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셋
그녀는 꿈속에서 끝없이 헤엄치고 있었다. 은희는 고래였다.
물살에 등을 맡긴 채 수백 킬로미터를 지나왔다. 끊임없이 위아래로 움직여 혹사당한 꼬리지느러미에 경련이 일었다. 숨은 한계에 다다랐다. 마지막 숨을 쉬어야지. 이게 마지막이라도. 남아 있는 모든 힘을 모아 수면 위로 몸을 밀어 올렸다. 머리 위에 열린 숨구멍이 바깥공기를 찾아 허공을 향해 열렸고, 폐는 마지막 숨으로 천천히 부풀었다. 아주 잠깐의 평온이 찾아왔다. 산소를 받아들인 지느러미 끝의 긴장이 풀리자, 고래가 된 은희는 마지막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폐에서 나온 공기는 마지막 진동을 만들고, 이내 이마 속 멜론 지방층을 지나, 앞으로 퍼져나갔다. 고요함 속에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지만, 아무것도 되돌아오지 않았다. 그 한 번의 숨이, 마지막이었다. 더는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았고, 드디어, 이 긴 여정이 끝났다는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심장이 뛰기를 멈추었고, 따뜻하던 몸이 천천히 식어갔다.
고래는 죽었는데 은희는 꿈속에서 죽지 않고 고래의 죽음을 경험하고 있었다. 어떤 시간은 아주 빠르게 어떤 순간은 아주 느리게 흘러갔다. 맙소사, 몸이 천천히 부풀기 시작했다. 내장 깊숙한 곳에서 생긴 가스가 무자비하게 팽창했고, 뼈와 살은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서서히 벌어졌다. 오랜 생의 끝자락에서, 거대한 덩어리가 된 몸은 스스로를 물 위로 밀어 올렸다. 죽음 이후에 일어나는 일에는 어떠한 의지도 방향도 없다는 것이, 오로지 지구가 정한 데로 흘러간다는 당연한 사실이, 망치로 가슴을 치듯 메아리쳤다. 죽은 고래는 수면에서 흔들리며 잠시 표류하다, 이내 무게에 끌려 다시 가라앉았다. 부풀었던 살은 터지고, 무너진 장기와 갈라진 껍질이 무게 중심을 아래로 바꿨다. 그다음은 계속 가라앉을 뿐이었다. 바닥에 닿을 때까지.
첫 번째로 도착한 것은 상어였다. 거칠게 찢긴 가죽 틈으로 날카로운 이빨이 파고들고, 핏물이 물속에 먹구름처럼 번졌다. 다행히 고통은 없었다. 감각은 사라졌고, 남은 건 분해되는 살과 그 속에 깃드는 생명들의 움직임뿐이었다. 작은 물고기 떼가 몰려와 눈과 아가미 안쪽을 파먹고, 등뼈를 타고 기어 다니던 붉은 벌레들이 뼛속까지 침투했다. 좀비벌레들은 살을 분해하고 뼈를 파고들어, 말랑한 골수 속에 자리 잡고 자신들의 서식지로 삼았다. 점점 더 많은 생물들이 찾아왔고, 장기와 혈관, 살점과 틈 사이에 하나둘 둥지를 틀었다. 언제까지, 대체 언제까지, 은희는 중얼거렸다. 죽음이라는 이 긴 이야기가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죽었는데도 숨이 막혀왔다.
은희는 정말로 숨이 막힐 것 같은 느낌에 꿈에서 깨어났다. 크게 숨을 들이쉬며 어깨가 들썩였고, 입가에 닿은 베개는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심장은 빠르게 뛰고 있었다. 꿈이었지만 너무나도 생생했다. 손끝에 부스러진 살점의 기억이 남아 있었다. 골수를 간지럽히던 벌레의 감각이 뼛속 깊은 곳에서 올라왔다. 구역질이 났다. 은희는 천장을 바라보았다. 하얗고 매끈한 강화플라스틱으로 만든 돔시티의 내부. 벽면엔 해조류 산소 정화 시스템의 붉은 LED가 깜빡이고, 기계진동이 미세하게 느껴졌다. 거대한 고래의 뱃속에 삼켜진 신화 속의 인물처럼, 은희는 통제된 돔시티에 기생하는 작은 생물이 된 기분이었다. 돔시티는 언제까지 생명을 유지할까? 고래가 몸을 바꾸어 물에 적응했듯이, 인간도 우리를 지켜주는 껍데기에서 벗어나 몸자체를 바꾸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기술주의자들이 들으면 치를 떨 생각을 떨쳐내며 침대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