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에 들어서자 모든 시선이 내게 집중되는 것을 느꼈다. 피부를 짓누르는 묵직한 부담감과 함께 어딘가 죄책감이 밀려왔다. 그들과 함께 있을 때면 언제나 나를 덮쳐오는 이 감정은 마치 양심이 눌리는 듯한 묘한 무게감이었다. 숨이 막히듯 턱 끝까지 차오르는 그 압박감은 어김없이 나를 사로잡았다. 익숙할 법도 한데, 이런 감정에 익숙해지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늘 환하게 웃으며 나를 맞이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따뜻한 미소로 나를 환영하며 반겼다.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나도 인사를 건넸다. 이 웃음이 어떤 모습으로 보일지 궁금했지만, 거울이 없어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 아쉬웠다. 하나하나 그들에게 인사하며 무대 쪽으로 안내했다. 무대에는 이미 탁자와 의자가 가지런히 놓이고 있었다.
"이런 배열을 말씀하신 거죠?"
수호가 극장 관계자와 대화를 나누다 내게 물었다.
"네, 맞습니다. 관객을 바라보는 배치가 좋을 것 같아요. 사회자는 따로 필요 없으시죠?"
"네, 우리 스님께서 워낙 진행을 잘하시거든요."
수호가 연훈 쪽을 향해 미소 지었다. 연훈도 그 미소에 응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또 이런 건 기가 막히게 하지요. 원래 스님은 다 잘해야 합니다. 믿고 맡기세요!"
연훈이 두 손을 모으며 농담을 건네자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극장 안은 유쾌한 분위기로 물들었다. 모두가 화기애애한 표정으로 웃고 있는데, 어디서 날카롭고 단호한 목소리가 들렸다.
"나머지 배치나 준비는 아진님께 맡길게요. 그럼, 이제 정리된 질문들이나 내용을 좀 확인해 볼 수 있을까요?"
목소리의 주인공은 자윤이었다.
"아, 미리 메일로 보내드렸는데, 혹시 다들 확인하셨나요?"
나는 조심스럽게 물으며 주위를 살폈다. 수호 신부를 제외한 누구도 메일을 읽지 않은 듯했다.
"다들 바쁘신 분들이라 아직 확인을 못하셨나 보네요. 혹시 몰라서 프린트해 왔습니다. 다 이거 하나씩 받아주시고요. 간단하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출력물을 나눠주며 간략히 설명을 이어갔다.
"200명의 관객이 참석할 예정입니다. 사전에 예약을 받은 사람들이라, 미리 질문을 받아뒀습니다. 그중에서 많이 중복되는 질문들을 모았고, 중복된 질문들 가운데 절실한 사연 몇 개를 선별해 이번 콘서트의 주제로 삼았습니다. 아시다시피 콘서트는 1부와 2부로 나눠집니다. 1부에서는 네 분께 공통 질문이 주어질 거고, 2부에서는 청중이 직접 성직자 한 분을 지목해 질문을 던질 예정입니다. 그때의 즉흥적인 답변이 어려울 수 있으니 미리 드린 질문을 읽고 준비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들에게 인쇄물을 하나씩 나눠주며 설명을 마쳤다. 다른 이들은 출력을 받은 종이를 펼쳐 꼼꼼히 읽고 있었지만, 자윤 교무만은 시선을 다른 곳에 둔 채 멍하니 있는 듯했다. 그러다 문득, 눈이 마주쳤다. 그 눈빛 속에는 뭔가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스며 있는 듯했다.
"대부분의 참석자가 30~40대이기 때문에 이 점을 염두에 두고 답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공통된 질문 세 가지가 있는데요. 첫 번째는 ‘현실적인 사랑과 이상적인 사랑 중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입니다. 아마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 상대를 두고 고민하는 질문인 것 같아요."
자윤을 의식하며 말을 이어갔다. 그녀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은 채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두 번째는 ‘사랑에도 유효기간이 있는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오랜 관계 속에서 설렘이 사라졌을 때, 이것이 여전히 사랑인지에 대해 혼란스러워하는 사연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진실한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마지막 질문을 언급하며, 다시 한번 자연스럽게 자윤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녀도 여전히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거의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그 안에서 복잡한 감정의 소용돌이가 느껴졌다. 이번에는 그녀의 시선을 피하지 않은 채 마주했다. 그때, 보다 못한 정율 목사가 진행에 대한 질문을 해왔다.
"그럼 우리는 미리 정해진 질문에 따라 답변만 하면 되는 거죠? 그렇다면 질문마다 답변할 사람이 이미 정해져 있겠네요?"
"예리하십니다. 정확하세요. 그래서 각 질문 옆에 담당자의 이름을 적어 두었습니다. 한 번 확인해 주시겠어요?"
종이의 특정 페이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모두가 페이지를 넘기며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오직, 자윤만이 여전히 내게 시선을 고정한 채 움직이지 않았다. 이어서 설명을 해야 했기에 그런 그녀를 내버려 둔 채 사람들을 기다렸다. 어느 순간 모두가 움직임을 멈추고 날 바라보고 있었다.
"자, 다 확인하셨죠. 답변 잘 부탁드릴게요. 특히, 자윤 교무님?"
그 순간 나는 일부러 천천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변자가 자윤 교무님이시네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모든 시선이 자윤에게로 향했다.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을 유지했지만, 그 안에서 무언가 미묘하게 요동치는 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