라 나만의 방을 가지는 건 사치였다. 하지만 어떻게든 방법을 찾고 싶었다. 이때 목사님의 설교가 지름길을 알려주었다. 청년들은 해외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며 살아야 세상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며 망설이지 말고 기회를 만들어보라고 하셨다. 이 말씀을 듣고 우리 집에 내 방을 만드는 것보다 해외로 나가 나만의 공간을 만드는 게 더 빠를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비행깃값을 벌기 위해 과외를 해서 돈을 모았고 시드니에서 사역하고 계신 목사님과 연락을 한 후 일사천리로 대학교에 휴학 서류를 냈다. 출국 준비를 어느 정도 다 한 후에 엄마에게 선전포고를 했다. 나를 잘 아는 엄마는 생각보다 놀라지 않으셨고 든든한 지원자가 되어주셨다.      


 여행 가방 하나, 백팩 하나 덜렁 메고 시드니에 도착했다. 어디서 살지 정하지 못해서 목사님 댁에 며칠 머물면서 찾아보기로 했다. 이때는 지금처럼 다양한 숙박 앱이 없었기 때문에 호텔 외에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적어도 1년 이상 지낼 생각이었지만 나의 공간이 뚜렷하게 정해진 게 아니기 때문에 짐은 최소화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때야말로 미니멀리스트였다. 여행 가방 하나에 꼭 필요한 것들만 채웠다. 한국 음식은 아무것도 챙기기 않았고 영어 공부를 하겠다는 열정으로 다양한 교재를 가방에 넣었다. 누가 보면 3박 4일 여행 가는 수준의 짐이었다. 이렇게 딱 필요한 짐만 챙기다 보니 시드니로 떠나기 전에 정리를 깔끔하게 할 수 있었다.     

 시드니에 도착 후 교민잡지를 보고 가능한 곳에 연락을 한 후 찾아갔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일주일 당 가격이었다.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여기는 주당 비용을 지불했다. 시드니에서 가장 저렴하게 지낼 수 있는 방법은 다른 사람과 함께 방을 사용하는 거였다. 감사하게도 한인 가족의 집에서 세어를 하게 됐는데 방을 같이 사용하는 분은 호스트 맘의 딸이었다. 방안에 들어가면 두 개의 침대가 있는데 왼쪽이 나의 공간이었다. 오른쪽에는 언니가 사용하는 옷장과 책상 그리고 전화기와 침대가 있었다. 나에게 허락된 공간은 침대와 바로 앞에 놓인 책상이었다. 짐이 없어서 솔직히 정리할 것도 없었다. 옷과 책이 거의 전부였다. 부족한 겨울옷은 집 주변에 있는 중고가게에서 저렴하게 구매해서 입었다.    

 

 이때부터 눈치라는 게 생겼다. 세탁 시간과 샤워시간도 정해져 있었고 내 집이 아니다 보니 요리보다는 대부분 마트에서 사 온 샐러드와 빵 그리고 우유 위주로 식사를 했다. 언니가 일어날 때 일어나야 했고 언니가 자면 잠이 안 와도 불을 꺼야 했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서 수업 때마다 피곤했다. 집에서 편하게 쉬어야 하는데 나에겐 그 공간은 단지 머무는 장소였다.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짐이 없으니 언제든지 난 새로운 곳으로 손쉽게 움직일 수 있었다. 교민잡지에서 최적의 장소를 찾으려 노력했지만 나의 재정으로는 불가능했다. 하지만 그때 같은 교회를 다니는 동생이 시드니에서 학교를 다니기로 해서 집을 렌트했다면서 같이 살자고 제안했다. 이 집은 방 2개짜리였고 같은 방에서 동생과 난 한 침대를 쓰고 다른 방 하나는 다른 한국인 유학생이 사용했다. 동생은 다양한 소품을 이용해서 예쁘게 집을 꾸몄다. 내 집도 아닌 내 거 하나 없는 공간이었지만 마음은 편안했다. 내 공간이 생기니 귀엽고 아기자기한 것들이 있으면 사고 싶어졌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난 그런 걸 살 재정적인 여유가 없었다. 시드니에서도 과외를 하며 렌트비를 내고 있었기 때문에 꼭 필요한 것을 위해서 돈을 모아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 돈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하는지 매번 생각하게 됐다. 당장 예뻐서 사는 것보다는 여기에 있을 때 더 다양한 것들을 경험하는 게 훨씬 이득이라고 생각했다. 가끔 여윳돈이 생겨도 난 장식품이나 기념품을 사지 않았다. 대신 시드니의 아름다운 모습을 눈에 담아두고 싶어 새로운 곳을 다니며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을 만나며 이곳을 온전히 즐겼다. 그때의 기억은 나의 머릿속에 너무나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재정적인 제약 때문에 물질적으로 힘들었지만 대신 나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돈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나를 위한 소비가 어떤 건지 스스로 깨달을 수 있었다. 가진 거라곤 20대의 패기와 열정밖에 없었지만 내가 원하는 목표를 힘든 상황에서도 노력해서 극복할 수 있었다. 이때가 나를 가장 많이 성장하게 했고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뭔지 가장 많이 생각하게 된 시기였다. 환경적인 제약이 나에게 더 집중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허락했다. 물건으로 둘러싸인 공간이 아니라 딱 나에게 필요한 것들만 있는 아주 작은 나만의 공간이었고 난 그곳에서 가장 편안하고 행복했다. 온전히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나만의 퀘렌시아 ’였다. 한국에서처럼 혼자서 방을 사용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외국 땅에 나만을 위한 작은 공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참 행복했다. 가장 나에게 충실하고 물건에 대한 집착이 없었을 때가 이 시기였다.

*퀘렌시아 : 몸과 마음이 지쳤을 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나만의 공간. 안식처     


 지금 생각해 보면 난 능동적인 미니멀리스트가 아니라 재정 부족으로 인한 어쩔 수 없는 반강제적 미니멀리스트였다. 하지만 긍정적이고 마음이 풍성했던 이때가 가장 내적으로 단단해졌다. 다행히도 그때 난 물건에 그리 욕심이 없었고 집안을 멋지게 꾸미는 데에도 그리 관심이 없었다. 게다가 시드니에서는 워낙 정리할 짐이 없다 보니 지인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하고 싶다면 이런 환경적인 조건을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정리만큼 중요한 부분이 바로 쓸데없는 소비를 줄이는 일이다. 가계부를 쓰면 본인의 소비패턴을 알 수 있어서 현명한 소비를 할 수 있다. 득이 없는 소비를 줄인 만큼 본인만의 공간과 마음의 여유도 늘어난다. 이렇게 계속 미니멀리스트의 삶을 살았어야 했는데 비행을 하면서 돈을 벌고 나만의 공간이 생기면서 내가 몰랐던 소비 성향을 발견했다. 역시 인간은 환경의 동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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