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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인 Feb 02. 2021

퇴원생이 생겼습니다

집착하지 않아야 해

출근한 지 십 분이 지나지 않아 상담실장님이 나를 잡고는 말한다. 


  “쌔앰. 하윤이 퇴원한대요.”


그렇다. 코로나 때문에 상황이 좋지 않으니까 그럴 수 있다. 암, 그럴 수 있고말고. 하윤이 말고도 지금 계속 퇴원생이 생기지 않는가.


  “그래요? 전 과목 다요?”

  “아, 그게 논술만 퇴원한대요…….”


  아, 내 수업만이었구나. 이러면 얘기가 달라진다. 하윤이는 우리 학원에서 영어, 수학, 독서논술을 다 듣는 친구이기 때문이다. 왜 내 수업만이니? 우리 여태 좋았잖아. 나만 좋았던 거니?


  “왜요?”

  “그게 어머니가 말씀을 안 해주셔서 저도 모르겠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종이컵에 뜨거운 물을 붓고 모락모락 피어나는 김을 호호 분다. 그러나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집착하고 있다. 대체 왜!     


  사실 퇴원생들의 퇴원 이유는 복합적이다. 수업의 질이나 학원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경제적인 상황이나 여건, 혹은 피치 못할 이유, 아니면 그저 다른 학원도 보내기 위해서일 때도 있다. 그렇지만 퇴원생이 생긴다는 건 내 수업을 돌아볼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 전에 안 좋은 신호가 있었다면 방어라도 했을 텐데 하윤이는 내 수업을 무척 좋아하던 어린이였다. 내가 이렇게 눈치가 없는 사람이었나. 이렇게 일방적인 마음이었나 싶기도 하다.     

  유난히 마음이 동요하는 이유는 하나였다. 이년 남짓 일하면서 생긴 퇴원생 중 하윤이는 특수한 경우였다. 솔직히 독서논술 수업은 영어와 수학에 비해 수요가 없기에 내 수업을 자체로 들으러 오는 경우는 많이 없다. 영수를 상담받으러 온 학부모들이 아이의 독해력이 부족하니 논술도 보내볼까?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세 과목을 동시에 듣는 학생이 많다. 그런데 두 과목은 유지하고 논술만 퇴원하는 학생의 경우는 처음이라 당황스러웠던 것 같다.     


나름의 자부심도 있었던 것 같다. 내 수업은 퇴원생이 현저히 적다. 들어오는 학생들이 더 많다. 수업에 대한 평가도 좋고 아이들 호응도 좋다. 다른 수업에서는 절대 입을 열지 않는 학생들도 입을 열게 하는 마법의 수……업까지는 아니지만, 어쨌든 끊임없이 소통해야 하는 수업의 특성상 개개인과의 호흡이 중요하기도 했다.     


하윤이의 퇴원 소식을 듣자 종일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마지막 상담을 위해 하윤이 어머니와 통화를 시도했지만 받지 않으셨다. 의연하게 대처하고 싶은데 어쩔 수 없이 섭섭한 마음이 든다. 하윤이를 그렇게 보내야 했다.     

퇴원을 앞둔 학생들 중에, 가끔 어떤 학생들은 나에게 ‘저 다음 달부터는 학원 못 나올 것 같아요’ 라며 예고를 날리지만, 갑자기 이렇게 퇴원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럴 때면 ‘뭐가 그렇게 급했을까’라는 마음과 ‘인사도 못할 만큼 급한 일이었나’라는 마음이 교차한다. 그렇지만 얼른 마음을 내려놔야만 한다.     


수업이라는 것이 사람과 사람이 면대면으로 만나는 일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강사가 수업료를 지불받아 그에 합당한 수업을 제공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마음만 가지고는 수업을 할 수는 없다. 하윤이가 떠난 반, 그 자리를 잘 봉합하고 또 수업을 이끌어가는 것 또한 내 임무이다. 나는 최대한 감정을 절제해야 한다.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면 이곳저곳에 티를 내게 되고 그것은 수업에 영향을 주기도 하니까.     


퇴원생이 생겼다. 그렇지만, 떠난 이에게 집착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잊어야 한다. 떠난 이가 오래된 연인이든, 알고 지낸 지 십 년이 훌쩍 넘은 친구이든, 퇴원생이든 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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