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을 넘어 다시 경험과 소유로
2025년 넷플릭스의 화두는 게임과 쇼핑이었다. 이야기를 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직접 캐릭터와 게임을 하며 마주하고 굿즈를 소유하며 경험하게 만드는 전략 속에서 넷플릭스는 스토리 제국을 건설하고 있다. 이미 2021년부터 조금씩 게임에 관심을 기울인 넷플릭스는 2023년 에픽게임즈 개발 부문 부사장을 게임 부문 사장으로 스카우트하면서 사업 포트폴리오에 게임을 한 축으로 고민하고 있다. 2021년 기존에 집중하던 인디게임 분야는 축소하고 라이선스 기반의 게임으로 집중하고 있다. 특히 키즈 타깃 게임, 멀티플레이 파티 게임, 서사중심(narrative), 메인스트림(mainstream)이라는 네 가지 카테고리를 중점적으로 집중하며 전통적인 OTT사업에서 한 단계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전통적인 미디어는 소식이나 가십, 이야기를 유통하고 다루는 기업이었다. 여러 이야기들을 모아 뿌려지는 역할에 그쳤다면 넷플릭스는 아예 이야기를 직접 만들어낸 생산자로 변모해 이야기를 다루었다. 이야기의 허브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생산자이기도 된 셈이다. 넷플릭스는 독점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하면서 이용자의 시간을 장악했다.
어느 정도 이용자 시간을 장악했을 때 넷플릭스는 시간 장악을 넘어 평균 구독자당 수익(ARPU)을 높이는 전략으로 눈을 돌렸다. 이러한 맥락에서 게임과 쇼핑이라는 사업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이다. 넷플릭스의 성장률이 정체된 환경에서 넷플릭스는 게임과 IP굿즈를 실험 단계로 검토하면서 기존 구독자의 이탈을 방지하면서 동시에 부가적인 수익원을 창출하고자 시도 중이다.
이러한 전략의 대표적인 사례가 '기묘한 이야기' 속 가상의 피자가게를 현실로 구현한 '서퍼보이 피자'이다. 2022년 넷플릭스는 Palermo Villa와 협업해 냉동 피자를 출시하였다. 기묘한 이야기 시즌 5 방영을 앞두고 다시 웰마트 등의 유통망에 서퍼보이 피자를 재출시했다. 단순히 피자를 먹는 제품으로서 선보인 게 아니라 <기묘한 이야기>와 연계해 박스 디자인, 한정판 스티커를 마련해 팬들이 세계관을 소유하고 기념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이는 넷플릭스의 소비자가 시청에서 소유, 체험으로 확장되는 전형적인 IP 상품화 전략이다.
넷플릭스의 움직임은 전통적인 콘텐츠 산업의 가치사슬을 근본적으로 재편하고 있다. 기존의 구조가 ‘제작 → 배급 → 소비’였다면 넷플릭스는 ‘제작 → 경험 → 소유 → 재순환 소비’라는 새로운 가치사슬을 구축하고 있다. IP를 기반으로 게임, 쇼핑, 오프라인 경험까지 확장함으로써, 한 번 만든 이야기를 여러 층위에서 수익화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한 것이다. 콘텐츠가 게임, 쇼핑 분야로 확장되고 있는 건 결국 넷플릭스는 영상 플랫폼에서 벗어나 스토리를 중심으로 한 종합 경험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경쟁업체와 비교해 보면 아마존은 '최저가'와 '빠른 배송'으로 리테일을 장악했고 애플은 '디바이스'를 통해 에코 시스템을 구축했다. 소니는 플레이스테이션을 중심으로 영화, 애니메이션, 게임을 전방위적으로 확장하고 디즈니는 IP를 영화와 게임으로 동시에 전개한다. 이들과 달리 넷플릿스는 스토리 그 차제에 집중하고 있다. '스토리'를 매개로 게임과 굿즈, 피자 브랜드까지 확장하며 이용자의 시간을 점유하고 경험을 독점하려는 전략을 펼치는 중이다.
이러한 시도가 기존 고객들에게 '넷플릭스'라는 정체성이 흐려질 수 있다는 리스크로 다가올 수 있다. 게임이나 굿즈, 피자 같은 실물 브랜드가 콘텐츠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고 '산만한 확장'처럼 보인다면 오히려 정체성을 훼손하고 고객 이탈을 초래할 수 있다.
게임과 쇼핑까지 관심을 기울이는 넷플릭스나 현재 당면한 고민한 '정체성'문제다. 넷플릭스는 본래 '미디어 이야기를 다루는 가장 큰 회사'라는 정체성을 기반으로 성장해 왔다. 이제는 게임과 쇼핑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며 '시간 독점'을 꾀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콘텐츠와 게임은 자연스럽게 연결될 경우 강력한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다고 본다.
기존 넷플릭스의 스토리는 주로 시각적 만족감에 머물렀다. 시청자는 영상을 '보면서' 탐닉하는 것이 전부였다. 게임은 차원이 다르다. 캐릭터와 상호작용을 하며 직접 영화, 드라마 속 세계 속으로 들어간다. 단순히 시청하는 차원을 넘어 몰입을 가능하게 한다. 이런 이유로 사용자가 드라마 속 세계관을 게임으로 이어가며 더욱 몰입한다면 미디어와 게임 분야 모두에게 시너지가 날 것이라 판단된다. 반면 쇼핑은 미디어 경험과 얼마나 유기적으로 연동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만약 연결 고리가 억지스럽게 느껴진다면 기존 구독자들의 이탈을 불러올 수 있고 '넷플릭스다움'마저 흔들릴 수 있다. 하지만 쇼핑을 일상 속에 끌어들인다면 엄청난 시너지가 생길 수 있다. 시청자들이 드라마나 영화를 피상적으로 보는 데서 끝나지 않고 굿즈를 통해 세계관을 '소유'할 수 있도록 만든다면 더욱 실감 나게 이야기를 몰입할 수 있을 것이다.
게임과 쇼핑에 대한 관심은 넷플릭스게 콘텐츠 생산에만 그치지 않고 생활 속 경험과 소비로 확장하고자 하는 진화를 의미한다. '스토리'를 무기로 삼아 이용자의 시간을 독점하려는 새로운 경험 플랫폼으로 변모하려는 것이다. 즉 넷플릭스의 게임, 쇼핑분야에 대한 확장은 단순한 사업 다각화가 아닌 새로운 정체성의 진화다. 나 역시 '가십걸'의 블레어가 착용한 액세서리를 직접 사고 싶었던 적이 있다. 그 아이템을 손에 넣을 수 있다면 단순히 '시청'을 넘어 '작은 소유'로 만족감을 얻지 않을까? 캐릭터와 내적 친밀감을 얻을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5년 뒤 넷플릭스는 단순한 플랫폼이 아니라 이야기를 탐닉하는 사람들을 위한 경험의 제국으로 진화해 있을 것이다. 시각에서 머무르지 않고, 청각, 후각, 미각 등 오감이 반응하면서 소유감까지 제공할 수 있는 플랫폼이 되고자 부단히 노력할 것이라 본다. 뉴욕의 파리 시어터와 LA의 이집션 시어터를 인수한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넷플릭스는 결국 하나의 질문을 던지고 있는 듯하다. “당신은 단순히 이야기를 보고 싶은가, 아니면 그 이야기 속에 살아보고 싶은가?” 게임, 쇼핑, 그리고 극장까지 이어진 확장은 그 답을 향한 여정이다. 나는 앞으로 5년 뒤, 넷플릭스가 스토리를 탐닉하는 사람들에게 더 깊고 다채로운 오감의 무대를 펼쳐줄 것이라 믿는다. 그때 우리는 단순한 관객이 아니라, 이야기 속을 살아가는 주인공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