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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 Feb 09. 2020

내 재능이 접시에 담긴 물이라는 것을 깨닫고

예체능과 선천적 재능



내 인생을 굵직하게 토막 내 나누어 생각해보자면 그래도 나는 항상 미술과 함께했던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렇다, 예체능의 '재주 예(藝)'가 아주 특별하게 필요한 분야 말이다. '재주 예'라는 한자의 기원을 찾아보면 艹 풀 초, 埶 심을 예, 云 이룰 운의 글자를 합한 것으로, 대충 해석하자면 풀(심어진 싹)을 틔우는 능력이라고 한다. 한자 풀이에서 이미 이 잔인한 세계는 영화의 30초 예고편처럼 주의를 주고 있다. 예체능은 '능력을 피워내는 것'이라고. 하지만 예고편의 장점이자 단점이 무엇인가? 결말이 빠져있다는 사실이다. 피워내는 것은 나의 선택이지만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때문에 나를 포함한 어떤 이들은 멋모르고 불시에 이 살벌한 전장에 뛰어들게 되는 일이 발생하고 만 것이다.




그래도 미술과 함께했던 나의 인생을 생각해보면, 그 시초는 유치원 때부터라고 할 수 있다. 지금과 다르게 나는 아주 소심하고 제 생각을 말로 잘 표현하지 못하는 그런 어린이였다. 그런 나에게 세상을 향해 소리칠 수 있는 창구가 아마 그림이었던 것 같다. 그림은 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림은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가진 크레파스와 12색 지구 색연필로 열심히 칠해서 보여주면, 어른들은 그 그림을 골똘히 보며 내가 그린 게 무엇인지 생각했다. 그리고 운 좋게도 나는 그림을 보면 이걸 그린 거구나, 이걸 했었구나, 하고 어른들이 알아챌 수 있게 그릴 수 있는 유치원 생이었다. 그래서 아마 어른들은 내가 미술에 재능이 있는 아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내가 그린 그림을 모아서 유치원 졸업 때 책으로 받게되었다. 그리고 내 세계는 유치원에 이어 곧 입학하게 된 초등학교로 조금 커졌다. 초등학교 때에도 반에서는 그래도 내가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었고, 또 여느 초등학생들이 항상 했던 포스터 그리기나 과학상상화 상장을 받았을 때까지만 해도 나는 아직 더 큰 세계를 알기에 너무 단순한 어린이였다. 동네 미술학원을 취미로 다니며 그저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지속하려 했을 뿐.



중학생이 되어서야, 나는 그 희미한 세계의 안을 조금이나마 들여다볼 수 있었다. 취미로 다니던 동네 미술학원에서 친했던 언니가 있었는데, 그 언니가 예고를 준비한다며 다니던 미술 학원을 옮겼다가 놀러 와 자신이 요즘 그리는 그림이라며, 입시 미술을 보여주었을 때, 중학생이었던 나는 너무나도 놀랐다. 단 시간 안에 언니의 그림실력이 확연히 늘어있었기 때문에. 그때까지도 나는 내 인생을 어디로 굴려야 할지 갈팡질팡하고 있었으며, 내 잔재주를 나름 믿고 있었기 때문에 나도 배우면 금방 잘할 수 있게 되겠지? 하는 생각들을 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안일하게 흘러 내 미술 인생은 대학교까지 굴러들어 왔다. 사실 나는 어쩌면 최근까지도 마음속으로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 같다. 세상에는 나보다 뛰어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나도 저 정도로 열심히 했으면 더 잘할 수 있어'라는 생각을 해가며. 하지만 갑자기 벼락을 맞은 것처럼 나는 인정했다. 내 재능이 접시에 담긴 물이라는 것을.




윤지운의 만화 '눈부시도록'에서 내게 제일 인상적인 것은 이 만화의 내용도 결말도 아닌 여자 주인공의 동생이 유학을 해가며 전공하던 바이올린을 그만두며 가족들에게 남긴 편지 전문이다. 그 편지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재능이라는 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양초 같은 거야. 누구나 가지고는 있지만 길이도 다르고 굵기도 달라. 불을 붙였을 때 밝게 빛나는 건 모두가 같지만 언제까지 밝을 수 있을지는 꺼질 때가 되어서야 알 수가 있어. 누군가의 것은 생일 케이크의 초처럼 가늘고 연약하고 누군가의 것은 교회에서 쓰는 초처럼 평생 동안 빛나.” 그렇다, 나는 이제 온전히 깨달아버린 것이다. 불공평한 세상의 섭리를. 종이를 생각해본다. 누군가의 재능이 새하얀 종이 라거나 화려하게 빛나는 반짝이 종이 라던지, 얇더라도 잔잔한 패턴이 가득한 종이라면 아마도 나는 찢어진 종이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겉모양을 그럴듯하게 보이게 하려 테이핑을 얼기설기 해 놓은 그런 종이. 그마저도 테이프 끝은 벗겨져 간다. 내 선택의 시초에서, 세상은 나에게 30초짜리 예고편 하나를 달랑 던져줬고 나는 이제야 내 설정값을 깨달은 것이다. 이 정도가, 내가 가진 종이의 최선이구나. 내가 A4라면, 저 애는 전지 정도는 되겠구나. 갑자기 현실에 부딪혀 멀미가 났다.



어릴 적 친구랑 어깨를 부딪히며 장난을 쳤었다. 까르르 거리며 웃다가 신발주머니를 휘두르며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을 계속 그러다 보니 자연히 팔뚝에 커다란 멍이 들었다. 내가 장난으로 친구랑 어깨를 부딪히는 일, 그것은 일시적으로 나에게 커다란 충격은 아니었지만 사람에게는 누적치라는 게 있어서 다음날 습관적으로 친구랑 어깨를 부딪혔을 때 순간 나는 팔이 저릿한 고통을 느꼈다. 그때에는 알 수 없지만 다음날 불시에 보이는 푸르른 자국. 모세혈관이 터진 흔적. 내 재능의 한계를 알아차린 것은 내게 멍을 발견하는 것과 같았다. 그래서 나는 그 깨달음이 불시에 나를 찾아온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세상이 나에게 스쳐 지나가며 남긴 흔적이 내 피부 위로 울긋불긋하게 올라온 걸 나는 이제 발견했을 뿐이다. 어쩌면 재능은 컵에 담긴 물일까, 냄비에 담긴 국 일까, 수조에 담긴 수돗물 일까? 그래, 어쩌면 내가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팽이버섯과 두부와 함께 같이 끓어버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처럼 현실을 깨달았다면, 그다음에는 평균적으로 두 개의 선택지가 있다. 1. 현실을 애써 외면한다. 2. 정확히 인지한다. 그리고 나는 아주 덤덤하게 후자를 선택했다. 단순하게 생각하자. 내가 찢어진 종이라면, 다시 찢어진 부분에 테이프를 붙이면 된다. 조각보처럼. 내가 좋아하는 콜라주처럼 이것저것 붙여놔도 나름 멋이 있겠지. 멍이 들 것을 알면서 다시 어깨를 부딪히면 된다. 멍은 며칠 뒤에 사라지고 사람은 그렇게 나약한 존재가 아니니까. 내가 냄비에 끓어가는 물이라면, 난 그저 괜찮은 저녁 메뉴가 되기 위하여 채소들과 함께 끓어가면 그만이다. 그냥 그러면 된다. 시작할 때 말했던 세상이 30초 예고편의 장점이자 단점은 결말을 알 수 없는 것이기에. 내가 동물원 원숭이에게 던져지는 바나나일지, 앤디 워홀의 바나나일지 어떻게 알아?




마지막으로, 이현세 화백의 '천재를 이기는 법'이라는 글을 발췌한다.


"살다 보면 꼭 한 번은 재수가 좋든지 나쁘든지 천재를 만나게 된다. 대다수 우리들은 이 천재와 경쟁하다가 상처투성이가 되든지, 아니면 자신의 길을 포기하게 된다.

그리고 평생 주눅 들어 살든지, 아니면 자신의 취미나 재능과는 상관없는 직업을 가지고 평생 못 가본 길에 대해서 동경하며 산다. 이처럼  자신의 분야에서 추월할 수 없는 천재를 만난다는 것은 끔찍하고 잔인한 일이다.

어릴 때 동네에서 그림에 대한 신동이 되고, 학교에서 만화에 대한 재능을 인정받아 만화계에 입문해서 동료들을 만났을 때, 내 재능은 도토리 키재기라는 걸 알았다. 그러다 그중에 한두 명의 천재를 만났다. 나는 불면증에 시달릴 정도로 매일매일 날밤을 새우다시피 그림을 그리며 살았다.

나는 타고난 재능에 대해 원망도 해보고 이를 악물고 그 친구와 경쟁도 해봤지만 시간이 갈수록 내 상처만 커져갔다. 만화에 대한 흥미가 없어지고 작가가 된다는 생각은 점점 멀어졌다. 내게도 주눅이 들고 상처 입은 마음으로 현실과 타협해서 사회로 나가야 될 시간이 왔다. 그러나 나는 만화에 미쳐 있었다.

새 학기가 열리면 이 천재들과 싸워서 이기는 방법을 학생들에게 꼭 강의한다. 천재들과 절대로 정면승부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천재를 만나면 먼저 보내주는 것이 상책이다. 그러면 상처 입을 필요가 없다. 작가의 길은 장거리 마라톤이지 단거리 승부가 아니다. 천재들은 항상 먼저 가기 마련이고 먼저 가서 뒤돌아보면 세상살이가 시시한 법이고. 그리고 어느 날 신의 벽을 만나버린다.

이처럼 천재를 먼저 보내 놓고 하루하루를 꾸준히 걷다 보면 어느 날 멈춰버린 그 천재를 추월해서 앞서가는 자신을 보게 된다. 산다는 긴긴 세월에 걸쳐하는 장거리 승부이지 절대로 단거리 승부가 아니다.

매일매일 스케치북을 들고 10장의 크로키를 하면 된다. 1년이면 3500장을 그리게 되고 10년이면 3만 5000장의 포즈를 잡게 된다. 그 속에는 온갖 인간의 자세와 패션과 풍경이 있다. 한마디로 이 세상에서 그려보지 않은 것이 거의 없는 것이다. 자신만의 경험한 가장 진솔한 이야기는 모두에게 감동을 준다.

만화가 이두호 선생은 "만화가는 엉덩이로 그린다"라고 후배들에게 조언한다. 이 말은 언제나 내게 감동을 준다. 평생을 작가로 생활하려면 지치지 않는 집중력과 지구력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가끔 지구력 있는 천재도 있다. 그런 천재는 존재하는 것만으로 축복이고 보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그런 천재들은 너무나 많은 즐거움과 혜택을 우리에게 주고 우리들의 갈 길을 제시해준다. 나는 그런 천재들과 동시대를 산다는 것만 해도 가슴 벅차게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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