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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인 Mar 15. 2021

쥬라기 공룡 소동

수업준비를 마치고 수업에 들어가려고 할 때였다. 학원에서 귀여움을 담당하고 있는 밤톨 머리 초1 승빈이가 교무실 앞에서 콩콩 뛰었다.     


  “쌤! 빨리 와요! 쥬라기 공룡이 나타났어요!”     


  승빈이를 따라 도착한 교실, 문을 열자 아뿔싸……초등 1학년 유라와 2학년 다율이가 씩씩대며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유라와 다율이가 한 판 붙은 것이다. 교실은 난장판이 따로 없었다. 바닥에는 다율이의 빨간 안경이 뒹굴었고 누군가 던져서 날아간 듯한 책들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문제는 다율이 팔목에 생긴 상처였다. 할퀸 자국이 선명했다. 다른 어린이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교실 벽에 다닥다닥 붙어서 겁에 질린 표정으로 귀를 막았다. 승빈이가 보란 듯이 나에게 말했다.   

  

  “여긴 쥬라기 공원이에요! 유리는 완전 티라노사우르스예요!”    

 

나는 승빈이를 보면서 ‘쉿’ (승빈아 이럴 땐 눈치를 챙겨야 해!) 하는 눈짓을 보냈다. 유라와 다율이는 평소에 친자매처럼 잘 지내는가 싶다가도 곧잘 투닥거렸다. 수업시간에 서로가 더 많은 글을 읽겠다고 싸웠고, 그림을 그리면 따라 하는 것 같다고 싸웠다. 둘이 원수라도 졌나, 싶을 정도로 아주 사소한 문제로 싸우곤 했는데 결국 터져버린 것이다. 유라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다율이를 노려보고 있었고, 다율이는 주르륵 흐르는 눈물을 계속 닦았다. ‘아, 오 분만 일찍 수업에 들어갈걸…….’ 하고 후회해봤자 소용없었다. 일단 나는 상처가 난 다율이를 상담실장님께 부탁했고 유라를 따로 불러냈다.     


아무도 없는 교실에 유라를 불러놓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봤더니, 유라도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얼굴까지 벌게져 우는 아이한테 계속 물어볼 수는 없어서 일단 의자에 앉혀놓고 물을 한잔 건넸다. 


  “유라 마음이 진정되면 그때 선생님한테 말해줘.”

유라는 물을 꿀꺽 마시더니 조금 있다가 입을 열었다. 


  “다율언니가요……쉬는 시간에 갑자기 과자를 꺼냈어요. 근데 학원에서 과자 먹으면 안 되잖아요.”

  “그치, 그치. 원래 안 되지.”


  그렇다. 내가 본 유라는 원칙주의자이다. 학원에서 지키라고 한 규칙이 있으면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근데 언니가 과자를 먹기 시작했어요. 근데 주변 애들은 다 주면서……저는 안 주는 거예요. 저만 빼고 다 줬어요. 그래서 화가 나서 선생님한테 말한다고 했더니 갑자기 제 어깨를 밀쳤어요. 그래서 저도…….”


  유라가 울음을 꾸역꾸역 삼키며 한 마디씩 뱉어냈다. 상황을 들어보니, 유라 입장에서는 다율이가 괘씸한 상황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랬구나. 유라가 속이 많이 상했겠네.”

  “네. 근데 피 날 줄은 몰랐어요…….”


  유라는 자기가 할퀴어서 언니에게 상처가 난 것을 보고 본인도 놀란 모양이었다.


“그치. 언니가 상처 나는 게 유라가 바라는 건 아니었을 거야. 사실 선생님도 친구들 때문에 유라처럼 화가 날 때가 있거든. 근데 그럴 때마다 친구한테 상처를 주면 꼭 후회하더라고.”

  “……”

  “유라도 좀 후회되지?”


  유라는 한참 뒤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유라에게 당장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다율이와 화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렇지만 상처를 입힌 것에 대해 사과는 해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나의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자면 나는 싸우지 않는 어린이였다. 늘 화를 삼키고, 분노를 삼키는 어린이. 싸우려면 눈물이 차올라서 눈물을 흘리다가 할 말을 못 하고 뒤돌아 버리는 어린이. 누군가 시비를 걸면 자리를 피해버리는 회피형 인간. 생각해보면 나의 부모님은 늘 참으라고 했다. 언니와 싸우면 ‘언니가 원래 그렇잖아. 너가 참아. 친구가 나를 무시하면 ‘참아. 싸워봤자 좋을 거 없어.’ 그래서 나는 늘 참았고 지금도 뭐든 잘 참는 사람으로 컸다. 그래서 나는 별 탈 없이 잘 컸다. 부모님이 보시기엔 말이다.     


그렇지만 내심 후회되는 순간도 있다. 부모님이 ‘잘 싸우는 방법’을 알려주셨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상대방이 내 마음을 다치게 한 것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을 전달하고, 내가 잘못한 것이 있다면 상대방에게 사과를 할 수 있는 용기를, 그리고 한바탕의 과정을 통해 나의 묵은 감정을 털어낼 수 있는 후련함을 알려주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마냥 참으면 병이 나서 스스로가 다칠 수 있다는 걸 왜 말해주지 않았을까. 그래서 나는 아직도 싸우는 게 익숙지 않다. 그리고 지금도 배워가는 중이다. 나를 지키기 위해 말이다.     


다행히 다율이의 상처는 깊지 않았다. 두 사람은 상담 선생님의 불호령에 반성문을 썼다. 보충실에 앉아 꾹꾹 반성문을 눌러쓰는 애들을 보고 있자니 속상했다. (나는 어렸을 때 반성문 쓰는 게 정말 싫었는데. 진짜 반성하는 마음으로 쓴 반성문은 단 한 장도 없었는데 말이야…….) 한참이 지나자 두 사람은 서로가 얼마나 썼는지 곁눈질로 확인하더니, 다율이가 유라에게 말을 걸었다.


  “유라야. 집 같이 갈래?”


유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뭐야. 잠깐만!) 두 사람은 숙제를 해치우듯 반성문을 놓고 다시 친자매 같은 모습이 되어 학원을 나섰다. 도대체 쓰는 와중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화해의 징조가 전혀 보이지 않았는데. 마치 심각하게 남자친구 문제를 상담하다가 다음 날 바로 재회한 친구를 보는 것처럼 허무해졌다. 어린이들의 마음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게 얼마나 갈진 모르겠지만.     


두 사람이 놓고 간 반성문을 보니 맞춤법이 엉망진창. 얘들아……. 국어쌤 마음의 상처는 어쩌자고……이거 저번에 시험도 본 거잖아 얘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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