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인 Aug 06. 2019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인사의 힘

좋은 밤 되세요

대학 근처에 삼십 대 중반쯤 되는 남자 사장님이 운영하는 작은 라면집이 있었다. 특별히 맛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명란 라면은 정말 맛있었다!) 자취할 때 그곳에 자주 갔다. 자취를 해 본 사람이라면 공감하겠지만 굳이 라면을 돈 주고 사 먹고 싶지 않다. 이왕 사 먹는 것이면 라면보다는 가격 대비 밥버거가 낫지 않나. 하지만 내가 그곳에 자주 간 이유는 사장님의 인사 때문이었다. 내가 계산을 마치고 나가려고 하면, 사장님은 설거지도 멈춘 채 앞치마 차림으로 나와 ‘조심히 들어가세요!’ 하고 늘 인사해주셨다. 나는 그 인사말과 서글서글한 눈인사가 참 좋았다. 사장님의 인사를 듣고 문을 나서면 배가 좀 더 두둑하게 부른 기분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들었던 가장 따듯한 인사는 따로 있다. 중요한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아 도서관에서 열 시간을 콕 박혀 공부하다가 집에 가던 늦은 밤, 맥주를 사러 편의점에 들렀다. 내가 산 건 달랑 맥주 한 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은 비닐봉지에 맥주를 넣어준 후 내 눈을 보더니 쓱 말했다.


 “좋은 밤 되세요.”


아니, 좋은 밤 되라니. 심야 라디오 DJ 같잖아? 성시경이야? 신박한데? 하고 문을 나서니 내가 히죽거리고 있는 것이었다. 좋은 밤 되세요…… 좋은 밤이 될 수 있을까……, 되고 싶다. 그렇게 떠올려보니 지금 이 순간이 오늘 하루 중 가장 따듯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때로는 아무것도 모르는, 타인에게서 위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그날 밤 그녀가 입밖에 내뱉은 말 한마디로 알게 되었다. 나는 맥주와 함께 좋은 밤을 보냈다.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집 「대성당」에서, 나는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이라는 단편을 가장 좋아한다. 앤과 하워드 부부는 아들이 하나 있다. 아들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빵집에 케이크를 주문하는데, 불행하게도 당일 날 아들이 뺑소니 사고로 죽음을 맞이한다. 빵집 주인은 주문했던 케이크 건으로 계속 부부에게 연락을 하고 부부는 분노한다. 부부는 빵집에 찾아가고 빵집 주인은 그제야 자신이 그들의 사정을 모르고 오해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부부에게 사과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따듯한 롤빵을 대접하며 말한다.     


내가 만든 따뜻한 롤빵을 좀 드시지요. 뭘 좀 드시고 기운을 차리는 게 좋겠소. 이럴 때 뭘 좀 먹는 일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될 거요.
 

부부는 주인이 건넨 롤빵과 말 한마디에 더없이 깊은 위로를 받는다.     


가끔은 지인들에게 작정하고 듣는 묵직한 위로보다는, 우연히 툭 들은 말이 위로가 될 때가 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의 담백한 인사에 내가 위로받은 것처럼.     


이후에 오랫동안 카페에서 일하면서, 다정한 인사는 나만의 원칙이기도 했다. 사교성이 떨어지는 탓에 단골손님들에게 ‘어머, 또 오셨네요?’ 같은 말은 잘하지 못했지만 늘 밝은 얼굴로 인사하고, 나가는 손님들을 보면 ‘들어가세요!’라며 눈인사를 함께 보내는 것. 그렇게 하면 손님들과 작은 유대감이 생긴 듯했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냈을지 모르겠지만 당신의 남은 하루를 응원한다는 마음을 담아, 별 것 아니지만 도움이 되는 인사를.



매거진의 이전글 아무도 내 생일을 모르기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