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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 Jul 15. 2022

시간과 선택 - <아사코><드라이브 마이카>


*영화 내용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2021년 최고의 화제작, <드라이브 마이카>와 처음으로 칸 영화제에 초청되면서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인지도를 넓히게 해 준 <아사코> 두 작품을 감상했습니다. 두 작품은 같은 감독의 작품이지만 분명하게 결이 다른 영화입니다. <드라이브 마이카>가 '이미 지나가버린 선택할 수 없는 일들'에 관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면 <아사코>는 철저하게 '나의 선택에 따라 바뀌는 일들'에 관해 다루고 있습니다. 이 두 영화의 상반된 차이가 아주 재미있지 않나요?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이 '선택'이라는 주제와 '시간'을 적절히 믹스했습니다.




    먼저 <드라이브 마이카>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여자 없는 남자들>이라는 단편 소설 모음집을 기반으로 한 영화입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그대로 가져온 것이 아닌 그중의 한 단편인 '드라이브 마이카'를 메인으로 하돼 다른 단편의 모티프를 조금씩 가져와서 감독의 시선으로 재 구성한, 새로운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주인공 가후쿠의 직업은 연출가로, 안톤 체호프의 유명한 희곡 <바냐 아저씨>라는 연극을 등장시킵니다. (안톤 체호프에 대한 언급은 아사코에서도 아주 짧은 장면으로 나오기도 합니다.)


    영화에서 주인공 가후쿠와 그가 연출을 하러 상주 예술가로 가게 된 곳에서 고용해 준 운전사 미사키는 비슷한 결의 슬픔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내가 그때 그러지 않았더라면-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몰라'라는 '어쩌면-'에서 오는 불안과 자기혐오의 상처입니다. 인간은 언어라는 수단으로 수많은 이야기와, 감정과, 생각을 공유하지만 이 영화에서 '언어'란 가장 비밀스러운 존재입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길 원하고, 어떤 사람은 물어보기 전까지 다른 이들의 속마음을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어떠한 마음들은 누군가 건드려 꺼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법이죠. 이 영화에서 그러한 상처들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시간이 지나버려 더 이상 해결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가후쿠와 미사키 모두 소중한 사람들의 죽음으로, 이제 어떠한 사람도 그 둘의 물음에 답해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지나가버린 시간이 그들에게 가장 큰 장벽이었던 셈입니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꼽을 수 있는 감동적인 장면은 소냐 역을 맡은 유나 배우가 극 중 바냐 아저씨를 연기하는 가후쿠를 뒤에서 끌어안고 수화로 표현하는 대사입니다. "바냐 아저씨, 우리 살아가도록 해요. 길고 긴 낮과 긴긴밤의 연속을 살아가는 거예요. 운명이 가져다주는 시련을 참고 견디며 마음의 평화가 없더라도, 지금 이 순간에도 나이 든 후에도 다른 사람을 위해서 일하도록 해요. 그리고 언젠가 마지막이 오면 얌전히 죽는 거예요". 감독이 관객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 영화를 관통하는 대사입니다. 하마구치 류스케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마도 이런 게 아니었을까요? 모두들 그렇게 마음 한편에 있는 눈물과, 고통과, 슬픔과, 좌절과, 상처와, 답할 수 없는 문제와, 응어리와 함께 살아가세요. 그저 자신의 할 일을 하고 살아가세요. 소냐의 대사처럼요.




    하지만 <드라이브 마이카>와 달리 <아사코>에서는 철저히 선택으로 비롯된 문제와 충돌하게 됩니다.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이 영화의 줄거리를 설명합니다만, 아직 보지 않은 분이 계시다면 포스터도 예고편도 보지 않고 이 영화를 즐기시기를 바랍니다.


    이 영화는 20여 분간 아사코의 과거 이야기를 끝내고 나서 비로소 '아사코 1 & 2'를 띄우며 영화가 시작됩니다. 프롤로그라고 할 수 있는 20분간의 이야기에서- 아사코는 운명적으로 사귀게 된 남자 친구 바쿠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갑자기 바쿠는 '늦어도 반드시 돌아온다'는 말만 남기고 어느 날 감감무소식, 영원히 돌아오지 않습니다. 이후 아사코는 도쿄에서 자신의 옛 남자 친구 바쿠와 너무나도 닮은 료헤이를 만나게 되고 그는 아사코의 새로운 남자 친구가 되어 결혼까지 생각하는 관계가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반드시 돌아온다'던 바쿠가 료헤이와 친구들이 같이 있는 자리에 진짜로 돌아오고 아사코는 그 자리에서 그의 손을 붙잡고 모든 연락을 끊은 채 바쿠와 함께 떠나버립니다. 이내 아사코는 바쿠가 료헤이와 다름을 깨닫고 료헤이에게 돌아가지만 료헤이는 아사코를 평생 믿지 못하게 되는, 철저히 아사코의 선택에 의해 벌어지는 일들에 관한 영화입니다.


    어쩌면 아사코 1&2 바쿠/료헤이로 나눌   있겠습니다만, 아사코의 성장 스토리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추억 속의 남자 바쿠를 사랑하고 미련이 남았던 아사코 1/진짜로 사랑하는 사람은 료헤이임을 깨달은 아사코 2라고 나누는 것이 정확하겠죠.  영화에서 아사코는 상당히 말이 없습니다. 제대로 설명을  주지도 않죠. <드라이브 마이카>에서 많은 말들이 나와도 마음이 전해지지 않는 점에 반해 <아사코>에서는 아사코가 말을 제대로 하지 않아 어긋나 버린 상황으로 흘러갑니다. 바쿠와 떠나며 아사코는 료헤이에게 자신의 모든 물건을 버리고 고양이와 함께 원래 계획했던 오사카로 가라는 말을 전할  어떠한 이유도 설명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아사코에게는 바쿠와 끝을  시간이 필요했던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사코가 바쿠와 떠나는 선택,  과정 속에서 이미 료헤이는 너무나도  상처를 받았고 다시는 아사코를 믿을  없게 되어 버렸죠. 그래서 영화 끝에서 료헤이와 아사코가 불어나버린 강물을 바라보며 하는 대사가 판이하게 달라집니다. 료헤이는 강물을 보며 '더럽다'라고 하고 아사코는 '아름답다'라고 합니다. 정확한 일본어 대사로는 'きれい키레이'라고 하는데 키레이는 '아름답다' 뜻과 동시에 '깨끗하다'라는 뜻이 습니다. 어쩌면 료헤이가 아사코를 더럽게 생각하는 반면 아사코는 료헤이에 대한 자신의 마음이 분명하다, 그것이 '깨끗하다'라는 의미가 아닐까요? 같은 시간이 흘렀지만 결국 그들의 마음은 다른 관계에 정착해버렸습니다.




     작품의 공통점은,  러닝타임과 함께 영화의 호흡이 무척이나 길다는 점입니다. 저는 느린 호흡으로 천천히 그들을 들여다보고, 서서히 캐릭터들을 깨닫게 됩니다. <드라이브 마이카>에서는 40분이나, <아사코>에서는 20분이나  모든 과정을 위한  프롤로그를 소모합니다. 시간을 들여 관객을 극으로 끌고 있습니다. 연달아 감상해서 그런지,  편에서 다루는 '선택' 차이가 매우 흥미롭게 느껴졌습니다. 극에서 시간은 그저 흘러갈  아무런 일도 하지 않습니다. <드라이브 마이카>에서는 흘러가는 시간을 딛고 일어나는 선택과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라는 물음에 대한 해답을 보여주었고, <아사코>에서는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선택으로 달라진 미래와 마음을 비추었을 뿐이죠. <아사코>에서 뒤틀린 미래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면 <드라이브 마이카>에서 지나간 일들은 묻고 우리가   있는 것들을 하며 살아가야지 하는 해답을 전해  느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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