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달보름 Mar 27. 2022

끝이 아닌 시작이라는 공포

5주차 영화 <십개월의 미래> by. 보름

출산은 끝이 아닌 시작이기에 그것은 공포다

이 영화를 보고 공감하지 않을 ‘엄마’가 있을까? 나라에서는 출생률이 떨어진다고 독서모임이 사교 모임이니 성비 맞춰서 하는 모임을 지원한다는 정책까지 은밀하게 펼치고 있다는데, 과연 그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은 이 영화를 보고 여성에 대해 이해나 하고 만든 정책일까? 영화 <십개월의 미래>는 공포 그 자체다. 어떤 공포냐면, 미래의 친한 언니가 ‘내가 없어지는 기분’이라고 설명하며 달리는 차 안에서 시체처럼 얼굴을 꺾던 그 장면. 컴컴한 극장에서 혼자 영화를 보던 나를 소스라치게 놀라게 했던 그 장면과 같은 공포다.

영화 속 대사는 다방면으로 나를 빡치게 하는데, 빡치게 하는 이유는 내가 살면서 한 두 번 들어봤던 말이기 때문이다. 왓챠에 있던 평 중에 또 하나가 나를 열받게 한다. ‘감독이 인터넷에 있는 글을 짜깁기 해서 쓴 시나리오’라더라. 와 진짜 빡친다. 그에게 물어보고 싶다. ‘당신은 임신과 출산을 겪었습니까?’ 그래 뭐, 내가 취업하려 했던 7년 전과 지금은 상당히 많이 달라졌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한참 사내강사 취업을 위해 일자리를 알아보단 2014~15년도에는 면접만 갔다 하면 ‘결혼계획’에 대해 꼬치꼬치 묻곤 했다. 더 환장할 노릇은 그 질문을 들을 때 마다 ‘남자친구가 있어서요, 곧 결혼할지도 몰라요. 죄송합니다.’라고 빙신같이 말했던 내 자신이다. 대체 뭐가 미안하고, 뭐가 그렇게 죄송했을까?덕분에 나는 프리랜서로 경력을 시작했고, 줄줄이 출산한 아들과 딸 육아로 회사에 들어갈 틈도 없이 육아와 일을 병행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영화는 공포다. 미래를 둘러싼 불합리한 제도와 ‘왜 나를 나쁜 사람 만드냐’며 되려 따지는 회사 사장새끼같은 사람도 공포지만, 영화에서 표현되는 고장 임신 과정 중 심리쪽만 표현됐기에 그 외의 일 역시 공포다. 그 밖에 어떤 일이 일어나냐 묻는다면, 우리는 성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것이다. 그럴 땐 <툴리>를 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임신과 출산은 여성의 몸에서 일어나는 모든 변화와 미치게 날뛰는 호르몬으로 왔다갔다 하는 기분, 거기에 엎친데 덮친격으로 나를 돌아버리게 하는 주변 환경과 사람들이 삼위일체로 여성을 옥죄인다.

더 환장할 노릇은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임신 출산 때도 회사에 남던 여성들은 아이들이 초등학교 1학년이 되면 퇴사한다. 예전 김미경 강사가 2010년도 쯤에 했던 말이 떠오른다. 워킹맘에게 세 번의 퇴사 위기가 찾아오며, 우리는 그것을 ‘견뎌야’한다고. 그랬다. 2010년은 우리가 견뎌야 하는 시기였고, 그것을 묵묵히 받아드려야 하는 시기였다. 그런데 지금은? 이제 왜 견뎌야 하는지 따져 물어야 하는데, 10년 이상이 지난 지금도 제도는 변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출생률(여전히 출산율이라 하는 곳도 많다)을 올려야 한다며 되도 않는 정책을 펼친다.

이 글을 쓰는 나는 오늘따라 왜 이렇게 화가 났을까? 논문과 강의와 원고와 자질구레한 프리랜서의 일의 홍수 사이에서 오늘 아침 네시간 반 동안 가사일을 돌보고 왔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프리랜서라서 편할거라고 한다. 영화 속 주인공 미래 처럼 경력 끊길 걱정이 없으니. 하하. 그건 정말 개소리다. 프리랜서기 때문에 이 경력의 멱살을 잡으려고 물장구 치며 수면 위로는 백조 흉내를 내는데, 여기서 살림을 소흘히 하면 육아를 돕는 어머님에게 ‘오늘은 강의도 없다면서 일도 안한다’는 이야기를 들을까봐 지레 겁먹은 나는 어쩔 수 없는 가사노동을 한다. 일하는 여성은 어떤 형태의 노동을 해야 과연 합리적인걸까? 이건 노동의 형태의 문제가 아닌 제도의 문제다. 제도가 바뀌지 않는다면, 미래 처럼 갈팡질팡 하다가 어쩔 수 없이 홀로 어렵게 아이를 키워야 하는 여성이 늘어만 갈 것이다. 제발 이번 정권에서는 이 모든 것들이 바뀌기만을 바랄 뿐이다. (여가부 폐지한다는데, 바뀔까?)

#십개월의미래 #남궁선감독 #영화십개월의미래 #영화리뷰 #영화인문학 #여성영화 #출생률 #임산부 #임신출산 #임신출산영화

작가의 이전글 연기를 통해 찾은 인간성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