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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 Apr 29. 2020

지루한 삶을 극복하려면

내가 자주 느끼는 상태에는 무기력(그래서 이와 관련한 글을 자주 썼다), 그리고 또 하나가 더 있다. 바로 지루함이다. 지루함이라는 감정 내지는 상태에 대해서 얘기해볼까 한다. 나처럼 삶이 따분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서 말이다.

지루함은 무기력과 비슷한 듯 조금 다르다. 둘 다 활기가 없고 축 처진 느낌을 동반하지만, 무기력은 무얼 하고 싶은 의욕조차 없는 반면 지루함은 현재의 심심함을 벗어나고자 하는 의욕과 욕구가 있다. 무기력보다는 지루함이 낫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썩 유쾌하지는 않은 감정인 것은 피차 마찬가지다. 삶이 지루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 얼마나 비극인가.




평소와 같이 지루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예측하지 못한 일들이 많이 발생했고,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힘들어졌다. 나는 일기장에 하루가 지겹고 심심하다고 끄적이던 어제의 내가, 그렇게나 그리울 수 없었다. 그 순간 문득 깨달았다. 지루함이란 평화로울 때만 가능한 것이구나.

지루함은 평화로움과 한 끗 차이다. 몸에 통증이 있고 아프면 지루할 새가 없다. 당장 생계가 급하고 궁핍하면 따분할 틈이 없다. 현재가 괴롭고 불안하면 심심할 수가 없다. 지루함이 얼마나 복된 감정이었는가, 지루함은 곧 여유가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지루한 나는 과분한 환경에 있었다. 몸에 큰 탈이 없고, 당장 고민이나 괴로움이 없고, 궁핍에 시달리지도 않는다.

인생이 따분하게 느껴지는 게 싫었다. 하지만 지루함은 재미의 결핍 상태로 인식할 것이 아니라, 현재의 상황이 꽤나 여유가 있는, 복 받은 상황이라는 인식에서부터 출발해야 했다. 그 축복받은 환경을 잘 이용하여 즐거움을 찾아 나서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 것이다. 그 인식에서부터 나는 즐거움을 찾아보기로 했다.

즐거움을 찾아 나서는 방법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나는 내 삶이 재미없게 느껴질 때마다 새로운 것들을 종종 시도하곤 했다. 그런 것들은 잠시나마 나의 마음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어주었다. 나는 새로운 일을 벌이고, 새로운 물건을 사고, 새로운 사람을 만났다. 그런 게 꽤나 효과도 있었다. 하지만 일시적이었고 새로운 자극을 찾는 것은 계속적인 갈증과 결핍을 낳았다. 마치 탄산음료처럼.

나는 언제부터 즐거움을 잃어버리게 된 걸까. 내 인생은 어쩌다 지루해지게 되었을까. 다시금 새로운 자극을 찾아 헤매는 나를 보며 깨달았다. 지루함의 원인은 새로운 자극의 결핍이 아니라, 내가 이미 누리는 것에 대한 무뎌짐이라는 것을.

나는 이미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다. 까만 야구모자, 향수, 이어폰, 민트색 니트... 한때 소중했던 물건들이 나에겐 너무 익숙해져버려 지금은 아무런 설렘을 주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그 물건들을 처음으로 갖게 된 순간을 잊지 못한다.
직장에서도 매너리즘이 오곤 한다. 매일 반복되는 것 같은 일은 지겹게 느껴진다. 하지만 다른 일이 나에게 더 큰 즐거움을 줄까? 그런 생각에 잠기다 보면 내가 이 일에서 얻는 즐거움이 꽤나 적지 않다는 사실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어제도 봤고, 오늘도 보는 노을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익숙함은 권태를 불러온다. 삶이 지루하다는 것은, 내 삶의 소중한 것들에 무뎌졌다는 뜻이다. 너무도 무뎌지고 무뎌져서, 그것이 소중했다는 기억조차 망각하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것이 소중하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너무도 빨리 익숙해져 버리는 탓이리라... 나는 소중함을 조금만 더 오래 붙잡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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