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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간의 재발견 Jan 25. 2016

동해바다가 보이는 나만의 공간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묵호항의 어느 집에서

한 번밖에 없는 인생 더 외로워야 덜 외롭다.


얼마 전 일본화 화가로 돌아온 김정운 씨가 한 말이다. 김정운 씨가 한창 방송 활동을 할 때 그의 단언 화법을 좋아하지 않았다. 세상에 옳은 말을 하는 사람은 너무도 많았다, '세상은 이래야 한다'란 단언보다는 조용히 감내하고 실천하는 사람이 그리웠나 보다. 그런 그가 인생에서 가장 화려했던 시절에 돌연히 일본으로 떠났다. 자기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서. 그가 떠난 줄도 몰랐지만, 3년의 시간을 일본에서 홀로 보내고 온 그가 던진 말 '한 번밖에 없는 인생 더 외로워야 덜 외롭다'라는 말에 무게감을 느꼈다. 인생의 진지한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이었으니.


작년 3월 어느 날 강원도 묵호항에  주말여행을 갔었다. 바다가 보고 싶기도 했고 회에 소주를 한잔 걸치고도 싶었다. 바다가 보이는 1박에 17만 원의 값비싼 펜션에서 묵고, 우럭회에 청하를 마셨다. 술기운에 얼굴이 빨개진 채로 밤바다를 바라봤다. 밤공기가 찼고 배가 불렀다. 펜션에 들어와 TV를 켰고 예능 프로그램을 봤다. '나는 왜 이 먼 묵호까지 왔을까.' 잠을 자려는데 돌연 듯 허무했다. 여느 때의 느낌과 사뭇 달랐다. 군산 앞바다에서 먹었던 우럭회에 소주, 부산 광안리 해변에서 즐겼던 치맥, 속초 외옹치항에서 먹었던 모둠회와 소주, 그리고 보길도에서 먹었던 자연산 회와 소주. 항상 새로운 이야기와 느낌이 있었던 순었다.


바다, 회, 소주 그리고  발그랗게 취기가 오른 내 얼굴. 난 무엇에 취하러 바다로 왔을까.

밤공기가 찼고 배가 불렀고, 바다는 생각만큼 크지 않았다.



이틀 날.

묵호항에는 통영의 동피랑 마을처럼 언덕 위에 집들이 있다. 벽에  이런저런 재미있는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이리저리 셔터를 누르고 다니다가 한 커피숍처럼 생긴 집을 발견했다. 쌀쌀한 3월의 날씨에 손이라도 녹여볼 심산으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키가 170은 돼 보이는 늘씬한 40대의  주인아주머니가 계셨다. 선글라스를 끼고 있어서 눈을 볼 수는 없었지만 왠지 이곳 분은 아닌  듯했다. 카페라떼를 한잔 주문하고 테이블에 앉으니 동해바다가 다 내려다보였다. 어제 횟집에서 보았을 때는 방파제에 가려 안 보였던 동해바다가 저 멀리 수평선까지 내려다 보였다. 놀라운 장관이었다. 10평 남짓한 이 작은 공간에 저 넓은 동해바다를 두 눈에 담을 수 있다니. 약간 넋을 잃고 바다를 보고 있는 사이 아주머니가 라테와 뜨끈뜨끈한 군고구마를 하나 내오셨다. 매일 같이 넓은 바다를 내려다보는 이 아주머니가 문득 궁금해졌다.


아주머니는 묵호항에서 태어났지만 지난 20년 간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했다고 한다. 묵호로 돌아온 건 5년 남짓한 되었다고. 5년 전 1,000만 원의 돈으로 바다가 내려다보이지만 당시 폐가에 가까웠던 이 집을 샀다. 혼자서 건축설계와 자재에 대해 공부해가면서 5년 간 꾸준히 집을 개조하고 인테리어를 바꿨다고. 나중에는 직접 목수를 부릴 정도로 '폐가 개조'의 달인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집 안 전체에 향나무 냄새가 났다. 나무로 지은 바다 언덕 위의 집. 40대 후반의 아주머니 혼자서 일군 집이라니 더욱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그러는 사이 계란 프라이를 하나 더 만들어주셨다. 프라이를 만드는 부엌의 작은 창 너머로도 동해바다가 화폭처럼 걸려있다. 방 안의 따뜻한 온기와 싱그러운 바다 바람이 어제의 취한 내 머리를 맑게 했다.


 

따뜻한 라테 2잔 5,000원, 군고구마는 서비스               계란 프라이를 하는 부엌 창 너머로도 바다가 보인다.  



 아주머니는 가족 없이 홀로 지내신다고 하셨다. 아들은 서울에서 일을 하고 있다 정도만 얘기했다. 가끔 아들이 보고 싶을 때 서울로 가긴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이 공간에서 보낸다고 한다. 고향이기에 친구들이 있지 않을까 했지만, 그마저도 세월이 오래되서 연락을 할 만한 사람은 없다고. 주중에는 이곳 묵호에 있는 직장에서 일을 하고 퇴근 후나 주말이면 혼자 이 공간에서 시간을 보낸다. 요리하는 걸 좋아해 부엌에서 있는 시간이 많고, 피곤할 때면 방 안(놀랍게도 침대가 있는 방이 있었다. 그것도 매우 아늑한) 침대에 누워 쉰다고 한다. 방 안에 들어가보진 못했지만 침대에서도 바다가 보인다니 아주머니의 '폐가 개조'의 실력이 새삼 더욱 대단하게 느껴졌다. 거실 겸 서재에는 기타가 놓여있어 적적할 때는 기타를 치면서 노래도 한곡 하신다고. 그래도 '사람이 없는 이곳이 외롭지 않을까...'하며 조심히 물었다. '적적하실 때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세요'



혼자서 취미를 공부합니다

건축 인테리어, 미술, 글, 음악, 요리까지. 아주머니의 관심 분야는 다양하고 혼자 있는 시간만큼 그 실력도 수준급이셨다. 집 앞 벽에 그린 벽화부터 집 안에 있는 나무 액자, 의자, 테이블, 지점토 공예, 그리고 바람개비까지. 모두 그녀의 손 끝에서 나온 세상에  하나뿐인 작품들이었다. 시를 짓고 블로그로 사람들과 정서를 교환한다. 혼자 먹는 날이 많아 많은 양의 요리를 하진 않지만, 한 끼를 먹더라도 온전히 나만을 위한 레시피로 음식을 준비한다. 모든 것을 내 손으로 직접 만든다. 그녀는 자신의 창조물들에 대해 자부심이 대단했다. 특히 이 집을 설계하고 공사할 때의 서러움과 고생은 생생하게 느껴졌다. 3년 전 집을 다시 다 부수고 새로 설계해 지금의 향나무로 지은 집이 탄생했다고.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한 취미생활이 아니라, 그녀는 웬만한 전문가보다 열정과 집념이 강했다. 자기 것에 대한 자아에 대한 애착이


그녀가 외롭지 않은 건 아닐 테다. 하지만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만나는 외로움보다 혼자 있는 외로움이 오히려 견딜만한 건 아닐까. 우리는 외로움을 못 견뎌 관계 속으로 도망친다. '외롭다'라는 감정을 잊기 위해 사람들과 한잔의 술을 털어내지만 무슨 대화를 했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난다. 인터넷으로  이런저런 가십 기사를 읽어내려 가고, SNS에 올라온 지인들의 최근 근황에 '좋아요'를 누른다. 하루 종일 뭔가를 계속 읽고, 행동하고, 대화하는데 기억나는 게 별로 없다. 하루에 한 시간이라도 뭔가를 보지 않고 온전히 생각만 하는 시간이 없다. 그러다 보니 무엇을 생각하고 사는지, 내가 외로운지 아닌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 계속해서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의 허망함과 외로움을 달고 산다.


  기타를 치고 책을 읽는, 향나무 향기가 나는 공간


김정운 씨는 일본에서 일본화를 그렸다. 처음 몇 달은 미친 듯이 한국 관련 기사를 읽어내려 가고 동네 일본 사람들에게 자신이 한국에서 얼마나 유명했는지 떠벌리고 다녔다 한다. 그도 외로웠던 게다. 관계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국을 떠났지만, 여전히 그는 일본의 외딴 시골에서 관계 속으로 도망쳤었다. 그리고 채워지지 않는 외로움을 느끼고 공부를 시작했다. 관심 분야의 책을 읽기 시작했고 관계를 멀리했다. 그러다 보니 공부할 게 생기고, 파고들다 보니 일본화 한 점을 제법 그럴듯하게 그려낼 수 있는 지금이 되었다고.


묵호항의 그녀도 폐가를 사서 고치고 부수고 다시 고치고를 반복해서 지금의 집을 얻었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향나무집. 외롭지만 내가 충만한 공간. 바다가 보이지 않더라도 '내가 충만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우리는 조금 덜 외로울까. 우리는 그 공간에서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 찾고, 그것을 실천할 용기와 계획을 가질 수 있을지.




나만의 공간을 찾을 때까지

"나만의 공간"은 시리즈로 연재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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