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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리께 Dec 20. 2022

순도 높은 위로

<밀가루를 전혀 넣지 않은 초코 브라우니>


 혜화동에서 작은 카페를 하던 때가 있었다. 개시한 날부터 인계를 한 날까지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지만 그 3년 동안 나는 직장 생활을 할 때와는 다른 차원의 힘듦을 경험했다. '카페'라 이름 지었지만 커피만 내놓는 곳은 아니었다. 커피 외에 베이커리, 브런치, 파스타, 주류, 그리고 안주로 곁들일 간단한 요리를 직접 만든 까닭에 식재료 준비와 조리, 제빵, 뒷정리, 발주 및 재고 관리까지 하루를 꼬박 일해도 할 일은 계속 생겨났다. 손이 턱없이 부족해서 직원 두 세명과 함께 운영했었다. 다행히 매출이 그럭저럭 나와서 힘듦의 보상이 되긴 했다. 카페 주변으로 몇 개의 소극장이 있어 공연시간 전후로 고정적인 손님이 있었고, 커피 맛을 좋아해 준 단골손님들도 꾸준히 찾아주었다. 희한하게도,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이 손님의 발길이 뚝 끊기는 날이 간혹 있긴 했는데, 나는 그럴 때 브라우니를 만들었다. 대부분의 제빵이 그러하듯 브라우니도 굽는 과정이 번거롭고 그 순간을 놓쳐선 안 되는 과정이 있기 때문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때가 필요했다.


 당시 만들었던 브라우니는 밀가루가 전혀 들어가지 않아 상당히 촉촉하고 쫀득해서 커피를 마시는 손님들이 곁들여 먹기 위해 즐겨 찾던 메뉴다. 동글동글 동전처럼 생겼다 해서 이름 붙여진 코인 초콜릿과 초코파우더, 버터를 각 350g, 80g, 250g씩 큰 쇠볼에 담고 물이 끓는 냄비 위에 두어 중탕으로 천천히 녹인다. 달걀은 크기에 따라 조금씩 개수의 차이가 나지만 대체적으로 15개 정도면 됐다. 흰자와 노른자를 분리한 뒤 흰자는 거품기로 머랭을 치며 2회에 나눠 설탕 총 140g을 섞고, 노른자는 225g을 계량한 뒤 설탕 225g을 1대 1 비율로 섞는다. 중탕으로 녹인 초콜릿에 먼저 노른자를 넣고 잘 저어 섞어준 다음 흰자 머랭을 넣어 저어주면 반죽이 완성되는데, 이때 흰자 머랭을 넣고 너무 저어버리면 머랭의 숨이 죽어버리니 유의할 것. 유산지를 깐 큰 틀에 반죽을 붓고 예열된 오븐에서 160도로 22분을 구워준다. 다 구워진 브라우니는 실온에서 충분히 식힌 후에 원하는 모양으로 잘라서 냉장 보관하는데 당일에 먹기보다는 하루정도 숙성을 시키면 더욱 촉촉한 브라우니를 맛볼 수 있다.


 틀 한 판을 구우면 대략 스무네 개가량의 브라우니가 만들어졌는데, 그중 판매분은 사실 절반 정도이고 나머지 절반은 내가 간식으로 먹든지 혹은 친구가 찾아오면 맛보라며 내놓는 것이었다. 카페를 하며 겪었던 힘듦 중 가장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외로움이었던 것 같다. 하루 종일 카페의 출입구를 응시하며 손님이 들어오기를 기다리다 보면 그 하염없는 기다림에 지칠 때가 있었다. 손님의 발길이 이어지지 않는 것이 내 잘못은 아니지만 마치 내 잘못처럼 느껴져서 기분이 바닥을 치곤 했었다. 나의 심정을 누구에게 털어놓지 못하는 것도 외로움의 한 부분이었다. 함께 일하는 친구들이 있었지만 엄연히 고용관계에 있는 사이 간에 나눌 수 있는 이야기에는 한계가 있었으므로 목까지 차오른 푸념을 그냥 삼킬 수밖에 없었다. 그럴 때 나는 냉장고에 넣어둔 브라우니를 하나씩 꺼내 먹으며 나를 달랬다. 순도 높은 달달함이 위로가 되곤 했다. 

 그러다 가끔은 누군가 나를 찾아와 주는 날이 있었다. 내 얼굴을 보고 싶어서, 내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혹은 지나가는 길에 생각이 나서 들렀다는 말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비로소 나의 쓸모가 생기는 기분 같았다. 기쁜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서 나는 냉장고에서 브라우니 한 조각을 꺼내 커피 옆에 살포시 놔주었다. 이렇듯 브라우니는 그 당시 나의 외로움을 달래주던 애틋한 간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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