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전 척추 디스크 터진 사람의 이야기
디스크가 또 내 일상을 망가뜨렸다.
아플 때마다 반복하는 다짐.
'지금은 회복에 집중하고 괜찮아지면 열심히 관리해야지.'
하지만 다짐은 고통과 완전히 비례해서 몸이 괜찮아짐과 동시에 금세 증발된다.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던데, 나는 참으로 인간미 있게 요통의 지옥에 제 발로 들어섰다.
현재의 나는 앉지도, 걸을 수도 없을 정도로 심각한 수준에 있다.
아까 병원 가는 택시 안에서 문득 들었던 생각.
지금 이 고통을 저장해 두고 내가 허리 건강을 뒷전으로 미룰 때마다 재생해주고 싶다.
"야, 관리 한다며!"
때문에—고통 리플레잉이라는 것은 불가능하니— 기록을 해보려 한다.
하반신 마비가 오는 건가 싶은 이 감각도 언젠가 잊겠지만
후에 이 글을 읽고 작게나마 관리의 필요성을 떠올린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내 척추 디스크 질환의 역사는 이렇다.
1차 - 디스크 4,5번 파열 (2011)
: 추나요법 잘못 받아 디스크 터짐. 10대의 회복력으로 터진 디스크가 다시 스펀지처럼 흡수되어 금방 일상생활 재개. 이 당시에도 걷는 게 불가능했어서 병원 내에서 휠체어를 타고 다녔음. 추나요법은 잘 알아보고 가자. 사실 그냥 안 가는 걸 추천.
2차 - 디스크 4,5번 탈출 (2019)
: 이때도 지금처럼 디스크 탈출과 염증.. 취업 준비 동안 집에서 불편한 의자를 썼던 게 화근이었음. 도수치료, 견인치료, 물리치료, 프롤로주사, 체외충격파 등... 각종 치료를 받다가 회복이 덜 된 채로 인턴십 시작.
3차 - 디스크 4번 파열형 탈출 (2021)
: MRI 검사결과 19년에 비해 두 배 정도로 안 좋아짐. 양쪽 다 안 좋지만 특히 왼쪽 척추가 염증으로 많이 부어 신경계가 아예 막혔기 때문에 더 아픈 거라고 함.
이 외에도 (13년도 체육대회 준비로 무리, 17년도 실기대회 감독 후 응급실 이송 등) 자질구레하게 아파왔지만 큼직한 내용만 정리해본다.
어제 아침에 일어났는데 진한 기시감의 요통을 느꼈다.
"나 이 느낌 아는데..."
병원에 가려고 움직일수록 몸이 반으로 끊어져버릴 것 같은 고통.
역시나 MRI 결과는 최악이었다.
나에게 허리가 아프다는 건 신체적 고통 그 자체와 더불어,
당장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심리적 불안감을 준다.
공포에 가깝다. 죽고 싶어질 때도 있다.
그걸 아는 사람이 막 살다가 또 이렇게 됐다.
그런데 소름 돋게도 자책하는 마음 반대편에
웬 유사 종교 같은 희망이 피어오르더라는 것이다.
자전축이라도 있는 것 마냥 몸은 삐딱해 걷지조차 못하는 이 상황이,
두 다리로는 버틸 수 없어 난간을 잡지 않으면 안 되는 이 상황이,
식사를 하다가도 고꾸라질 것 같아 입에 밥을 욱여넣고 침대로 도피해야하는 이 상황이,
어쩌면 누구보다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는 동기가 되는 건 아닐까?
이건 신에게 부여받은 세 번째, 혹은 마지막 기회가 아닐까?
광적으로 긍정적인 이 마인드가 '퇴사'라는 선택지까지 고려하는 나를 지탱해주고 있다.
뭐랄까.. 전투적으로 건강해지고 싶어진다.
그래. 내일은 오늘보다 덜 아프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