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심리테스트 하는 걸 참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예를 들면,
무인도에 갈 상황인데 다음 중 하나만 데려갈 수 있다면?
- 사람, 돼지, 소, 새.
OO를 고른 당신! ~한 타입이군요!
뭐, 이런 내용의 재미로 보는 심리테스트? 초등학생 시절 친구들 사이에서 꽤 인기가 많은 놀이 중 하나였던 걸로 기억한다. 이 책을 보면서 심리테스트를 하는 기분이었다. ‘~한 당신’이란 부분 때문인데, 자꾸 ‘이 그림에 눈길이 멈춘 당신, 지금 ~한 마음이군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오랜만에 하는 심리테스트에 가볍게 그리고 재밌게 읽었다.
원래 에세이나 심리 관련 책을 좋아한다. 에세이는 덤덤한 것 같으면서도 그 사람의 아픔에 공감하며 읽기에 눈은 덤덤해도 머리는 복잡해진다. 여행 에세이라도 작가 인생의 일부를 보고 있으면 결국 다 사람 사는 얘기다. 에세이 외엔 심리 관련 자기계발 도서가 가장 많다. 나중에 따로 책 소개 글을 쓸 때 언급하려고 아껴둔 책이 몇 권 있는데, 지금 이 책과 함께 얘기하면 좋을 것 같아서 소개한다. <내가 말하는 본심 내가 모르는 진심>이란 책이다.
제목을 보고 짐작한 사람도 있겠지만,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도 미처 깨닫지 못했던 본심들, 그리고 내가 말하고 생각하는 진심들에 대한 진실에 대해 알려주는 책이다. 방어기제를 중심으로 얘기하는데 개인적으로 흥미로웠고 많은 도움을 받았다.
책 <그림 처방전>은 <내가 말하는 진심 내가 모르는 본심>이란 책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초반엔 테스트하는 것처럼 재미로 읽다가 점점 내 마음을 들여다보게끔 하는 점이 특히 닮았다. 그렇다고 그림 처방전이 무거운 책이라는 뜻은 아니다. 오랜만에 가볍게 읽은 책이라 모처럼 좋았다. 그리고 매우 자잘하게 나뉜 목차 덕에 소재가 빨리 바뀌어서 심심하지도 않았다. 책 읽기를 싫어하는 사람이 봐도 재밌게 볼 것 같단 점에서 ‘좋은 책’이라 말하고 싶다. 어려운 책이나 글만 가득한 책 혹은 문학성이 뛰어난 책도 좋지만, 뭐니 뭐니 해도 읽기 편하고 재미있는 책이 제일인 것 같다. 독자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고, 부담스럽게 읽지 않아도 되는 그런 책.
나는 굉장히 냉소적인 편이다. 그래서 비판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기도 한다. 이런 성격 탓에 무언가를 비평할 때 ‘프로 불편러’가 되는 기분이 든다. 편협한 사고방식으로 무언가를 채점하지 않기 위해 ‘천사와 악마 버전’을 번갈아 가며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이 책만 해도, 처음엔 나도 모르게 악마 버전으로(좋지 않은 시각) 읽게 됐다. ‘아니, 피부색이나 야한 사진엔 당연히 눈길이 가지 않나?’ 이러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내 곧 같은 부분을 천사 버전으로 다시 읽는다. ‘아니지, 그건 순간 눈길을 사로잡는 것일 뿐 나도 모르게 계속 들여다보고 있진 않지. 뒤에 나오는 나체 사진이나 야한 사진보다 지금 이 사진을 더 오래 보고 있잖아?!’ 이렇게 말이다. 이 예는 책 p.21에 대한 내용이다. 페르난도 보테로의 <브래지어를 착용하는 여자> 그림이다. 책에선 비대하게 그려진 여자의 몸에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면 자신을 투영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동시에 자신의 정체성에 외모가 큰 부분을 차지하는 사람을 얘기하며 자존감에 관한 언급을 하는데 솔직히 좀 찔렸다. 족집게 같은 이 저자가 내 외모 강박증을 콕 짚은 것 같아서.
이 책은 나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주로 다루고 있다. 그래서 ‘사랑’과 관련해 다양한 얘기가 나오는데 주로 이성과의 사랑을 다룬다. 한쪽에 그림을 싣고 그 바로 옆 페이지에 이 그림에 시선이 갔다면 현재 어떤 마음 상태인지 알려주는데, 이 과정이 진단을 내려주는 것 같다. 또한 그다음 페이지엔 그림에 대한 설명과 합리적 추측이, 마지막엔 다른 그림을 보여주면서 이 그림 속 상황처럼 되는 게 좋다며 해결책을 제시한다. 이 해결책이란 게 어떻게 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조언 같지만, 이 책에선 일련의 과정이 있기에 마치 병원에서의 마지막 과정인 처방전을 받는 느낌이다.
글은 보조적인 수단의 글이 있고, 말로는 다 설명하기 힘든 부분을 글로 대체하는 글이 있다. 이 책은 간결하고 딱딱한 느낌의 말투로 그림에 대한 보조적 설명을 하고 있지만, 어딘가 따뜻한 마음이 느껴진다. 이 책에 실린 총 55점의 그림들을 수많은 그림 중 신중하게 골랐을 작가, 영상이나 말에 비해 제스쳐나 억양이 없어서 자칫 남들이 ‘이런 말은 나도 하겠다’라고 느낄 수 있을 만한 조언을 조금이라도 독자에게 진심이 전달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약간의 글꼴 색 변경을 택한 편집 디자이너, 책이란 특성 때문에 그림의 왼쪽이나 오른쪽 부분이 휘어서 보이는 점을 보완하고자 최대한 한눈에 그리고 전체적으로 그림을 감상할 수 있도록 많이 고민한 게 보이는 출판사 직원들의 노력. 이 책 한 권에 담긴 수많은 사람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진다.
저자는 말한다. 가끔은 백 마디 말보다 한 점의 그림이 우리의 마음에 더욱 위로된다고. 하지만 나는 수많은 그림보다 당신의 간결한 문장 끝에 있는 온점 하나하나가 더 따뜻했다고 말하고 싶다.
사람은 누구나 사회 속에서 수많은 ‘역할’을 행하며 살아간다. 가족, 친구, 연인, 동료…. 나를 이루는 그 무수한 관계 속에서 사람에 상처받고 사랑에 아파하고 삶에 치이며 몸부림치는 것 역시 사람이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얽히고설킨 관계가 힘들 때, 사람이 아닌 그 어떤 것에서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
<그림 처방전>은 자신을 둘러싼 관계가 서툴고 버거워 상처받고 힘들어하는, 나조차도 어쩌지 못하는 내 마음이 가장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그림 처방책이다.
저자는 “눈길이 머무는 그림이 있다면, 내 마음을 점검해야 한다는 신호”라고 이야기하며 그림으로 독자들의 현재 심리 상태를 들여다보고 마음의 결핍에 대해 다룬다. 숱한 관계 속에서 느끼는 어려움과 아픔에 주목, 심리적 관점에서 그림을 바라보고 해석하며 독자들이 자신의 마음을 직시할 수 있도록 돕는다.
‘PART 01. 나를 더 사랑하기 위해’에서는 16점의 그림을 통해 관계 속에서 나를 낮추고 상대에게만 맞추려고 하는 사람에게 다른 누구보다도 나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고 말한다. ‘PART 02. 가라앉는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에서는 얽히고설킨 문제 속에서 아파하는 사람을 위해 그 관계를 잘 풀어나갈 수 있는 14점의 그림을 선보인다. ‘PART 03. 슬픔을 잘 흘려보낸다는 것’에서는 아픔과 슬픔을 애써 부정하려는 사람에게 13점의 그림으로 슬픔에도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래야만 그 슬픔을 말끔히 흘려보내고 이겨 낼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마지막으로 ‘PART 04. 더 이상 사랑받지 못한다 해도’에서는 엉킨 관계에서 오는 힘듦과 아픔을 잘 딛고 일어서기 위한 12점의 그림 이야기를 들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