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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나봄 Nov 15. 2019

감히 ‘평’을 할 수 없는
‘감성’ 그 자체

[Review] <우리들의 사랑>

 이 주크박스 뮤지컬을 본 후 밖에 나와서 내가 지인에게 처음 뱉은 말은, 

이건, 내가 좋다, 안 좋다, 평가할 수 있는 공연이 아닌 것 같아



 오랜만에 간 대학로. 다닥다닥 붙은 소극장이 매력적인 열정 넘치는 곳. 이날 본 공연장은 내 생각보단 큰 소극장이었다. 울타리 같은 설치물을 기준으로, 그 뒤는 천국이고 그 앞은 현실 세계다. 작은 무대를 잘 활용한 것 같아서 센스있는 연출이라 생각했다. 


뮤지컬이 시작되고-. 천국에 있는 김광석, 김현식, 유재하 역을 맡은 김영환 배우, 김소년 배우, 이민재 배우가 나왔다. 옷을 흰색 긴 셔츠나 원피스 느낌으로 입어서 살짝 성가대 같은 모습이라 처음엔 아름다운 발라드를 불러도 웃겨서 몰입이 잘 안 됐다. 그러나 이내 10분도 되지 않아 잡생각이 사라졌다. ‘이건 이렇고, 저건 저러네? 이 부분은 이렇게 글 쓰고…’라며 한창 머리 굴리던 때에 자신을 김광석, 김현식, 유재하라고 생각해 달라며 노래를 부르는데 그 순간 딱 느껴졌다. 이 공연은 ‘이성’으로 평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 


 돈으로 가치를 셈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주로 추상적인 것들이다. 행복, 생명, 감정과 같은. 혹은 예술가 같이 사람 그 자체가 가치일 때, 더더욱 부르는 게 값이다. 어쩔 땐 돈으로 살 수도 없다. 그 사람의 가치를 매길 수도 없을뿐더러, 예술가가 돈에 의해 움직이지 않으면 끝이니까. 


 이 공연이 이런 느낌이었다. 가창력이 어쩌고, 연주가 저쩌고, 연기는 별로네 등등 프로 불편러처럼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을 수도 없었고, 그래서도 안 되는. 내 스타일의 공연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공연 자체가 ‘가치’였다. 이 공연은 관객 중 누군가의 추억을 환기했고, 그 시절 감성을 다시 느낄 수 있게끔 했다. 어린 관객들에겐 어디서 들어본 법한 노래가 이들의 노래였단 걸 알려주며, 한때 가요계를 장악했던 엄청난 가수들이란 사실을 알렸다. 많이 어린 나이인데도 어디선가 들어 본 노래라면(이 노래를 전부 알진 못해도), 천국에 계신 세 분의 노래들이 엄청난 세월을 살아가고 있단 증명이다. 비록 그분들의 생은 끝났을지언정, 노래만큼은 아직도 살아있다는 일종의 증명 말이다. 이 노래들이 얼마나 오래갈지 모르겠지만, 아마 우리의 예상보다 더 장수할 것이다. 명곡은 언제 들어도 명곡이니까. 그래서 명곡들은, 곡의 주인이 죽어도 노래로서 평생을 산다. 평생 회자된다.


-왼쪽부터 故 김광석, 김현식, 유재하-


 세 가수의 명곡 이외에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부분이 있다. 여자 주인공인 초희가 너무 힘들어서 한강 다리에 올라간 장면인데 대사로 보아, 자살 방지 문구가 있는 마포대교였다. 다른 대교일 수도 있지만, 마포대교가 제일 대표적이니까(최근 10월에 사라졌다고 하지만). 이 장면 전까진 아이 같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던 초희였는데 여기서 파워풀한 성량과 고음으로 깜짝 놀랐다. ‘일부러 아이처럼 불렀던 거구나’란 생각이 듦과 동시에, ‘이 공연 전체 중에서 제일 뮤지컬다운 장면이다’라 생각했다. 


 다리에 쓰여 있는 문구를 읽으면서 하나하나 대답하는데, 너무 멋졌다. 저 작은 체구에서 어떻게 저 성량이 나올까 싶었고. 기억나는 대사는 초희가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고? 어차피 태양은 매일 떠!!!”라고 외친 부분이었다. 웃길 수도 있는데 뭔가 되게 공감 가는 부분이었다. 나도 힘들 때 그 대교에 갔다면, 그랬을 것 같아서. 





 마지막으로 연주 얘기를 꼭 하고 싶다. 누구 하나 트집 잡을 것 없이 모두 훌륭한 연주와 노래를 보여줬지만, 콕 짚어서 베이스기타 얘길 하고 싶다. 어릴 적부터 베이스기타 배우길 원했었기 때문에 베이스 연주 듣는 걸 굉장히 좋아한다. 근데 베이스 독주나 밴드에서 베이스 소리 듣기는 상대적으로 다른 악기에 비해 힘든 편이다. 밴드에서는 드럼의 북소리와 헷갈려 하는 사람들이 많고, 베이스 독주보단 일렉기타 독주가 더 튀기 때문에 내 지인 중에 베이스기타 소리를 잘 아는 사람이 없다. 


 베이스기타는 최근 JTBC <비긴어게인 3>에서 가수 태연 양이 커버한 ‘Billie Eilish-Bad Guy’를 들으면 어떤 소리인지 잘 알 수 있다. 내게 베이스기타는 첫사랑이자, 첫사랑이 했던 ‘베이스기타 소리는 영국 신사 같아’란 말 때문에 영국 신사를 떠올리게끔 하는 악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번 기회를 통해 아주 가까이서 베이스기타 연주를 듣게 되어 너무 좋았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베이스기타를 연주하는 역인 김영환 배우(김광석)께서 베이스기타를 연주하는 내내 음악을 즐기면서 행복하단 표정을 해 주셔서 보는 입장에서도 같이 미소가 지어졌다. 계속 웃으며 리듬을 타는 것 자체가 연기일 수도 있겠지만, 내가 느끼기엔 공연을 떠나 음악 자체를 즐긴 것처럼 느껴졌기에, 난 내가 느낀 대로 공연을 끝까지 감상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더블 캐스팅이라 다른 역을 맡은 배우들 버전도 보고 싶었다는 점! 단지 서울로 공연 보러 가기 힘든, 지방에 있는 사람 입장에서 아쉬운 점일 뿐, 공연에 대한 아쉬움은 아니다. 


 이런 연주와 명곡의 합을 공연한 ‘우리들의 사랑’은 관객 한 명 한 명의 마음을 건드리기 때문에 관객의 나이대와 같이 본 사람이 누군지에 따라 평이 다양할 것이다. 하지만 그 평들은 모두 감정에 기반한, 냉철하지 않은, 훈훈한 리뷰이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상해 본다.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영화 <타이타닉> 보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혹은 <내 머릿속의 지우개>같이, 스케일이 큰 외국 영화 보단 우리나라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국내 영화를 더 선호한다. 번역의 문제나 대사를 봐야 해서 영화 자체에 집중하기 어렵다는 점도 한 이유이고. 아무튼, 내 생에 뮤지컬은 이번이 처음이다. 뭐든지 첫 경험이 중요하다고들 한다. 웅장하고 화려한 뮤지컬 <캣츠> 같은 공연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나는 이 3명의 가수를 알고 명곡을 아는, 우리나라 사람들만이 전달하고 또 전달받을 수 있는, 감정의 교류가 가능한 <우리들의 사랑>이 첫 뮤지컬 감상 작이라 참, 좋다. 






우리들의 사랑 

- ACOUSTIC MUSICAL -



일자 : 2019.11.01 ~ 2020.01.05


시간

11.01 ~ 11.29

화/수/금 저녁 7시 30분

토/일/공휴일 오후 4시


11.30 ~ 12.29

화/수/목/금 저녁 7시 30분

토 오후 4시/7시

일/공휴일 오후 4시

12.25 오후 4시


12.31 ~ 01.05

화/목/금 저녁 7시 30분

토/일 오후 4시

01.01 공연 없음


장소 : 대학로 예그린씨어터


티켓가격

전석 50,000원


기획

LP STORY


제작

㈜ 크림컴퍼니, LP STORY


관람연령

만 7세 이상


공연시간

150분



cf.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44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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