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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달보름 Mar 08. 2023

술을 마시게 된 이유, 술과의 이별 3일 차

2023년 3월 7일



상담하며 선생님께서는 왜 술을 마시게 되었는지, 어떨 때 마시는지, 마시고 나면 기분이 어떤지에 대한 구체적인 것들을 집요하게 물었다. 마스크를 쓰고 있었고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지만, 고작 이런 일로 여기에 찾아온 것이 부끄럽고 창피해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눈에 힘을 꽉 주며 붙들고 대답했다.



가만있어 보자, 그렁그렁한 눈망울을 굴리며 떠올린다. 술을 언제부터 먹게 되었더라..? 사실 나는 둘째를 낳고 바로 운동을 하며 다이어트를 했고 2019년 여름 성공적으로 바디프로필도 찍어서 30대의 황금기를 맞았다. 너덜너덜해진 체력이 점점 복귀되고 있을 그 무렵, 다이어트가 끝나고 과식과 과음을 시나브로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2020년 코로나가 터짐과 동시에 대학원에 들어갔다. 일거리는 줄고 학비는 늘어가니, 스트레스가 쌓이기 시작했고 설상가상으로 어머님과 함께 살게 되며 말할 수 없는 괴로움이 조금씩 늘어갔다. 현재의 술을 마시는 원인은 분명 스트레스 해소용이다.



글쎄, 그렇다면 처음 술을 마시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임신 출산을 두 번 반복하면서 거의 몇 년간은 단주를 하며 지냈는데, 그 이후로 가장 처음 술을 마시기 시작한 이유는 부족한 수면 때문이었던 것 같다. 맥주 한 캔의 달콤함은 깊은 숙면에 취하게 만들고 3-4시간 정도가 지나면 각성 작용 때문에 정신이 번쩍 들어 깨서 다시 육아를 할 수 있게 만들었으니까. 한 캔으로 푹 잘 수 있었던 술의 양은 점점 두 캔, 세 캔, 여섯 캔, 그러다 지금의 지경까지 이르게 만들었고 수면의 질은 점점 더 떨어졌다. 우습게도 수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셨던 술은 결국 수면 패턴을 엉망으로 바꿔놨다.



"술을 안 마시면 잠을 못 자겠어요 선생님.."



"그럼 잠이 잘 오는 약도 좀 넣어드릴게요."



 처방받은 약은 효과가 너무 좋았다. 약만 먹었는데 술 생각이 나지 않다니? 이런 매직이 있다니? <취한 날도 이유는 있어서>의 저자 박미소 작가가 출연했던 팟캐스트 '에세이 클럽'에서 약을 먹고 술을 끊었다는 에피소드를 들은 적이 있다. 정말 사실이었다. 이렇게 간단한 걸 그동안 미루고 미루다니. 술은 마시지 않은 날은 뒤척이다 새벽이 돼야 겨우 잠들거나, 잠이 들어도 땀에 흠뻑 젖어 가위에 눌리곤 했다. 오늘도 그러리라 확신하며 전자책을 켰다. 송지현 작가의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을 70% 정도 읽었는데, 나이트클럽 연대기만 몇 번을 읽었는지 모른다. 오늘은 꼭 완독 해야지 싶었는데 세상에, 로딩하는 새에 잠에 빠져 버렸다. 



 저녁에 처방받은 약을 먹고  이틀간 거의 기절했다. 이게 잘 자는 거구나. 항상 내 수면을 방해했던 애플워치도 느낄 새 없이 그렇게 밤 새 편안하게 잤다. 아침이 상쾌하다.



그런데 한편으로 무섭기도 하다. 겨우 이틀 약 기운으로 잠들긴 했지만, 이런 경험이 처음인 나는 두렵기도 하다. 


선배님들, 약 없이 술 없이 자는 방법은 어떻게 터득해야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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