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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Mar 13. 2022

어쩌면 나, 겉바속촉일지도?

타인의 해석(말콤 글래드웰)

스무 살부터 자취를 해왔던 나는 혼자 뭔가를 하는 것에 익숙하다. 혼자 집을 보러 다니고, 혼자 가구를 조립하고, 혼자 밥을 차려(시켜) 먹는다. 무엇보다 매일매일 혼자 해야 하는 것은 밥을 먹는 일인데, 주로 배달을 이용한다. 어느 날 짜장밥을 시키니 짬뽕 국물이 따라 나왔다. 배달에도 국물 서비스를 주는구나 하며 맛있게 먹는 도중 갑자기 그런 의문이 들었다. 짬뽕 국물은 사골 곰탕처럼 한 솥에 끓이는 걸까 아님 라면처럼 짬뽕 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1인 분씩 만드는 걸까. 이 국물은 방금 끓인 솥에서 나온 걸까 아님 식당 테이블을 한 번 거친 걸까. 마음이 불안해졌지만 난 사장님을 믿기로 했다. 평소 후기글에 답글을 다는 사장님 태도를 보아 진정성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사장님은 양심적으로 가게를 운영하는 것 같았다. 더군다나 재사용을 의심할 만한 정황도 없었다. 수상쩍은 건더기가 나온 것도 아니고 냄새가 나는 것도 아니고 이건 그냥 나의 의문일 뿐이었다. 그래서 이 생각들을 지워버리고 국물과 밥을 맛있게 먹어치웠다.


이건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에피소드다. 우리는 사람들이 마냥 선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각자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걸 체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첫째로 하고 보는 일은 상대를 믿는 것이다. 저자는 이걸 진실기본값이라고 말한다. 돈을 지불하고 주문을 넣으면 제시간에 음식이 문 앞에 도착할 것이라 믿는다. 음식의 조리과정을 다 지켜보진 않았지만 요리사가 괜찮은 재료를 썼을 거라 믿는다. 진실을 기본값으로 두지 않으면 엄청난 비효율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의심이 고개를 들 때면 불신으로 넘어갈만한 확실한 증거를 찾는다. 머리카락이 나왔나? 흰쌀밥에 양념이 묻었나? '잡았다 요놈!'을 외칠 때까지 증거를 수집한다. 증거가 불충분하다면? 빼꼼 나와있는 의심을 집어넣어 버린다. 그래, 그럴 리가 없지. 후기에서 느껴졌어, 사장님의 진정성이!

진실기본값 모드에서 벗어나려면 러바인이 말하는 계기(trigger)가 필요하다. 약간 미심쩍은 정도나 의혹은 계기가 될 수 없다. 처음 품은 가정에 어긋나는 증거가 결정적인 것으로 밝혀질 때만 비로소 진실기본값 모드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중략) 일단 믿고 본다. 그리고 의심과 걱정이 점점 커져서 해명되지 않을 때가 되어서야 믿는 것을 멈춘다.
타인의 해석 84p, 말콤 글래드웰


여기서 두 번째 원칙이 등장한다. 바로 투명성가정이다. 사람들의 태도나 표정, 언어적 소통이 그들의 내면과 일치하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평소 후기글에 일일이 답글을 다는 사장님을 보며 나는 사장이 성실하다고 판단한다. 그 내용도 손님의 글마다 각기 다르다. 단순 CS차원이라기엔 정성이 꽤 느껴지는 글들을 보며 사장의 진정성을 느낀다. 이렇듯 우리는 상대의 언어적, 비언어적 소통을 통해 속마음을 유추한다. 그 두 개가 일치할 것이라는 게 기본 가정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피의자의 '진정성 있는'호소로 인해 예방하지 못한 살인 사건을 소개하며 투명성가정을 설명한다.

피의자는 그의  불과 3미터 거리에  있고, 솔로몬은 자신이 평가하는 사람을 파악할 기회가 있다. 하지만  모든 추가적인 정보는 사실 유용하지 않다. 사람이 놀랐다고 해서 반드시 놀란 표정을 짓는 것은 아니다. 감정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언제나 감정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중략) 판사는 워커가 솔직하고 투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후회하는 모습을 보였다'  무슨 뜻일까? 수많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사람들이 후회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처럼, 그도 슬픈 표정을 하고, 눈을 내리깔고, 머리를 떨어뜨린 걸까? 그리고  우리는 누군가 슬픈 표정을 하고, 눈을 내리깔고, 머리를 떨어뜨리면  사람의 마음속에서 상전벽해 같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인생은 <프렌즈> 같지 않다. 워커를 직접  것은 판사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해가 되었다. 워커가 여자친구를 총으로 살해했다.
타인의 해석 171p,  말콤 글래드웰


이에 더해 주취상태가 얼마나 큰 문제가 되는지 역설한다. 취중진담으로 요약되는 비일상적인 말과 행동이 실은 진담이 아니라 근시의 결과라고 말한다. 숨겨 왔던 나의 수줍은 마음을 줄 수 있는 이유는 알코올이 진짜 우리를 끄집어내서가 아니라 다른 우리를 끄집어내기 때문이다. 알코올은 사람을 근시안적으로 만들기 때문에 갈등이 높은 상황(대립되는 두 가지 고려 사항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현재에 가까운 선택을 내리게 한다. 오늘의 즐거움을 참고 공부하기, 오늘의 휴식을 참고 출근하기는 우리가 흔히 선택하는 것들이다. 하지만 알코올은 이 선택을 폐기하도록 만들고 지금 당장의 휴식과 즐거움을 추구하게 한다.

술을 마시다 보면 주변 환경에 휘둘린다. 술은 눈앞에서 펼쳐지는 경험 말고는 모든 것을 밀어낸다. 근시 이론의 주요 관찰 결과 중 하나는 음주가 ‘갈등이 높은’high conflict 상황(하나는 가깝고 하나는 먼, 서로 대립하는 두 가지 고려사항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중략) 알코올은 억제된 것을 드러내는 물질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를 변형하는 물질이다. (중략) 알코올은 주변의 직접적인 환경의 윤곽에 따라 술 마시는 사람을 딴사람으로 개조해버리는 약물이다.
타인의 해석 216p, 말콤 글래드웰


4부 진실의 정체에서는 범죄자의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사용되는 고문이 실은 자백의 진실성을 떨어뜨린다고 말한다. 이 부분은 다소 특수한 소재라 넘어가도록 하고 5부 결합의 파괴를 살펴보겠다. 여기선 영국의 자살률 증감의 원인을 자살 수단에 대한 접근 용이성으로 파악하여 결합이론을 이끌어낸다. 흔히 자살을 결심한 사람은 수단과 관계없이 죽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들은 대단한 의지로 인생을 끝내기로 했기 때문에 수단은 상관없을 것만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영국의 자살률 변화 추이와 도시가스의 공급 및 중단 시기를 연결 지어 보면 자살이 얼마나 용이한가에 따라 사람들의 선택이 달라짐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자살이 이루어지려면 특정한 조건들이 결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살을 하되 그 끝이 깔끔하고, 고통이 없어야 하고, 누군가 어느 시점에 현장을 발견해야 한다. 때문에 바로 이것으로, 바로 여기에서 실시한다.

결합 이론은 금문교에 관해 무엇을 말해주나? 만약 자살 방지 구조물이 있어서 사람들이 뛰어내리는 것을 막는다면, 또는 그물이 설치되어 있어서 사람들이 떨어지기 전에 걸린다면 큰 차이가 생길 것이라고 말한다. 다리에서 자살하는 것이 가로막힌 사람들은 다른 곳에서 뛰어내리러 이동하지 않는다. 자살하려는 결심은 그 특정한 다리와 결합된다.
타인의 해석 275p, 말콤 글래드웰


이렇게 특정한 조건들끼리 결합되었을 때에만 일이 벌어진다는 점은 범죄 집중 구역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있다. 범죄는 한 지역에 몰리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도 특정 거리 몇 군데에 한정된다. 이를 통해 범죄 집중 법칙이란 것을 발견하는데 범죄가 어느 지역의 장소와 배경에 강하게 결합된다는 것이다. 캔자스시티에서 실험을 통해 이 법칙이 유효함을 증명했다. 범죄 집중 구역(144구역)에 대해 특별 단속을 실시해 성과를 거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특별 단속이 미국 전역에, 범죄 집중 구역이 아닌 곳에도 적용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와이스버드는 이런 현상을 범죄 집중 법칙(Law of Crime Concentration)이라고 부른다. 자살과 마찬가지로 범죄 역시 아주 특정한 장소 및 배경과 연결된다. 72 관구와 미니애폴리스에서 와이스버드가 한 경험은 특이한 게 아니다. 그 경험은 인간 행동에 관한 근본적인 진실에 가까운 어떤 것을 포착한다. 따라서 낯선 사람을 대면할 때 당신은 그 사람을 언제 어디서 대면하는지를 스스로 물어야 한다. 이 두 가지가 낯선 사람의 정치에 관한 당신의 해석에 강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타인의 해석 283p, 말콤 글래드웰


이것이 문제인 이유는 우리가 종종 접하는 미국 경찰의 과잉 진압 사례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캔자스시티 144구역에서 성과를 보였던 이 방법은 미국에 또 다른 사회문제를 가져왔다. 이 방법이란 건 바로 자잘한 교통 법규 위반을 근거로 차를 세운 뒤 의심의 눈초리를 던지는 것이다. 후미등이 고장 났다며 차를 세우고 혹시 총을 소지하고 있지는 않은지, 범죄 용의자는 아닌지 샅샅이 살펴보는 것이다. 이런 방법은 범죄 집중 구역에서는 꽤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지역에서는 샌드라 블랜드 사건(2015)을 일으켰다. Black Lives Matter로 귀결되는 이 사건은 앞서 소개한 여러 원칙이 작용해 서로를 오해하는데서 시작한다. <당신의 샌드라를 만났을 때> 챕터를 통해 저자는 이 오해가 어떤 과정으로 이루어졌는지 세밀히 해부한다.


 평소 사람 속을 잘 모르겠다고 생각해온 나는 그 원인을 알게 됐다. 저자에 따르면 나는 투명성의 원칙을 따르는 편인데 타인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땐 정말 혼란스럽다. 무언가 잘못된 듯하고 내가 부족한 듯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 내게 <타인의 해석>은 명쾌한 해답을 내려줬다. 더불어 우리가 서로를 철저히 오해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알려줬다. 오해와 오해가 만나 이해, 이런 말은 치워두고 우선 이 사실을 받아들이자. 나는 너를 모르고 너는 나를 모른다. 우리는 서로를 의심하지만 불신하진 않는다. 그렇지만 눈에 보이는 것이 다 진실인 것은 아니다. 그러니 질문하자. 그리고 생각하자. 나는 지금 어떤 근거로 너를 판단하고 있나. 어쩌면 너는 또 다른 샌드라가 아닐까,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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