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일. 투표하고 지하철 3호선을 탔다. 경복궁역에 내려 서촌을 걸어 통과해 인왕산으로 향했다. 인왕산 중턱의 더숲 초소책방은 올라가다 아니면 내려오다 잠시 들를 곳이라고 나는 알았고, 남편은 최종 목적지로 알았다. 여름의 시작 같은 날, 건조하고 햇볕이 뜨거웠으므로 인왕산 정상이 아니라 나도 애초에 거기를 목표했다는 듯이 은근 슬쩍 초소카페에 멈추는 발길을 따랐다. <나 혼자 산다>, 파비앙의 여파를 조금 예상했으나 예상을 많이 넘었다. 우리가 음료를 주문하려고 줄 서있는 동안 딸은 앉을 자리를 찾아 몇 번을 돌았다. 음료를 받아 나오다가 이 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아래, 탁자도 없는 간이 소파가 운 좋게 얻어걸려 엉덩이를 걸칠 수 있었다. 출입구 앞이라 시원하게 산바람을 맞았다. 땀이 식었다. 더워도 찬 음료는 좀처럼 마시지 않는다. 냉한 몸 때문이라고 원인을 꼽고 싶지만 땀으로 온몸이 젖고 목이 많이 마를 때 마시는 뜨거운 커피는 추운 날에 뜨거운 컵을 손에 감싸 쥐고 마시는 커피만큼이나 맛있다.
더숲 초소책방에는 지구환경 관련 책들이 큐레이팅 되어 있다. 모든 책의 견본이 구비되어 있어 훑어보고 고를 수 있다. 뭐, 휴일이 아닌 평일에, 손님이 아무래도 적을 오전 시간에 가면야 그러고 싶은 마음이 들겠지만. 오전에 지하철을 타려고 신사역 쪽으로 걷다가 신사스퀘어 내 <카페꼼마&얀쿠브레>에 들렀다. 출판사 문학동네에서 만든 북카페라고, 9호점인지 10호점인지 그렇다. 광장같이 넓은 공간에 사방 벽을 꽉 채운 문학동네 책들. 자리 잡고 앉은 적은 없는데 여러 번 들어왔었다. 오늘은 남편에게 소개해 주려고. 아침 운동 나왔다가 딸에게 소개한 후 딸은 종종 와서 공부한다. 너무 넓으니 좀 휑한 느낌도 있는데 다음 주 여기서 하는 책 모임 때 어떠한지 느껴지겠다.
북카페… 책과 커피는 썩 잘 어울리는 한 쌍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딱 맞춤인 조합을 사업화한 북카페에 가면 책과 커피가 따로 논다는 마음이 든다. 둘 중 하나가 꼭 뒷전으로 밀려난다. 대개 책이 그렇다. 책은 그저 실내 인테리어 이거나 셀카의 배경이거나. 북카페에 가서 비치된 책을 진득하니 읽은 일이 없었다. 손닿는 모든 자리에 선물이 있는데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는데 그중 무엇을 골라야 할지 모르겠는 마음, 책은 한순간엔 한 권만 읽을 수 있으므로 그렇기에 들뜨기만 하고 우왕좌왕하는 마음. 그냥 가져간 내 책을 읽고…, 북카페의 책들은 또 배경이 된다. 북카페는 책에 관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나의 착각인가 한다. 커피를 마시면서 책을 마음대로 읽을 수 있다는 콘셉트의 북카페는 음료를 팔아 이익을 남기는 사업이고 북(Book)은 사실인즉 인테리어라는. 내게로 와서 나를 다른 세계로 이끌어가는 그 책은 ‘마음대로 읽을 수 있는 책들’ 중 하나가 아니지 않은가. 사람과 사람의 만남처럼 책 한 권과의 만남은 나의 자유가 아니라 떠밀림과 우연이 팔 할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책이야말로 마음대로 읽을 수 있을 때 가장 마음대로 읽기가 어려운 것 아닌가, …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