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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연 Aug 11. 2024

쌍둥이는 정연이모를 주목해.

쌍둥이 중 누나인 말그미. 정연이모의 선물을 입고.





기차는 부드럽게 오송역에 진입하였다.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역 대합실로 나가서, 나무가 이야기한 호두과자집을 찾았다. 기차에서 내리기 한참 전에 나무에게서 메시지가 왔었는데, 복순도가 맞은편에 호두과자집이 있다고 한다. 그곳에서 삼천 원짜리 호두과자 한 봉지만 사다 달라고 하는 부탁이 너무 귀여웠다.

나무는 172cm의 멋진 여성이다. 처음 만난 십 대 때부터 대인 지금까지 한결같이 귀엽고 사랑스럽다. 키는 무려 3cm가 자랐다.  


나무와는 모든 과정이 특별했다. 임신을 준비하던 시기에도 우리는 오창 호수공원에 함께 누워 이런저런 속 깊은 이야기들을 나누었고, 나무는 쌍둥이를 임신하자마자 그 기쁜 소식을 제일 먼저 내게 전해주었다. 안정기를 거쳐 나무의 배가 불러왔을 즈음, 우리는 또 만났다. 함부로 건들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동그랗고 귀한 배였다. 그런데도 나무는 너무도 당연한 듯이 만져보아도 된다고 해주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임산부의 배를 만져보았다. 배에 손을 대고 아이들과 교감을 했다. 그 속에서 자라고 있던 두 아이를, 디어 만다!


나무의 차에 올라탔는데, 카시트가 앞 좌석과 등을 맞대고 있었다.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목이 꺾이지 않게 하기 위한 방책이었다. 매체에서 보던 카시트와 반대여서 재미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나무의 얼굴은 정말 환했다. 이들의 얼굴은 당장 볼 수 없었지만, 지금 내 등뒤에 꼬물거리는 두 아이가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한참 동안이나 이모를 기다리느라 고생했을 아이들.

나무가 부탁한 호두과자를 내밀었다. 얼른 먹어보라고 했는데, 알고 봤더니 나무의 남편인 '나의 김서방'이 부탁한 것이란다. 요즘 나무와 김서방은 둘이 열심히 육아 중이다. 집에 있는 김서방이 이 호두과자가 먹고 싶은데, 누나한테 사다 달라고 하랬단다.

김서방과도 벌써 인연을 맺은 지 7년이 됐다. 나를 편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서 기쁘고 귀여웠다.

집에 있는 김서방을 생각해서, 혹시 몰라 호두과자 두 봉지를 사길 잘했다. 솔직히 천안에서 사 먹은 호두과자보다 훠얼씬 맛있는 오송역 호두과자를 나눠먹으며 재잘재잘 소녀들처럼 이야기를 나누며 나무네 집으로 달렸다.


지하주차장에서 나무가 카시트에 안겨있던 아이들을 유모차로 옮겨 실었다. SNS로 아이들의 사진과 영상은 자주 보았지만, 실제로 보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사진과 영상보다도 훨씬 어여쁘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이었다. 딸인 말그미와 아들인 발그미, 이모 정연. 우리 세 사람만 남겨두고 나무가 주차를 하러 가자, 기다렸다는 듯 말그미가 울어대고 발그미는 나의 손을 조심스레 거절했다. 발을 동동. 엄마 곧 올 거라고 말그미를 달랬다. 정말 미안했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낯선 얼굴 하고 남겨져서 얼마나 놀라고 서러웠을꼬. 게다가 그 낯선 얼굴이 제 팔다리를 꼭꼭 쥐었다. 이건 울지 않고는 못 배기지.


낯선 나의 존재 탓인지 말그미는 계속 엄마 껌딱지를 자처하고, 발그미는 내게로 기어 와서는 내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척 얹었다. 그리고 자꾸만 나를 향해서 웃었다. 그미 덕분에 분위기가 조금씩 풀어졌다. 발그미가 계속 나를 향해 기어 오고, 나를 향해 생글생글 웃자 나도 용기가 나서 발그미를 번쩍 안아주었다. 나무는 투석하는 팔에 무리가 갈까 봐 대번 걱정을 했지만, 9개월짜리 꼬마 신사의 9kg의 체중은 내게 그리 무리가 되지 않아서 신기했다. 발그미를 번쩍 들었더니 녀석은 내 허벅다리 위에 꼿꼿하게 서서 방방 뛰었다. 나를 좋아하는 것이 여실히 드러나는 표정. 귀여운 그 아이를 품에 끌어안았더니, 찹쌀떡 같은 작은 얼굴이 내 볼에 닿는다. 촉촉하다. 이 볼 저 볼 모든 볼에 발그미의 촉촉한 타액으로 범벅이 됐다. 달팽이 크림처럼 쫀쫀하고 향긋한 타액을 나는 닦아내지 않고 톡톡 두들겨서 피부에 흡수시켰다. 나무에게 발그미표 달팽이 크림을 발랐노라 자랑도 했다. 나무가 또 환하게 웃는다.


이모는 나의 것. 이모 멱살잡고 튀어, 발그미. 이모와 함께라면 언제나 발그레한 미소! 발그미!



나와 발그미가 신나게 놀고 볼을 부비는 모습을 보더니, 이제야 말그미가 나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제 엄마를 뒤로하고 내게로 기어 오는 말그미를 건드렸더니, 또 살짝 울음이 터졌다. 내가 만지는 건 되지만, 네가 만지는 건 안돼. 아주 고고한 아가씨 말그미.

사실 아이들에게 잘 웃어주는 어른이긴 하지만, 아이들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정말 예쁘게 생긴 아이가, 게다가 내 동생 나무를 엄마로 둔  아이가 이러니 '어디 네 마음껏 고고하게 굴고 이모를 외면해 보아. 그래도 이모는 괜찮아. 언제 까지든 기다려줄게'하는 마음이 되었다. 뾰족 정연이 이토록 너그러워질 수  있다니.

그저 손을 얌전히 두고, 말그미를 기다려주었더니 공주님이 또 금방 내게로 기어 온다. 도 만지고, 팔도 만져보더니 이제는 안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다. 안아주었더니 이모의 얼굴도 만지고, 이모 안경도 벗겨보려 하는 귀여운 장난꾸러기.


이제는 이모만 바라볼거야.

  

그저 말그미와 발그미의 눈높이에서 함께 놀았다. 두 아이 모두 정연이모에게 푹 빠졌다고, 이 엄마처럼 이모를 사랑하는가 보다고 옆에서 나무가 말해주어서 더 신이 났다. 이들은 많은 것을 빨아대고, 던졌다. 아이, 웃겨라. 제 실컷 논 아이들은 저녁 식사를 할 시간. 저녁 식사를 하느라 각자 의자에 쏙쏙 들어가서도, 둘은 이모만 바라보았다. 이건 뭐 슈퍼스타도 이런 주목을 끌지는 못할 게다. 정연이모는 말그미와 발그미의 최애가 되고 싶어!


(좌) 식사후 발그미가 먼저 샤워하는 중에 정연이모와 놀고 있는 말그미. 이제는 이모만 있으면 눈물 뚝이다. (우) 상표 찾아서 빠는 것을 무척 좋아하는 말그미는, 또 상표 찾으러

이유식 식사를 마친 두 아가는, 차례대로 아빠 김서방에 의해 씻김을 당하고 이모랑 찐하게 인사를 하고 방으로 자러 들어갔다. 그리고 난 조용히 짐을 챙겨 나무네 집을 나섰다. 김서방의 배려로 나무와 나는 단둘만의 저녁식사를 할 수 있었다.

그래도 다정한 김서방 덕분에 자주 친구들과 시간을 보낸다는 나무. 그러나 이토록 마음 편하게 이야기 나누며 맛있는 음식을 즐기는 일은 누리기 힘든 귀한 시간이란다. 나무와 정말 속 깊은 이야기들을 많이 나누었다. 나무는 어린 동생임에도, 늘 내가 마음 편히 속 이야기를 터놓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소중한 친구다.


이번에 나무네 집에 갔을 때, 식탁에 내 책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사인을 위한 펜도 두어 자루 가지런히 놓아둔 나무. 사인을 하는 나를 보며, 나무는 눈물을 터뜨렸다. 너무 감격스럽고 행복하다는 나무는, 내게 말했다.

"얼마나 힘든 시간들을 거쳐 언니가 단단해졌는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언니 책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어. 못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의 차이를 절히 느끼며 살아오다가, 결국 그것을 극복한 언니를 마주한 거야.

언니는 인생에 밟아야 하는 단계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 인생에는 그런 순서 같은 것이 없어."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는데도, 계속 우정이 변함없을 수 있는 것은 순전히 나무가 마음속에서 나를 덜어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무는 너무 멋진 저녁 식사와 너무 멋진 시간을 내게 만들어주었다.

나무의 소원이  이루어졌다. 소원에는 세가지 조건이 있다. 첫번째, 사랑하는 사람일 것. 두번째 인당 ㅇㅇ만원의 비싼 가격의 식사여야 할 것. 세번째, 주어도 아깝지 않은 사람이어야 한다. 사실 나무가 생각하는 비싼 식사의 기준에는 좀 못 미치는 가격이었다고 하는데, 정연은 태어나 처음 먹어본 고급 식당의 새로운 메뉴들이었다. 그리고 내가 나무의 '주어도 아깝지 않은 사랑하는 이'라는 사실에 울컥했다.



한 아이를 낳아서 상식적인 어른으로 길러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고 있다. 정말 몰상식한 사람들을 많이 마주게 되는데, 그들의 부모가 그들을 상식적인 어른으로 길러내기 위해 노력을 안 한 것은 아니겠지만 때론 엉망진창인 결과물들을 만나기도 하고, 성숙하고 상식적인 어른을 길낼 수 있는 능력이 없는데 부모가 된 자들을 만나기도 한다.

나는 자신이 없다. 나 자신도 여전히 미숙하고, 때로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갈팡질팡할 때가 있다. 이런 내가 어떻게 한 아이를 온전한 어른으로 길러낼 수 있을까. 나조차도 온전한 어른이 되지 못하는데. 그래서 나는 이번생에 부모 되기를 포기했다. 더는 세상에 악을 만들지 않을 생각이다. 그저 나 하나를 단속하고 살아가는 일에 열중하, 온전한 어른을 길러낼 능력이 충분한 진진과 나무 같은 이들에게 기생하여 예쁜 아이들이 자라나는 모습을 함께 보며, 내가 가진 좋은 영향을 그 아이들에게 전하는 멋진 이모로 살아갈 획이다.


자꾸 눈앞에 아른거리는 애틋한 존재가 또 둘,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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