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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낯선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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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min Jan 07. 2021

EP02 제주 - 어서 와, 게스트하우스는 처음이지?

고소한 식빵에 얹어지는 달걀 프라이 향기

혼자 하는 여행도 처음, 게스트하우스도 처음이었다. 그런 내게 좋은 숙소를 정하는 꿀팁? 그런 건 없었다. 나만의 기준을 세울 뿐!


그때의 내가 제일 중요시했던 건 갬-성, 무조건 느낌이었다. 막연히 '바다가 보이는 공간이면 좋겠다'며 '제주도 게스트하우스'를 검색한 순간, 이런 사진이 눈에 띄었다. 노을과 비양도가 통창 너머로 보이는 갬성 넘치는 게스트 하우스.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바로 예약을 했다.


느낌만 보고 고른 탓에 위치를 놓쳤다. 제주도립미술관에서 게하까진 버스로 2시간이 걸렸다...^^ 통창에서 보고자 했던 노을은 죽어라 뛰어갔던 해변가에서나 간신히 볼 수 있었다. 더군다나 이미 어두워진 후라 같이 묵는 사람들은 모두 저녁을 먹으러 간 뒤였다. (새로운 만남과 함께 협재 맛집을 뿌시겠단 내 목표도 함께 가버렸다...)


쓸쓸히 김치찌개를 먹고 돌아와 이번에야 말로 내 로망을 실현해 보겠다 다짐했다.

*로망 = 손님 중 한 분은 기타를 칠 줄 아시고, 한 분은 그에 맞춰 노래를 부르며, 맥주 한 캔씩 앞에 두고 모두가 진솔한 이야기를 하는 대충 요런 느낌!  


내 머릿속 게스트하우스 = 기타와 함께 복작복작



실제 게스트하우스 = 조용히 각자 할 일


(게스트하우스마다 분위기는 다르겠지만) 우리 게하는 각자 조용히 할 일을 하는 분위기였다. 아무도 서로에게 말을 걸지 않는 분위기에 조용히 창가에 가 앉았다. 로망은 포기하고 그냥 영화나 한 편 볼까 싶었다. 그 순간 슬쩍 사장님이 나타나셨다.


"제주도 막걸리 마셔본 적 있어요?"


'편의점에서 파는 막걸리가 아니다, 제조한 다음날 모두 소비해야 해서 제주에서만 맛볼 수 있다', 사장님은 듣기만 해도 솔깃한 정보를 쏟아내며 다가오셨다. '하핫, 그거 참 안 마셔볼 수 없게 만드는 멘트인걸요?' 각자 흩어져 할일을 하던 사람들의 눈이 (사장님보다는) 귀한 막걸리에 꽂혔다. 어색한 웃음과 함께 하나 둘 테이블로 모였다.


제주도로 여행 온 사연들을 나눴다. 입사 후 처음으로 장기휴가를 받아 제주도 한 바퀴를 자전거로 돌고 있다는 한 남성분과, 퇴사 후 짧게 여행을 왔다는 한 여성분. 그리고 세계 곳곳을 여행하다 제주도에 정착하셨다는 사장님까지. 한 문장으론 요약할 수 없는 갖가지 사연이 막걸리와 함께 삼켜졌다. 그렇다. 쏟아내기보단 속으로 삼키는 이야기들이었다. 나를 모르는 상대에게 부담되지 않을 정도로만 드러내고 나머진 속으로 삼켜내는 이야기.   


 '쉼'. 모두가 휴식을 위해 제주도를 찾았다. 인생의 전환점에서 제주도를 찾은 사람들, 깊은 이야기를 들어볼 순 없었지만 왜 제주를 찾았는지는 알 것 같았다. 나도 '두 번째 수능이 끝난 후, 새로운 도약을 앞두고 제주를 찾았다'라고 소개했던 듯하다. 아팠던 시간들은 모두 삼켜내고.


이야기는 짧게 줄이고, 사장님이 세계 여행에서 사 오셨다는 갖가지 악기 연주 타임이 이어졌다. 기타는 아니었지만, 싱잉볼의 울림으로 명상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무도 노래하지 않았지만 그 자리가 무척 흥겨웠다.




 

다음 날 아침, 보아뱀이 삼킨 코끼리 모양의 섬 '비양도'를 바라보며 먹는 아침은 꿀맛이었다. 고소한 식빵 굽는 냄새와 기름진 달걀 프라이 향기.


"안녕하세요"라는 간단한 아침인사 후 우린 모두 각자의 자리에 앉았다.  




덧붙임 1.

그렇게 제주도는 나에게 '쉼의 섬'이 되었다. 머리가 복잡할 때, 큰 결정을 앞두고 있을 때, 생각을 정리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올 때면 어김없이 제주도를 찾았다. 이때의 여행 이후로 5년 동안 10번 이상 더 방문했으니 너무 많이 쉰 건 아닌가 싶다:)


덧붙임 2.   

'혼자' 두 번째 제주도 게스트하우스에서

이 사진의 포인트 하나, 왕 큰 생일초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인지, 어떤 길을 걸어온 사람인지 잘 모르지만,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알 기회가 없겠지만! 오롯이 축하해줄 수 있는 마음들이 모인 왕 큰 생일초. 나는 저분의 이름도, 나이도, 사는 지역도 기억나지 않지만 저 순간 진심으로 축하해줬다는 기억만은 생생하다.  


포인트 둘, 주렁주렁 나무

흔적을 남기고 싶은 건 모든 동물의 욕망인가 보다. 나도 제주도 곳곳에 내 흔적을 남겼더랬다. 언제, 누구랑 왔고, 얼마나 좋았는지(사실 별 내용이 없다) 굳이 굳이 써서 매달아 놓는다. 아마 저 종이들의 마지막 문구는 대부분 "다음에 또 올게요!"였을 것이다. 희망과 소망을 담아 게스트하우스의 장식용 나무에 매단 이유는 그만큼 이 공간에서 맛본 행복이 크다는 거겠지?


포인트 셋, 스마일◡̈   

너무 공유하고 싶은 두 분의 환한 미소...!! 그리고 저 사진을 입 찢어져라 웃으며 찍고 있을 내 미소.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 소중한 이유는 내 미소 뒤에 숨겨진 그늘을 고민 없이 드러낼 수도, 감쪽같이 숨길 수도 있기 때문이지.



다음 에피소드,

EP03. 우박이 떨어지던 돌문화공원

제주도에서 돌문화공원 가보신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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