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만에 J 교수님을 뵙는 날이다. 6개월에 한 번씩이었던 신장내과 외래진료가 1년에 한 번으로 바뀐 것이 언제부터였을까. 이식대기 10년을 넘어서면서부터일까. 마냥 이식을 기다리기만 하는 입장에서 사실 교수님을 6개월에 한 번씩 만나는 일은 크게 의미가 있는 일은 아니었다. 단지 반가운 얼굴을 자주 보는 일이었을 뿐. 그런 외래진료가 1년에 한 번으로 바뀌었을 때, 조금은 섭섭하기도 했다.
J 교수님과는 2012년에 처음 만났다. 나의 담당교수님이었던 Y 교수님의 제자와 환자로 그렇게 만났다. 처음 병동에 입원했을 때는 20대의 젊은 여의사인 은영 선생님이 주치의였고, J 교수님은 당시에도 조교수 자격으로 Y 교수님 바로 뒤에 회진 최정예 멤버로 나타나곤 하셨다. 둥글둥글한 인상에 얼핏 보아도 선한 눈매. 기분 좋은 미소를 가진 그. Y 교수님은 내가 서른이 되지 못했을 무렵, J 교수님에게 나를 보내셨다. 이제 병원의 뇌사자 관리를 맡고 있는 J 교수가 앞으로 실세가 될 것이고, 실력도 출중하니까 젊은 J 교수님의 환자로 사는 것이 나에게 훨씬 도움이 되리라는 말씀과 함께. 정말 그 말씀대로 J 교수님은 혼자 미국연수를 2년이나 다녀오셨다. 그 큰 병원에서 가장 주목받는 젊은 의사이자 연구자답게, 미국의 큰 병원에서 이식수술을 수도 없이 참관하고 선진 이식기술과 연구에 대해 공부하고 돌아오셨다. J 교수님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또 잠깐 Y 교수님을 몇 번 뵈며 외래 진료를 보기도 했었다.
참 오랜 인연인데, 어쩌면 앞으로도 계속 만나야 할 인연이고하다 보니 J 교수님에 대해서는 글로 옮기기가 늘 조심스러웠다. 그렇다 보니 나의 첫 번째 에세이 <서른 살이 되지 못할 줄 알았습니다>에도 J 교수님에 대한 이야기는 한 줄도 없다. 그럼에도 나는 J 교수님께 나의 책을 선물로 드렸다.
책을 건네드리는 내게, 대번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하시더니, 펜 꽂이에서 펜을 마구 찾으시는 교수님. 사인을 받으려고 그렇게 서두르시는 거였다.
"부끄럽지만, 제가 사인을 해 가지고 왔어요, 교수님."
주제에 사인이 있다. 교수님은 사인이 되어 있다는 이야기에 환한 미소를 보이시며, 손으로 나의 책 표지를 따스하게 짚으셨다.
"제가 꼭꼭 읽어보겠습니다."
"정연님 이제 이식 대기하신 지 10년 정도 되셨지요?"
"교수님, 제가 2012년부터 대기했습니다."
"앗, 10년이 훨씬 넘으셨네요?
우리 다음에는 이식으로 만나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환자가 엄청 많아서 30분의 진료 지연이 되는 상황. 환자가 그렇게 많다 보니 나의 대기기간을 조금 헷갈리실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만나온 시간이 햇수로 10년을 넘었다는 것은 기억을 하시다니. 이 정도면 정말 기억을 잘해주시는 것이고, 다음 만남은 이식으로 인한 것이었으면 좋겠다는 말씀이 기분이 좋고 힘이 되었다.
정말로 다음에 만날 때는, 이식수술 때문에 만나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내년 7월 이전에 교수님을 뵐 수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