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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노 May 30. 2024

멀리 떠나고 싶은 몽상가

19년을 일했으면 그래도 되지 않을까


라셀라스는 새뮤얼 존슨이라는 작가의 1759년 작품이다. 이 오래된 소설을 읽은 이유는 책 소개 때문이었다.



부족한 것이 없는 '행복의 골짜기'에 살고 있는 아비시니아(옛 에티오피아)의 왕자 라셀라스는 자신을 둘러싼 이 행복에 의심을 품고 '골짜기 너머의 삶' 속에 벌어지는 인간들의 일반적인 운명을 탐색하기로 한다. 라셀라스는 권력의 다툼이 벌어지는 공적 삶과 가정의 소소한 불행이 끊임없이 벌어지는 사적 생활을 체험하면서, 인간 본성과 삶의 이치에 관해 성찰한다.



Abyssinia라고 하니까 방탄소년단 진의 Abyss라는 노래가 생각났다. 이게 중요한 건 아니고, 최근 나는 아비시니아의 왕자처럼 내가 가진 행복에 의심을 품고 있었다. 이게 맞나? 이렇게 일만 하다가 죽는 게 맞나? 이런 생각들로 가득한 일상을 살고 있었는데, 이 부족함 없는 왕자가 모든 게 갖춰진 세계를 박차고 나와 행복을 찾는다니 너무 궁금했다.



인상적인 부분은 왕자가 아비시니아를 탈출하기 위해 방법을 궁리하던 장면이었다. 라셀라스는 굉장히 적극적이었다가 뜻대로 되지 않아 좌절하고 포기했다가 다시 방법을 모색했다가 심드렁했다가 하면서 몇 년의 시간을 보낸다. 탈출 이후의 삶도 힘들겠지만 사실은 탈출을 도모하는 시작 자체가 가장 힘든 포인트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왜 뭔가를 하려고 하면 시작이 가장 힘들잖나. 관성으로 흘러가고 싶고, 살던 대로 살고 싶고. 무섭고.



인생은 고통과 권태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시계추 같다는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안정되면 고통스러워도 방황하고 싶고, 방황하면 안정되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인가 보다. 이렇게 어디론가 떠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홀린 듯이 찾아 읽는 것을 보면 나는 요즘 꽤나 도망치고 싶은가 보다. 오른쪽으로 10도 왼쪽으로 10도씩 틀면서 사는 것으론 만족이 안된다. 삶의 각도를 90도쯤 꺾어버리고 싶다. 완전히 다르게 살아보고 싶다.



책의 결론은 당연하게도 영원하고 절대적인 행복은 없다는 것 같다. 어떤 친구가 내게 '내가 아는 제일의 몽상가는 너야'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나 같은 몽상가는 어느 세계에도 영원하고 절대적인 행복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탈출의 상상을 하고 있다. 이런 내 말을 들은 다른 친구는 '세상엔 삶의 근간이 흔들릴 정도로 힘든 사람이 많아'라며 내 상황이 사실은 누군가가 원하는 안정된 기반 아래 서 있음을 돌려서 충고했다.



전에 우리가 서사의 기본 구조에 관해 이야기한 적 있었죠?
갔다가 오는 것이 모든 이야기의 기본이라고요.
A가 일상에서 비일상의 세계로 넘어갔다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A'가 되는 것이 여행과 이야기의 구조라고 했었어요.
문지혁 소설 '중급 한국어'



라셀라스는 결국 몇 년에 걸쳐 탈출했던 아비시니아돌아갈 것 같다. 그래서 행복이라는 공상이 속삭이는 소리를 찾아 떠났던 이 여정은 실패인가. 나는 이 책의 마지막 장의 제목처럼 '결론이 아무것도 없는 결론'이라도 이 여정에 참여하고 싶다. 오늘도 이렇게 겪어봐야 깨닫는 어리석은 몽상가 A'를 꿈꾸며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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