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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Mar 11. 2022

관심 자본, 어떻게 사용하면 좋을까

관종의 조건(임홍택)

책을  읽고 제일 처음 들었던 생각은 '제목이 잘못됐다'였다. 관종의 조건에서 기대했던 내용은 관종을 해부하는 거였다. 과거의 관종, 현재 관종으로의 발전, 관종의 종류 그리고 결국엔 어떻게 하면 성공적인 관종이   있는가로 이어지는 스토리를 기대했다. 하지만  책은 관심을 추구하는 '사람'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관심' 대한 이야기다. 경제의 축이 되어버린 '관심'이라는  무형물을 개인이 그리고 사회가 어떻게 사용하면 좋을까 하는 이야기다. 책은  6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내가 가장 많이 필사  곳은 1 '관종의 등장' 6 '관종 사회의 미래'이다. 원래 의도는 성공적인 관종이 되기 위한 방법론을 얻는 것이었는데 막상 완독하고 나니 '관심'이라는 자본이 어떻게 지금의 위상을 차지하게 되었는지, 이걸 앞으로 어떻게  사용하면 좋을지에 대한 내용이 가장 재밌었다.



4년 전 어떤 방송국에서 잠시 일했던 적이 있다. 그때 모대학 교수가 찾아와 변화하는 미디어 생태와 4차 산업혁명을 주제로 강연을 했었다. 직원들은 필수로 참석하라길래 추운 복도를 종종걸음 치며 내려갔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QnA 세션에 유일하게 손을 든 직원 한 명에 대한 기억이 있다. 그 사람은 당시 필터 버블이 무엇인지 아는 상태에서 SNS의 추천 알고리즘의 문제점에 대해 말했다. unexpected experience가 점차 줄어드는 인터넷 사용 환경에 대한 질문이었는데 답변이 어땠는지는 기억에 없고 질문 내용만 기억하는 걸 보면 그다지 인상 깊은 답은 아니었던 듯하다. 사무실로 올라가는 길에 그 직원이 평소 일을 쳐내던 모습이 어땠나 생각했다. 일어로 전화하고, 영어로 메일 쓰고, 중국어로 뭔갈 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3개 국어 능력자인 줄로만 알았더니 이 사람 업계에 진심이구나 싶었다. 그리고 4년 뒤인 21년 10월, 회사의 이익을 앞세워 분열과 혐오가 퍼지도록 조장하고 청소년의 정서와 행동에 악영향을 준 페이스북(현 메타)이 청문회에 등장했다.



어쩌면 예상 가능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알고리즘이란 게 내 과거 데이터를 모아 현재 입맛에 맞는 선택지를 보여준다는 거니까. 자연스럽게 편향된 의견 형성으로 이어진다. 반대하는 것, 나와 다른 사람, 거슬리는 이야기, 관심 없는 정보 이 모든 것들을 정신적으로 또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뜨려 준다. 대신 눈앞에 펼쳐지는 건 찬성하는 것, 좋아하는 사람, 듣고 싶은 이야기, 흥미로운 정보들이다. 얼핏 사용자에게 편리한 환경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리가 주의해야 할 점은 알고리즘은 선한 의지를 가진 초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알고리즘은 플랫폼 기업의 이윤 확대를 위해 존재한다. 기업의 이윤은 곧 사용자들의 시간이다. 때문에 기업 입장에선 많은 사람들이 클릭하는 그것을 놓치는 건 존재 이유에 반하는 행위일지 모른다. 이윤을 극대화해야 하는 집단이 이윤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란 건 이렇게 청문회에 불려 갈만한 판단을 하게 만든다.



페이스북(현 메타) 청문회가 말해주는 또 다른 점은 기업의 힘이 너무나도 막강하단 것이다. 인스타그램은 21년 10월 월간 MAU가 20억 명이 넘은 거대 플랫폼이다. 기업 활동에 도의적인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시점은 이미 일이 끝나버린(그리고 진행 중인) 사후이다. 청문회에 불려 가고 앞으로 안 그러겠다, 시정을 약속하고 사칙을 개정한다고 해도 일은 이미 벌어졌다. 우리가 정말 원하는 건 사후적 조치가 아니라 사전적 예방이다. 그러려면 기업 활동 자체에 수정이 있어야 한다. 이와 비슷한 논점으로 <관종의 조건> 저자는 가짜 뉴스에 대해 말하고 있다.



가짜 뉴스를 유발하는 진짜 원인은 단순한 저널리즘의 문제가 아니라, 가짜 뉴스로 상업적 이득을 취하고자 하는 재정적 동기이기 때문이다. (중략) 결국 이와 같은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짜 뉴스 생태계를 움직이는 재정적인 인센티브를 바꿔야만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그에 걸맞은 자본주의적 해법이 필요한 것이다. (중략) 결국 가짜 뉴스를 막는 방법은 콘텐츠 노출을 통해 광고 수익을 얻는 지금의 비즈니스 모델을 변화시키는 방법, 즉 디지털 플랫폼 기업의 변화다.
관종의 조건 324p, 임홍택



가짜 뉴스뿐 아니라 모든 플랫폼은 사람들의 관심을 화폐로 치환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가짜 뉴스의 광고나 유튜브의 슈퍼 챗이나 아프리카의 별풍선이나 그 본질은 매한가지이다. 보는 사람이 있고, 그 시선은 돈이 된다. 구조 자체가 변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에 누구는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고 누구는 그게 되겠냐 할 수도 있다. 우리 자체도 이미 돈과 효율로 움직이는 기업에 몸 담고 있는 직장인인데? 그래도 잊지 말자. 우리는 멋모르는 초등학생의 '벗방'에 '좀 더 벗어보라'는 채팅을 남기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안다. 그 시선이 존재해선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돈이 되어선 안 된다는 사실을 안다. 그건 반인륜적인 일이라고 비난할 순 있지만 효과적이진 못하단 사실도 안다. 냉소는 쉽고 변하는 건 없으니까. 대신 책 한 권 뽑아 들고 열을 내며 읽어보자. 처음 생각과는 전혀 다른 길을 내달리더라도 이 가치 있는 비효율에 빠져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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