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하나
돔 시티에 도착한 지 6개월이 지났다. 은희는 여전히 이곳의 공기와 조명, 사람들의 표정에 익숙해지려 애쓰는 중이었다. 이 도시는 고요했다. 지나치게 조율된 침묵 속에서, 은희는 모두가 자신의 존재를 들키지 않으려 발끝을 들고 살금살금 걸어 다니는 것처럼 느껴졌다.
기억은 이곳에서 환영받지 않았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트랜퀼라이저 시술을 받았다. 트랜퀼라이저의 알고리즘은 중앙처리장치에서 관리되고 있었고, 때때로 업데이트되었다. 그것은 감정의 진폭을 조절하고, 고통스러운 기억의 잔상을 흐리게 만들었다. 감정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처리한다”는 표현이 더 정확했다. 트랜퀼라이저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더 이상 질문하지 않았다. 이제 누구도 오래전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고, 누군가의 고통에 대해 질문하지 않았으며, 서로의 기원을 묻지 않았다. 기억은 사적인 것으로 여겨졌고, 사적인 것은 곧 무의미한 것이 되었다. 사람들이 기억을 보존하지 않았기에 기관이 나서서 최소한의 기록들을 보관하는 역할을 떠맡았다.
하지만 은희는 사람들과 다르게 느꼈다.
기록관리사로 배정된 그녀는 도시 내 모든 생체 기록, 커뮤니케이션 로그, 영상, 음성, 심지어 사람들의 사적 기억 복사본까지 보존하고 정리하는 일을 맡았다. 그녀가 다루는 데이터는 거대한 저장소의 일부에 불과했지만, 그녀에게는 그 어떤 기록도 단순히 숫자나 메타데이터로 보이지 않았다. 모든 파일은 누군가가 흘린 감정의 흔적이었다.
은희는 경험으로 알았다. 고통은 말해지지 않을 때 더 깊이 가라앉는다는 것을. 지상에서의 삶, 말하지 못한 상실과 기억을 끌어안고 내려온 그녀에게, 이 도시는 마치 감정을 잊는 법을 강요하는 거대한 수조처럼 느껴졌다.
기억은 휘발되지 않았다. 오히려 깊이, 그리고 무겁게 가라앉았다. 말해지지 않은 기억은 뼈에 스며들고, 결국의 몸의 무게를 바꾸었다. 은희는 그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기억을 관리한다는 직무 설명 너머에서, 그녀는 마음속으로 스스로에게 또 다른 역할을 부여하고 있었다. 기록이 단지 저장이 아닌 회복의 통로가 될 수 있다면? 죽은 고래가 심해로 가라앉아 수많은 생명에게 양분을 공급하듯, 가라앉은 기억들도 누군가에게는 살아갈 이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트랜퀼라이저의 감정 억제에도 불구하고 선명하게 남은 기쁨과 고통의 기억들, 스스로 트랜퀼라이저 연결을 끊은 소수의 사람들이 저마다 간직한 기억, 그 기록들을 모아 도시의 색채를 되살릴 수 있지 않을까.
‘고래낙하 프로젝트’
“기억이란, 죽은 고래와 같다.
무겁고 깊게 가라앉지만, 누군가가 그것을 발견하고 꺼내어 말할 수 있을 때,
그것은 다시 생명을 만든다.
우리가 하는 일은, 가라앉은 고래를 기다리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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