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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하 훈련

여덟

by Jee

빛이 물속을 여행할 수 있는 거리는 대개 50미터를 넘지 못했다. 빛은 물에 닿아 꺾이고, 흩어지고, 그 온기를 물에 내주었다. 꽃같이 붉은색이 먼저 사라지고, 노란빛, 초록빛이 좀 더 깊이까지 내려가다 물에 흡수되었다. 돔 시티 주변에 남는 것은 푸른색뿐이었다. 바다가 흡수하지 못한 푸른빛은 찐득하고 탁했다. 지상의 식물과 하늘이 내는 푸른빛은 따뜻한 붉은빛과 노란빛과 섞여 환하게 빛나지만, 돔 시티 주변에 도달한 푸른빛은 홀로 외롭게 있는 탓이다. 지상에 한바탕 폭우가 지나가고 햇빛이 강한 날에 돔 시티에서 수면을 올려다보면 둥근 물의 창을 통해 빛이 내리쬐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파도가 일렁이면 빛의 창은 기묘하게 흔들리거나 조각난 것처럼 보였다. 엄마 뱃속에 있을 때의 기억을 더듬듯이, 사람들은 빛의 창을 올려다보곤 했다.


돔 시티 이주자는 낙하를 할 줄 알아야 했다. 지상과 돔시티를 연결하는 통로와 운송선들이 있지만, 만약의 경우에는 맨몸으로 다이빙하여 돔 시티까지 내려와야 했다. 바다 한가운데 낙하 포인트에서 풍랑이 거친 10m를 지나, 30m에 위치한 돔 시티 입구까지 발광물질을 바른 가이드 케이블이 놓여 있었다. 몸에 힘을 빼야 해요. 긴장을 풀어요. 그래야 숨을 최대한으로 아낄 수 있어요. 긴장을 풀면 자연스럽게 가라앉습니다. 은희의 귓가에 버디의 목소리가 맴돌았다. 최소한으로 살아있는 것, 그것이 돔 시티에서 살아가는 자가 가져야 할 미덕이었다. 작게 숨 쉬고, 적게 먹고, 작게 움직여라.


은희는 코를 막고 귀에 숨을 불어넣었다. 귓속에서 작은 딸깍 소리가 들렸다. 귀 안에 있던 묵직한 압력이 사라졌다. 닫혀 있던 문이 다시 열리듯, 물속이 다시 선명하게 느껴졌다. 은희는 킥을 하며 천천히 더 깊이 내려갔다. 수압이 점점 강해지면서 귀 안쪽이 다시 조여 오는 느낌이 들었다. "긴장을 풀고..." 은희는 되뇌며 한 번 더 코를 막고 가볍게 공기를 불어넣었다. 이번에도 귓속에서 작은 팝 소리가 나며 압력이 풀렸다. 돔 시티의 입구가 눈에 보이는 위치에서 은희는 자유낙하를 시작했다. 몸이 스스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이제 더 이상 킥을 할 필요가 없었다. 조용히 팔을 몸에 붙이고, 유선형을 유지한 채 가만히 있었다. 중력을 거슬러 몸을 끌어올리던 부력이 점점 사라지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마치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쓱- 그녀의 몸이 물속으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주위의 세계가 점점 더 어두워졌다. 차가운 물살이 피부를 스쳐가는 감각만이 선명했다. 그녀는 그저 떨어지고 있었다.


은희는 낙하를 즐겼다. 풍랑이 없는 날에는 수면 근처에 잠겨서, 빛을 반사해 현란하게 모양을 바꾸는 물결들을 오랫동안 바라보곤 했다. 자유낙하를 할 때면, 바람을 타고 나는 새가 된 착각이 들었다. 중력에 몸을 맡기고, 낙하하는 고래를 생각했다. 수면을 뚫고 낙하하는 빛을 생각했다. 아주 먼 미래에 이 행성이 늙어 거대해진 중력이 주변을 빨아들일 것을, 그때가 되면 모든 것이 낙하할 것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하지만 은희는 몸을 감싸는 물의 감촉과, 부서지는 빛살이 주는 위안을 사랑했다. 조금이라도 이렇게 살아있는 것이 좋았다. 낙하하는 것들은 결국 소멸한다는 것을 당장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은희는 물속에서 눈물을 흘렸다. 눈가가 뜨거워지고 눈물 방울이 눈가에 매달려있다가 이윽고 눈 위로, 얼굴 위로 얇게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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