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비가 오면 흙에서 진한 냄새가 났다. 코끝이 시원하기도 하고, 발효음식처럼 오묘하기도 한 냄새. 은희는 그 냄새를 맡을 때마다 흙 비린내라고 생각했다. 건조한 흙이 내지 못하는 냄새, 젖어야 나는 냄새, 살아있다는 증거, 생명의 비린내 말이다. 풀을 깎으면 풀 비린내가 났다. 풀 비린내는 잘린 상처에서 나는 것이어서, 풀이 흘리는 피냄새에 가까웠다. 인간은 흙 비린내를, 풀 피냄새를 즐거워하며 살아왔다. 서로가 서로를 뜯어먹으며 사는 것이 생물이다. 흙이 젖으면 풀이 자라나고 열매가 맺어 그것을 뜯어먹고 사는 동물들도 성장한다. 인간은 그 모든 것들을 뜯어먹을 예감에 행복해지는 것이다. 잔인한 기쁨을 주는 흙냄새.
콘크리트와 강철, 강화 플라스틱으로 지어진 해저도시에서는 석유와 먼지 냄새가 났다. 때때로 사람들은 이유를 알 수 없이 무기력해졌는데 (트랜퀼라이저 시술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건 아마도 속을 미식거리게 하는 저 냄새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해저도시 안에서도 약간 습도가 높은 곳, 예를 들어 환기구 뒤쪽 오래된 보관실 같은 곳에서는 가끔 익숙한 지상의 냄새가 났다. 곰팡이 냄새 같기도 하고, 비 온 뒤 흙냄새 같기도 한 그런 냄새. 방선균이 자라고 있다는 증거인 그 냄새는 마치 이 도시가 지상과 완전히 단절된 적은 없었다는 걸 누군가 조용히 알려주려고 남겨놓은 것 같았다.
은희는 물은 적이 있었다. 바다 속 흙은 어떤 냄새가 나느냐고.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대답했었다. 우리가 아는 그런 흙냄새는 안 나요. 대신 가끔 황화수소 냄새가 나죠. 썩은 달걀처럼요. 산소가 부족한 바닥에서 미생물들이 살아 있다는 뜻이에요. 우리에겐 위험한 곳이니 얼른 벗어나라는 뜻이기도 하죠. 은희는 그 말을 오래도록 곱씹었다. 흙냄새 대신 썩은 달걀 냄새라니. 냄새 맡을 수도 없는 바다의 모래바닥을 쳐다보며, 흙냄새가 없는 세상에 살게 된다는 건 생각보다 더 낯선 일이라고 생각했다. 과거로 돌아가는 문의 손잡이를 잃어버린 것 같았다. 흙 사이로 스며나오던 냄새에 대한 기억과 그리움은 때로 햇빛과 하늘에 대한 그리움보다 더 강하게 은희를 괴롭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