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둘
은희는 기록에 집착하는 사람이었다. 매일매일 일기를 쓰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오후에는 오전의 일을, 오전에는 어제의 일을, 누군가와의 대화를, 날아가는 새를 볼 때 부러움에 가슴이 간질간질했던 것을, 고양이가 고개를 갸웃하는 것을 볼 때 저도 모르게 웃음이 번진 것을, 거의 모든 것을, 가능한 한 모든 것을, 기억하려 했다. 기록하고 분류하고, 숨은 의미를 찾아 은밀히 기억의 미로를 더듬어 다녔다. 혹여 놓쳤을지 모르는 삶의 의미를 찾아, 조심스럽게 기억 속에 시간을 되살려냈다. 그렇게 해서 그녀의 삶이 조금이라도 더 살만한 것이 될 수 있도록. 깊은 산속에 돋아난 새싹이 높은 나무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햇빛을 받아 빛나는 순간에 대한 기억, 그것들을 위안 삼아 하루하루를 견뎌나가려고 했다.
지난주 금요일에 뭐 했더라.
트랜퀼라이저 시술을 받고 나서는 기억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감정이 덧칠되지 않은 기억은 쉽게 잊혔다. 은희는 반나절동안 끙끙대며 지난주 금요일에 한 일을 기억해 내려고 애쓰고 있었다. 분명 뭔가를 한 것 같은데, 그것이 기억나지 않았다. 금요일 일기를 썼다고 착각하고 넘어가버린 것도 드문 일이지만, 이렇게까지 기억이 나지 않는 것도 신기했다. 누군가가 성능 좋은 지우개로 쓱싹쓱싹 지워버린 것처럼, 굵은 물줄기를 흩뿌려 타일바닥의 먼지를 날려버린 것처럼.
컴퓨터 화면의 커서는 "나는 아무것도 몰라요"라는 듯 능청스럽게 깜빡이고 있다.
지상에서 지낼 때는 이런 때를 대비해서 최대한 많은 사진을 찍어두려고 했다. 조금이라도 주의를 끄는 것이 있다면 일단 핸드폰 카메라에 담았다. 은희는 사진들을 들여다보며 그때 보았던 것, 들었던 것, 냄새와 느꼈던 감정을 되살리려고 했다. 때로 사진은 최근의 기억을 건너 오래된 기억으로 은희를 이끌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기억은 좀 더 선명해졌고, 때로는 어제의 일과는 관계없는 일로 번졌다. 기억이 강을 따라 흘러갈 때, 은희도 좀 더 먼 곳까지 여행할 수 있었다.
고통스러운 기억은 좀 더 깊은 골짜기를 따라 흘렀다.
기억의 길을 자칫 잘 못 들면, 그 기억에 사로잡혀 며칠간 헤어나지 못했다. 그 기억 속에서 은희는 두려움에 떨었고, 때로는 때리는 사람의 얼굴이 피 흘리는 귀신으로 바뀌어 은희는 공포와 놀라움 속에 오줌이 마려웠다. 다 큰 어른이 되어서도, 기억 속의 공포는 오롯이 소녀의 것이었다. 기억 속의 인물이 자라 과거의 공포를 극복한다는 것은 디즈니 만화 속에서나 있는 일이 아닐까, 낭만적인 소리 하시네. 진지하게 공포와 대면하려 할수록, 은희는 점점 더 어려졌다. 심리상담 선생님은 상상 속에서 무서운 기억을 상자에 집어넣고 더 작은 상자에 다시 집어넣고, 구슬만큼 작은 상자에 집어넣어 절벽아래 거세게 흐르는 계곡물속으로 던져버리려고 했다. 하지만 은희는 상상 속에서 덜덜 떨며 자꾸 헛손질을 할 뿐이었다.
은희는 삶에서 공포는 어린 시절에 국한되지 않았다. 어른이 되어서도 세상은 그 자체로 영롱한 공포였다. 저토록 드넓은 세상, 화려하게 나아가는 사람들, 주위에는 생명력에 넘쳤다. 하지만 은희는 버거웠다. 남들처럼 그럭저럭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저 때때로 버거웠다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니 은희는 살아가는 리듬을, 숨 쉬는 리듬을 잃어버릴 만큼 세상에 겁을 먹고 있었다. 내가 살아가기엔 너무나 격동적인 곳. 은희는 조금씩 세상에서 물러나는 법을 연습했다. 정규 직장을 그만두고 파트타임으로 생계를 이어나갔다. 그 남자와의 연애를 포기하지 않았다면 아마 결혼까지 갈 수도 있지 않았을까. 가족, 친구들과의 연락도 점점 뜸해졌다. 트랜퀼라이저를 심고 나서는 죄책감마저 슬며시 사라졌다.
지난주 금요일에 뭐 했더라.
은희는 생각하는 척했지만 실제로는 멍하니 생각 속을 유영하고 있었다. 혼자서도 뭔가를 생각하는 척한다는 것이 스스로 우스워졌다. 그렇게 기록의 간격이 넓어져가고 있었다. 기억은 바짝 마른 강바닥처럼 고루한 먼지가 날릴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