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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의 시간

일곱

by Jee

고양이는 더듬더듬 피아노를 치는 여자를 바라보다, 피아노 위로 우다다 뛰어올라와 납작 엎드렸다. 피아노 치지 말고 나 밥이나 줘, 밥 줄시간이야,라는 듯이 여자를 쳐다본다. 여자는 고양이 겨드랑이 밑으로 손을 넣어 안아 살짝 바닥에 내려놓았다. 저리 가, 피아노 연습 시간이야. 악보에 그려진 음계를 중얼거리며 화음을 연습한다. 더듬더듬 노래도 불러본다. 고양이는 방문 앞에서 고개만 빼꼼 내밀고 훔쳐보다 다시 우다다하고 피아노를 점령한다. 밥~ 고개를 비틀어 여자를 쳐다본다. 남자가 기타를 칠 때도 고양이는 어김없이 기타에 헤드번팅을 하거나 무릎에 올라가 앉아 연주를 방해했다. 고양이가 듣는 것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여자와 남자는 그 모습이 그저 귀여울 뿐이었다. 10년이 넘게 키운 고양이는 이제 가족 같고, 때로는 자식 같았다.

여자는 때로 고양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고양이는 - 배가 고프거나, 놀고 싶거나, 뒤통수를 긁어주기를 원하고, 때로는 따뜻한 잠자리로 옆구리나 이불속을 내어주기를 원한다. 고양이가 원하는 것은 단순했다. 하지만 여자가 정답을 맞히는 비율은 높지 않았다. 배가 고픈가 싶어 사료를 부어주면 놀아주기를 원했고, 놀아줄까 싶어 장난감을 흔들면 시큰둥했다. 하지만 여자는 그녀의 고양이를 사랑했다. 제멋대로이고 이해할 수 없어서, 근본적으로 서로 다른 존재라서 더 너그럽게 사랑할 수 있었다. 고양이를 생각하면 가슴속 심장 끝이 간질간질했다. 여자는 오랜 시간 그녀의 고양이와 함께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겨우 10년, 길어도 20년이 지나면 저 작은 생명이 사라진다는 것 또한 알았다. 그럴 때는 누군가가 심장을 손으로 꽉 움켜쥔 것처럼 조여왔다.


"클라이버의 법칙에 따르면 생물의 기초대사량은 체중의 3/4 제곱에 비례하고, 심박수와 호흡속도는 체중의 1/4 제곱에 반비례한다. 몸집이 커질수록 대사율이 느려지고, 심박수와 호흡속도도 느려지는 것이다."

여자는 고래에 대한 책을 읽다가 클라이버의 법칙을 발견하고, 자신의 고양이에 대해 떠올렸다. 이 법칙에 따르면 고양이의 심장은 여자보다 2배 빨리 뛰고, 그만큼 더 자주 숨 쉬고, 생리적 반응도 그만큼 더 빠르다. 고양이의 세상에서 여자는 아주 느리게 움직이는, 꼬물대는 손가락을 가진 이상한 친구일 것이다. 여자는 한편으로 고래를 생각했다. 고래, 특히 큰 고래들은 1분에 한두 번만 숨을 쉬기도 한다. 그들의 세상은 얼마나 느리게 흘러가는가, 그러다가 숨 쉬는 걸 까먹지나 않을까.... 물론 그건 쓸데없는 걱정이다. 모든 동물은 각각이 필요한 만큼의 속도로 숨을 쉰다. 고래는 거대한 심장으로 한 번에 많은 피를 내보내고, 느린 신진대사는 그 피를 받아 천천히 소모한다. 고양이의 작은 심장은 별로 많은 피를 내보내지 못할 것이다. 이리저리 먹이를 구하러 다니려면 그 작은 심장은 더 빨리 뛰어야 할 것이고... 다르다는 것,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은 그녀를 안심시켰다. 상대방을 바꾸려고 노력할 필요도, 바꾸고 싶은 욕망을 느낄 필요도 없다는 것이 홀가분했다. 여자에게는 이런 다름이, 축복처럼 느껴졌다.


요즘 들어 살아있는 애완동물을 키우는 사람은 점점 줄어가고 있다. 대신에 사람들은 애완로봇을 키웠다. 충전하고 수리하는 것 외에 다른 것들, 화장실을 갈아준다거나, 먹을 것을 챙겨준다거나 하는 돌봄은 필요하지 않았다. 업체들은 새벽부터 귀찮게 문을 긁어대지도 않는다고 광고했다. 하지만 여자는 자신만 바라보도록 프로그램된 애완로봇을 들이고 싶지는 않았다. 완전히 내 맘대로 되는, 내가 바꾸고 싶은 만큼 바꿀 수 있는 존재를 사랑한다는 것이 상상이 되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들려주는 이어폰이나, 예뻐서 아끼는 신발처럼, 애착할 수는 있겠지만, 가슴이 저리도록 사랑하지는 못할 것 같았다.


잠이 오지 않는 새벽, 고양이의 뜨겁고 말랑하고 작은 몸에 의지해서 잠드는 것, 언젠가 헤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더욱 가슴이 저린 것... 여자는 한마디 말도 통하지 않는 인간의 세계에서 그럭저럭 잘 살아주고 있는 고양이가, 만수무강하기를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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